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역의 기적 소리
성동역의 기적 소리 지금으로부터 꼭 44년 전, 군에서 제대할 무렵 서울 처녀와 선을 본 이야기다. 선을 봐서 결혼이 성사된 것도 아니면서 이런 추억담을 늘어놓는 것은 그 처녀에게는 퍽 미안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 여인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이 남아 있기에, 어쩌다 인연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 사연만이라도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서이다. 서울 친척의 권유로 선을 보기 위해 소공동 어느 지하 다방에서 처녀를 만난 건 오후 여섯 시 좀 지나서였다. S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다는 B녀는 전공과는 다르게 H은행 행원으로 근무했지만 첫 눈에 봐도 세련된 신시대 여성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았다. 얼굴은 동그스름하고 뽀얀 피부, 고운 눈매가 나도 그랬지만, 어떤 총각에게라도 관심을 끌 만했다.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관심사도 이야기했다. 그 때 젊은이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영화 이야기나 그녀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음악은 잘 모르니까 그때 내가 본 영화 '아이방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영화 '로즈 마리'의 달콤한 주제곡 이야기를 하자 그녀도 그 때 젊은이들이 좋아한 도리스 데이(Doris Day)의 'Secret love', Platters의 'Only you' 등 팝송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그리고 문학에 관한 이야기도 했지만 그런 말들은 다 말머리에 불과하고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는 서로의 의중을 알아보는 것이다. 나이 스물 일곱인 내가 군 장교생활을 몇 년 했으니 철은 좀 들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대해서 금방 일할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집안이 넉넉해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거기에다 결혼이 성사된들 농촌에서 시어머니 모시고 시집 살릴 판이니 그리 자신 있게 나를 내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 그럴싸한 말들은 오갔지만 지금까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서로의 의중을 떠보는 말을 건네야 할 때가 아닌 가. 그래도 남자라고 내가 서두를 먼저 꺼냈다. "저가 몇 가지 말씀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예, 하세요." 가볍게 대답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나는 무슨 심각한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목청을 한번 가다듬고는 "한국은행의 지폐 뭉치의 냄새와 시골의 흙냄새가 어떻게 조화가 될 수 있으며, 서울에서 배운 노래와 춤이 어떻게 시골의 호미와 삽으로 된 가락으로 장단을 맞출 수 있겠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정말 뚱딴지같은 소리를 한 게다. 남자라고 좀 시건방진 소리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제법 그럴싸한 말로 명문대학에서 공부한 엘리트 처녀를 멋있게 꼬셔보는 수작이거나, 아니면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어야 할지 모르는 촌놈이 앞에 얌전히 앉아 있는 서울 처녀 기죽이는 소리를 한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은행에 근무하는, 아니 그것도 한은 본점(韓銀本店)에 근무하고 있는 여자가 시골에 와서 어떻게 사느냐, 그리고 세련된 서울 여자가 당장은 직장도 없는 경상도 촌놈하고 어떻게 살 수 있나 하는 것을 내 딴에는 멋을 부린 표현이랍시고 지껄인 말인데, 어찌 보면 나도 제법 용기 있는 청혼을 한 셈이다. 처녀는 얼굴이 약간 붉어진 듯 엷은 미소를 띠면서 한참 듣고 있더니 "여자란 물과 같아서 물은 어떤 그릇에 담기던지 그릇의 형태에 따라 물의 모양이 바뀌는 거지요. 그릇의 모양에 맞춰 살아가야죠." 남자를 형이 잡힌 그릇에 비유하고 여자를 그릇의 모양에 따라 담겨지는 물 같은 유동적인 것으로 비유하는 것이 아닌가? 이 촌놈의 귀가 번쩍 뜨였다. 나의 질문도 그럴 듯했겠지만 여인의 답변도 제법 재치 있는 답인 것 같았다. 나는 감탄에 가까운 소리로 "아! 그렇습니까." 이런 대화는 누가 들어봐도 여인이 나의 구혼을 받아들인다는 뜻임이 분명하다. 어찌 보면 시골 촌놈의 구혼이 성공한 셈이 아닌가. 내심 통쾌하기도 하고. 그 후에도 우리는 소공동 방갈로(Bungalow)다방에서, 아니면 경복궁 돌담길을 걸어가면서 음악 이야기, 문학 이야기,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정을 확인하려 노력했다. 그해 봄과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자 우리는 서울에서 배운 노래와 춤이 시골의 호미와 삽으로 된 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는 사랑을 약속했다. 마치 봄에 뿌린 씨앗이 가을에 열매를 맺듯. 그리고 동해 바닷가를 거닐면서 사랑을 나누자고 했다. 어느 날 바다로 가기 위해 서울 성동역에서 10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그 날 따라 가을비는 추적추적 내렸다. 당신의 그릇에 담기고 싶다던 B녀는 어쩐지 시간이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11시가 되자 바다로 떠나는 기차는 기적 소리를 울리고, 기차는 떠나버리고..., 호주머니 속에 움켜쥐고 있던 기차표 두 장도 찢어버리고. 역 대합실에서 하염없이 서성이다가 우산을 받쳐들고도 비에 젖은 채 돌아섰다. 그날 오후에 나는 경부선 열차를 탔다. 서울역을 떠나는 기차의 기적소리는 성동역 기적소리보다 더 구슬피 울렸다. 대구역에 내릴 때까지 비는 내리고. 그 후, 내 마음은 그날의 비에 오랫동안 축축이 젖어 있었다. 나는 흙냄새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호미와 삽으로 된 나의 가락으로 혼자서 춤을 추었다. 그리고는 B녀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비가 추적이 오는 날에는 그 때 그 성동역의 기적 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 그녀는 나보다 더 넓은 그릇에 담긴 행복한 물이 되어 서울역 기차를 타고 더 먼 바다로 떠나갔겠지. 아니면 비행기라도 타고...... - 김 성 복 - |
<옮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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