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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여색은 사람 죽이는 도적과 같다

by 까망잉크 2019. 3. 23.

여색은 사람 죽이는 도적과 같다

몽촌
2015. 4. 10. 16:14
색유(色喩)
여자를 경계함 이규보(李奎報)

세상에서 색(色)에 혹하는 자가 있는데, 소위 색이란 것은 붉은가, 흰가, 푸른가, 빨간가. 해ㆍ달ㆍ별ㆍ놀ㆍ구름ㆍ안개ㆍ풀ㆍ나무ㆍ새ㆍ짐승이 모두 빛이 있으니, 이것이 능히 사람을 현혹하는가. 아니다. 그러면 금과 옥의 아름다운 것, 옷의 현란한 것, 궁실(宮室)과 집의 크고 사치한 것, 능라ㆍ금수의 화려한 것, 이것들이 모두 빛의 더욱 갖춘 것이라, 이것이 능히 사람을 현혹하는가. 그럴 듯하나 그렇지도 않다.

대개 이른바 색이란 것은 사람(여자)의 고운 빛이다. 푸른 머리, 흰 살결, 기름과 분을 바르고, 마음을 건네며 눈으로 맞으면, 한번 웃음에 나라를 기울이니, 보는 자는 모두 정신이 아찔하고, 만나는 자는 모두 마음에 혹하여, 몹시 귀애하고 사랑하기에 이르면 형제와 친척도 그만 못하여진다. 그러나 그것이 귀애함을 받고는 이에 배척하고 사랑을 받고는 이에 도둑질하나니, 그대는 듣지 못하였는가. 눈의 애교 있는 것은 이를 칼날이라 하고, 눈썹의 꼬부라진 것은 이를 도끼라 하며, 두 볼이 볼록한 것은 독약, 살이 매끄러운 것은 안 보이는 좀벌레이다. 도끼로 찍고 칼로 찌르며 안 보이는 좀으로 파먹고, 독약으로 괴롭히니, 이것이 해로움의 끔찍한 것이 아닌가. 해(害)가 적(敵)이 되면, 그 어찌 이길 수 있으랴. 그러므로 도둑이라고 하고, 도둑을 만나면 죽는데 어찌 다시 친할 수 있으리오. 그러므로 배척한다고 한다.
​(人之色也。鬢綠膚晳。飾以脂澤。心挑目逆。一笑傾國。見之者皆迷。遇之者皆惑。及其嬖愛。雖兄弟親戚莫若也。然其嬖之也乃斥。其愛之也乃賊。子不聞乎。眼之嬌者斯曰刃。眉之曲者謂之斧。頰之豐者毒藥也。肌之滑者隱蠹也。斧以伐之。刃以觸之。隱蠹以食之。毒藥以苦之。玆非害之酷者乎。害之作敵。其能克乎。故曰賊。遇賊而殂。能復親乎。故曰斥。)

안으로의 해(害)가 이미 이와 같으나 밖으로의 해는 또 이보다 더 심하다. 색(色)의 아름다움을 들으면 곧 가산(家産)을 망치는데도 구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색의 꾐에 빠지면, 호랑(虎狼)을 범하면서도 뛰어들기를 사양하지 않는다. 좋은 색을 집안에 기르면 사람들이 시기하며 샘하고, 아름다운 색을 몸에 부딪치면 공명(功名)도 타락하고 만다. 크게는 임금, 작게는 경사(卿士)가 나라를 망치고 집을 잃음이 이에 말미암지 않음이 없다.

주(周) 나라의 포사(褒姒=1)와 오(吳) 나라의 서자(西子=2)며, 진 후주(陳後主)의 여화(麗華=3), 당 현종(唐玄宗)의 양씨(楊氏=4)가 모두 임금께 아양떨고 임금을 현혹시켜 화태(禍胎)를 길러내어 주 나라가 그 때문에 넘어지고, 오 나라가 그 때문에 거꾸러졌으며, 진(陳) 나라 당(唐) 나라가 그 때문에 무너지며 쓰러지고 말았다. 작게는 녹주(綠珠=5)의 아양 부리는 태도가 석숭(石崇)을 망치고, 손수(孫壽=6)의 요망한 단장이 양기(梁冀)를 현혹하였으나, 이같은 유례(類例)를 어찌 모두 이루 적으랴.

아, 나는 장차 풀무를 흔들고 숯을 피워 막모(嫫母=7)ㆍ돈흡[敦洽=8 둘 다 추녀(醜女의 이름]의 얼굴 천천(千千), 만만(萬萬)을 부어[鑄] 만들고, 그 요망스러운 얼굴들을 모조리 그 속에 가두어 버리려 한다. 그런 뒤에 칼로 화보(華父=9)의 눈을 후벼다가 정직한 눈알로 바꾸고, 쇠로 광평(廣平=10)의 창자를 만들어 음란한 자의 뱃속에 집어넣으려 한다. 그리하면 비록 난초의 향내나는 기름과 분[脂粉]의 연모가 있어도, 똥ㆍ오줌ㆍ진흙ㆍ흙덩이일 뿐이요, 모장(毛嬙=11) 서시(西施 미녀 이름)의 예쁨이 있어도 돈흡과 막모일 뿐, 또 제 어찌 혹함이 있으랴.
 
고전번역서   동문선(東文選)  제107권 > 잡저(雜著)  
ⓒ 한국고전번역원 ┃ 이지형 (역)

​1)주 유왕(周幽王)의 총희로, 유왕은 그녀를 웃기려고 거짓 봉화를 올리곤 하다가 정작 반란군이 쳐들어왔을 때는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2)월나라의 왕 구천(勾踐)이 오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미인계로 바쳤던 여자. 부차는 그녀가 좋아하는 뱃놀이를 위해 대운하 공사를 벌이고, 그로 인해 국력이 낭비되어 월나라와의 대적에서 패한다.

 3)진(陳)나라의 마지막 황제 진숙보(陳叔寶)는 장여화(張麗華)라는 소녀를 총애해서 정사를 볼 때에도 무릎에 앉힌 채로 대신들을 맞았다고 한다. 결국은 수나라 양제(煬帝)에게 패하였다.

 4)양귀비(楊貴妃)는 원래 당 현종의 총희. 서시, 왕소군, 초선과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힌다. 현종은 원래 며느리였던 그녀를 화산의 도사로 출가시켜 아들에게서 빼내고, 궁 안에 도교사원을 짓고 그곳의 여관(女官)으로 불러들인다. 그녀의 애인 안록산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당나라는 서서히 몰락한다.

 5)진(晋)의 석숭(石崇)은 거부(巨富)였다. 그는 금곡원(金谷園)에서 유상곡수(流觴曲水)를 하면서 호화로운 풍류를 즐겼다. 그의 애첩(愛妾) 가운데 녹주(綠珠)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당대의 권력자 손수(孫秀)가 그녀를 빼앗으려다가 이루지 못하자 왕의 명령을 가장하여 석숭을 체포하여 죽였다.

6)손수(孫壽)는 후한 환제(桓帝) 때 권력을 잡은 대장군 양기(梁冀)의 아내이다. 아름다우면서도 드센 성격을 가졌다. 손수는 양기를 움직여 손씨 집안의 사람들에게 높은 벼슬을 내리게 했다. 양기가 미녀 우통기(友通期) 간통하자, 우(友)씨 집안사람들을 몰살시켰다. 나중에 환제의 노염을 사게 되자, 남편과 함께 자살했다.

7)모모(嫫母)는 황제(黃帝)의 넷째 비(妃)의 이름으로 어질고 덕이 높았으나, 얼굴은 추하고 못생겼다고 한다.《열녀전》

8)돈흡(敦洽)은 전국 시대 진(陳)나라 추녀로서 덕(德)이 높아 진후(陳侯)에게 발탁되었다.《呂氏春秋 過合》

9)송나라 사람. 화보는 자이고 이름은 독(督). 길에서 공보(孔父)의 처를 보고, 그 요염함에 반하여 공보를 죽이고 그 아내를 탈취하고야 만다. 그런데 이 일로 송나라 상공이 크게 노하자, 벌을 받을 것이 두려워 그 군주마저 시해해 버렸다. 

10)광평(廣平)은 당나라 송경(宋璟)의 자(字). 사람들은 그가 정조가 굳고 마음이 철석같아 고운 문장은 짓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데, 그가 지은 매화부(梅花賦)는 청신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11)모장(毛嬙)은 서시(西施)와 함께 고대 미인으로 손꼽히던 여인으로 월왕 구천이 사랑하던 후궁이다.《戰國策 齊策》


이하 한국일보 [사색의 향기] 이규보 '색유(色喩)'의 메시지

일가를 이루어 행세하던 사람들이 정욕 때문에 인생을 그르친 일이 많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다스리기 힘든 것이 정욕이다. “색계의 문제에서 영웅과 열사가 없다(色戒上 無英雄烈士)”는 옛말이 그래서 나온 모양이다.

사람이라면 남녀의 욕정이 없을 수 없기에 마음을 수양하는 학자들은 여색(女色)을 멀리하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고려의 문호 이규보는 ‘색유(色喩)’라는 글을 지어 “검은 머리와 흰 피부를 예쁘게 꾸미고서 마음과 눈짓으로 유혹하여 한 번 웃으면 나라가 휘청거린다. 보고 만나는 사람은 다 어찔해지고 다 혹하게 되니 형제나 친척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 그에 미치지 못하게 된다”라 했다. 이렇게 하여 자신을 망치고 사회와 국가까지 멍들게 한다.
어찌해야 하는가? 이규보는 “아리따운 눈동자는 칼날이요 둥그런 눈썹은 도끼며 도톰한 볼은 독약이고 매끈한 살갗은 좀벌레다”라고 했다. 도끼로 찍고 칼날로 베고 좀벌레가 파먹고 독약으로 괴롭히면 사람이 살아날 수 없으므로 여색을 사람 죽이는 도적과 같이 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눈앞의 아름다운 여인이 어찌 강도처럼 보이겠으며 자신을 죽일 것이라 여기겠는가? 이규보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 천하에서 가장 못 생긴 여인의 얼굴을 수천 개, 수만 개 만들어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에 덮어씌우고, 잘 생긴 여자를 유혹하는 인간은 눈알을 도려낸 다음 바르고 곧은 눈으로 바꾸며, 음란한 자는 철석간장(鐵石肝腸)을 만들어 그 뱃속에다 집어넣을 것이라 했다.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아름답게 꾸민 여인이라 하더라도 똥과 흙을 덮어쓴 것처럼 여길 것이라 했다.

이규보는 삼혹호(三酷好) 선생이라 하여 거문고와 시와 술을 매우 좋아하였다. 그러고도 여색에 빠지지 않기는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과격하게 여색을 멀리하는 법을 말한 것이리라. 이규보는 ‘우레 치는 날의 생각(雷說)’이라는 글에서 우렛소리를 듣고서 가슴이 철렁하여 잘못한 일이 없는지 거듭 반성했다면서 이런 일을 소개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읽다가 화보(華父)라는 자가 아름다운 여인과 마주쳤을 때 눈길을 떼지 못한 대목에 이르러 화보가 참으로 잘못이라 탄식했다. 그래서 이규보는 평소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돌려 달려갔지만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달려가더라도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고 반성했다. 그렇게 조심하던 이규보였지만 74세 노령에 어떤 미인과 몸을 비비고 노는 꿈을 꾸었다. 방사(房事)를 끊은 지 오래되었건만 어찌 이리 해괴한 꿈을 꾸었을까 고민하는 시를 남긴 바 있다.

여색을 멀리하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가 보다. 당나라 여암(呂巖)은 번뇌와 탐욕과 정욕을 끊기 위해 세 자루 칼을 늘 차고 다녔다고 한다. 또 효종은 ‘자경편(自警編)’이라는 책에 욕정을 참지 못한 사람이 늘 부모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서 그 밑에서 잠을 잤다고 하는 일화를 들고 의미 있다고 했다. 칼을 차고 다니든가 부모님의 사진을 가까이 두고 있으면 도움될 것인가? 좀 더 솔깃한 방법이 있다.

18세기 학자 성대중은 나이가 예순인데도 피부가 팽팽하고 윤기가 흘렀다. 훤한 얼굴과 하얀 머리카락이 사람들의 눈을 시원하게 하였다. 노인의 기색이라고는 찾을 수 없었다. 평생 약이라곤 입에 넣어본 적도 없었다. “사람마다 몸에 제각기 약이 있지만 사람들이 이를 알지 못한다(人人身上 自各有藥 但人不知耳)”라면서 자신의 비결은 약이 아니라 자제력에 있다고 했다. “어릴 적에 병약하여 열대여섯이 되도록 음란한 일을 알지 못했다. 17세에 가정을 꾸렸지만 남녀의 일을 잘하지 못해 1년에 겨우 몇 번만 관계를 가졌다. 쉰이 넘은 뒤로는 아내도 가까이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게 돼 평생 병이 없어졌으며 아내도 병이 적어지고 밥도 많이 먹게 되고 피부도 그대로였다. 그래서 마침내 부부가 해로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일생 동안 한 번도 처방을 받아 약을 먹은 적이 없지만 아침마다 약을 복용해도 병이 몸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낫다고 하고는 ‘내 약을 내가 먹은 것(吾藥吾服)’에 불과하다고 했다. 남들이 파는 약을 먹을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제력이 노화를 막는 비결이라 했다. 이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라면 자제력이라는 제 몸에 있는 약을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종묵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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