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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48)버릇<상>

by 까망잉크 2018. 11. 16.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48)버릇<상> 

 경북 김천의 어느 시골 장날, 열두어살짜리 순진한 야바위꾼 
종지 세개를 이리저리 옮기며 구경꾼들을 유혹하고 있는데… 
홀연히 나타난 날렵한 총각, 무려 한냥을 판돈으로 걸었다!

경북 김천 장날은 발 디딜 틈이 없다. “마누라 배 위에서 슬슬 눈치만 보는 양반, 아침에 눈을 떠도 하초가 적막강산인 양반네들 이리 와보시오.” 약장수가 구렁이 한마리를 목에 걸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자, 옹기 사가시오. 대자리·칠부·삼등·오개….” 옹기장수 목소리도 만만찮다. 한산 세모시, 안동 세포, 통영 갓, 안성 유기, 금산 곡삼, 울진 장곽…. 장사꾼들이 저마다 난전을 펴놓고 호객을 해도 오가는 사람들은 시큰둥한데 호객도 하지 않는 좌판에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섰다. 야바위판이다.

야바위란 원래가 구경꾼들 눈에는 만만하게 보이는 법이다. 돈을 걸면 몇배 딸 것 같은 자신감이 있기 마련인데 판을 벌인 야바위꾼이 불과 열두어살밖에 되지 않은, 아주 순진하게 생긴 아이라 구경꾼들은 더더욱 구미가 당겼다.

도마만 한 널빤지는 석영가루로 광을 내 얼음처럼 매끄러운데, 그 위에 간장 종지 세개가 엎어져 있다. 그 종지 중 하나에 헝겊 골무 같은 게 들어 있다. 야바위꾼이 종지 세개를 이리저리 옮기다가 손을 뗐을 때 10전을 건 손님이 골무를 품고 있는 종지를 맞히면 걸었던 돈의 10배인 한냥을 받고 못 맞히면 10전을 날리는, 아주 흔한 야바위판이다.

이 당돌한 열두어살 야바위꾼은 종지에 골무를 넣지 않고 쨍그랑 소리가 들리는 엽전을 넣었다. 야바위꾼 아이의 손이 별로 빠르지도 않은 것 같은데 10전을 건 사람마다 종지를 헛짚고는 한숨만 토했다. 가끔 돈을 따는 사람은 야바위꾼과 짜고 하는 바람잡이뿐이다.

그때 열예닐곱쯤 되는, 날렵하게 생긴 총각이 야바위판 앞에 쪼그려 앉더니 판돈 10전이 아니라 아예 한냥을 거는 것이다. 야바위꾼 아이가 생긋이 웃었다. “좋아요. 맞히면 열냥.”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판 위에 엽전을 ‘짱’ 하고 놓고는 그 위에 종지 하나를 엎었다. 이리저리 종지 세개를 옮기다가 두 손을 떼서 조끼 주머니에 꽂았다. 총각이 서슴없이 왼쪽 종지 위에 손바닥을 덮었다. “아니야.” “어어.” “틀렸어.” 겹겹이 둘러선 구경꾼들이 탄식했다. 그러나 벌써 야바위꾼 아이 얼굴엔 낙담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총각이 천천히 종지를 들자 구경꾼들 입에서 “와” 탄성이 쏟아졌다.

연거푸 세번이나 열냥씩 챙긴 총각이 빙긋이 웃었다. “아예 열냥을 걸까.” 돈주머니에 손을 넣자 공포에 질린 야바위꾼 아이가 깔고 앉았던 자루를 열고 판과 종지 세개를 넣더니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레가 지나 또 장이 섰다. 젖살도 안 빠진 열두어살 아이가 또다시 자루를 끼고 와 사방을 두리번거리다가 이번에는 감천가 국밥집 옆에 야바위판을 폈다. 사람들이 몰려와 병풍을 치듯이 둥그렇게 둘러싸서 10전씩 판돈을 걸고 한숨을 토하는데, 이럴 수가. 지난 장날 야바위판을 쓸어갔던 그 총각이 빙긋 웃으며 마주 앉아 판돈으로 단번에 한냥을 들이미는 것이다. 야바위꾼 아이는 이번에는 쨍그랑 소리가 나는 엽전 대신 골무를 넣고 번개처럼 두 손을 움직였다. 그러나 총각은 망설임 없이 덥석 종지 하나를 잡았다. 야바위꾼 아이는 사색이 됐다.

열냥을 총각에게 주고 아이는 야바위판을 쓸어 담은 뒤 흘끔 그 총각을 뒤돌아봤다. 그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다음 장날은 총각이 나타나자 그대로 줄행랑. 그 후로 야바위꾼 아이는 김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3년이 지났다. 김천 장터 동쪽 끝자락에 ‘뚱땅뚱땅’ 대장간이 자리 잡았다. 주인 영감님은 화덕 위에서 벌겋게 달궈진 쇳조각을 집게로 집어 모루에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작은 망치를 들고 땡땡 두드렸다. 팔뚝이 울퉁불퉁한 삼촌은 땀을 뻘뻘 흘리며 큰 망치를 꽝꽝 내려쳤다. “오 도령아, 불이 약하다.” 풀무질을 하는 오 도령은 이제 열다섯살. 아직 골격이 제대로 잡히지 않아 온몸을 과하게 쓰고 있다. 괭이 하나를 만들고 나서 모두가 일손을 놓고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오 도령도 이마의 땀을 닦고 돌아섰다. 오 도령. 그는 3년 전 장날마다 야바위판을 벌이던 그 아이였다. 그는 새로운 일을 꾸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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