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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복덩어리

by 까망잉크 2019. 2. 6.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복덩어리

손이 귀한 집안의 5대 독자 송 도령 꽃 피는 춘삼월 혼례 치르고 첫날밤에 신부의 눈물을 보며 무엇인가 
직감적으로 느끼는데…

열여섯 살 송 도령이 장가들 나이가 되었다. 
손이 귀한 집안의 5대 독자라 집에서는 하루빨리 장가보내 엉덩이 떡 벌어진
  색시가 가을무 뽑듯 고추 달린 놈을 쑥쑥 낳아주기만 바라는 것이다.
  송 도령은 신랑감으로 나무랄 데가 없다. 이목구비 반듯하고 허우대는 훤칠한 데다
 머리도 영특해 초시에 합격했고 내후년쯤엔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를 볼 참이다. 
송 도령네는 증조부가 참판까지 한 뼈대 있는 집안이지만 대대로 청렴하여 넉넉하지
 않은 게 흠이라면 흠이다. 

과거에 몇 번 떨어진 송 도령 아버지가 한눈 안 팔고 열심히 농사짓고 
온 식구가 청빈한 생활에 익숙해 보릿고개에도 다른 집에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하는 처지는 아니다. 
늙은 매파가 문지방이 닳도록 송 도령네를 들락날락거렸다. 
앞니가 빠져 말이 새는 매파는 귀가 어두운 송 도령의 할머니를 물고 늘어진다.
  “이물 훠하지 흐단 머리에 언던짝은 이만하고 단지 히가 머근 게 타리지. 
지안 조치….”
  삼십 리 밖에 있는 색싯감 집안도 양반 가문에 대대로 덕을 베풀어 인심을 잃지 않았다고 자랑이다. 마침내 꽃 피고 새 우는 춘삼월에 신부네 드넓은 마당에서 혼례가 치러졌다. 신부네 동네는 집성촌으로 모두가 아주머니·아저씨, 형님·동생이다. 그런데 신부 측 어른들의 얼굴에 한결같이 수심이 가득하다. 혼례를 마치고 첫날밤이 왔다. 가물거리는 촛불 아래 원앙금침이 펼쳐졌고, 윗목엔 밤중에 배고플세라 주안상이 차려졌고, 모란꽃에 나비가 너울거리는 여덟 폭 병풍이 문을 가로막았다. 화촉동방이라 신랑·신부는 촛불을 사이에 두고 부끄러운 듯 마주 앉았다. 송 도령은 고개를 푹 숙인 신부의 족두리를 젖히고 얼굴을 자세히 봤다. 오똑한 콧날, 앵두 같은 입술, 백옥 같은 살결, 짙은 속눈썹에 사슴처럼 큰 눈. 그런데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 좋은 날에 왜 눈물을 보이시오? 무슨 연유인지 말 좀 해보시오.” 신부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송 도령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신부 측 가족들의 수심에 찬 얼굴도 떠올랐다. 울음을 멈춘 신부에게 송 도령이 말했다. “술 한잔 따라주시오.” 신부는 묵묵부답이다. “감주 그릇을 건네주시오.” 신부는 미동도 않는다. 이럴 수가! 송 도령은 철퇴로 뒤통수를 맞은 듯 멍해졌다. 신부가 벙어리에 귀머거리인 것이다. 송 도령은 주안상을 당겨 술을 마시며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촛불을 껐다. 
이튿날 아침, 신부의 이모가 이부자리를 정리하러 신방에 들어와 
요 위의 붉은 자국을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처갓집 식구들이 흐느껴 울며 송 도령, 아니 송 서방의 두손을 잡았다. 
송 서방이 귀머거리 신부를 제 집으로 데려가자 이번엔 온 집안이 망연자실, 넋을 잃었다. 
송 서방의 할머니는 매파를 불러 따졌다. 하지만 “단지 히가 머근 게 타리라고 말해잖아요”
 하는데, 그걸 지금 따져서 무엇하나. 송 서방의 할아버지가 말했다.
 “모든 게 하늘의 뜻이다.”  며느리는 연년생으로 아들 둘을 낳았다. 
손 귀한 집안에 경사가 났다. 첫 손자가 세돌 때 며느리는 쪽풀을 베어와 쪽물을 뽑더니
  비단에 쪽염색을 해서 옷을 만들어 입혔다. 
쪽빛이 너무 예쁘다고 친척들이 비단을 가져오길래 쪽염색을 해줬더니 
소문이 퍼져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왔다. 시아버지는 온 밭에 
쪽풀만 가꾸고 귀머거리 며느리는 마당에 독을 열 개나 놓고 쪽물을 뺀다.
  송 서방 집안이 풍성해지고, 송 서방은 과거에 급제하고, 
며느리는 아들 하나를 또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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