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판동 김대감은
딸만 여섯을 두고 한숨만 쉬다가 마침내 3대 독자를 얻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들을 지켜보는 게 김대감의 유일한 낙이다. 가야금 소리가 아름다운들 외아들 울음소리보다 더 좋으랴. 천하의 작명가를 불러 상훈이라 이름짓고 백일에는 온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 모아 3일이나 잔치를 벌였다.
상훈이 탈없이 자라 여섯살이 되자 서당에 보냈다.
어느 날 서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던 상훈이 넘어져 정강이를 다치자 김대감은 서당으로 가 훈장님과 담판했다. 그리고 자기 집 사랑방으로 서당을 옮겼다. 넓고 깨끗한 김대감댁 사랑방이 서당이 되자 학동들도 좋아하고 훈장님도 입이 벌어졌다.
김대감댁 행랑아범은
몇년 전 상처를 하고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사는 홀아비로, 마당도 쓸고 김대감의 심부름도 하는 하인이다. 행랑아범의 아들은 김대감의 3대 독자와 동갑내기로 서당 청소를 도맡아 했다. 학동들이 공부할 땐 방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 처마 밑에서 부지깽이로 땅바닥에 글을 쓰며 귀동냥 공부를 했다.
어느 봄날,
학동들이 마당에서 돼지 오줌보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어느 학동이 찬 공이 하늘 높이 뜨더니 마당가 장독에 빠지고 말았다. 3대 독자 상훈이 장독을 들여다보니 반 넘게 간장이 찬 독 속에 공은 떠 있는데 발가락으로 서도 손이 닿을 듯 말 듯하다. “어어어!” 공을 집어내려던 상훈이 장독 속에 거꾸로 처박혀버렸다. 장독 속에서 몸을 뒤집을 수 없어 상훈은 두발만 첨벙거리며 발버둥쳤다. 또래 학동들이 발을 잡고 당겨봤지만 허사였다.
“사람 살려!”
학동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행랑아범의 아들이 자기 머리통만한 돌멩이를 들고 달려와 장독 아랫부분을 내리쳤다. 퍽 소리와 함께 간장이 콸콸 쏟아지자 몰려온 사람들이 독 속에서 기절한 채 처박혀 있던 상훈이를 꺼냈다. 김대감은 새파랗게 질렸다.
마침 행랑아범이 어릴 때
강가에 살았는지라 물에 빠진 사람 응급처치법을 알고 있었기에 가슴을 치고
인공호흡을 해 상훈의 폐에 고인 간장을 토하게 하자 상훈은 살아났다.
이튿날 김대감이 행랑아범 부자를 불렀다.
“너희가 내 아들을 살렸다.
소원이 무엇이냐? 무엇이든 들어주겠다.”
“그냥 이대로 사는 게 소원입니다.”
행랑아범의 말에 김대감은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집 앞에 아홉칸 기와집을 지어 행랑아범 부자를 이사시켰다.
문전옥답 서른마지기를 떼줬으며 청상과부 침모와 혼례식도 올려줬다. 행랑아범의 아들은 김대감 아들과 의형제를 맺고 함께 서당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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