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은 조선 최고의 직장… 양반서 노비까지 모두 자부심 갖고 일해
기사입력 | 2021-09-03 10:30
관리·비서·사무·기술·경비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신하 사무실’ 궐내각사에서 근무
양반들 선호하는 곳 기준은 ‘왕과의 거리’… 문관은 자문역할 홍문관, 무관은 왕 경호하는 선전관청 ‘베스트 잡’
흔히 궁궐은 왕과 왕족들이 사는 곳 정도로 인식할 뿐, 조선에서 가장 핫한 직장이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궁궐에 관한 이야기는 대부분 왕에 관한 것에 한정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궁궐을 직장의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전개된다. 궁궐은 나라의 주인인 왕의 업무 공간이자 생활공간이기도 했지만, 뭇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궁궐을 직장으로 둔 사람들을 살펴보면, 신분상으론 최상층인 양반부터 최하층인 노비까지 모든 계층이 있었고, 업무적으론 관리직에서부터 비서직·사무직·전문직·기술직·경비직·잡직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들 대부분은 매일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이들은 어디서 근무하고 어떤 처우를 받았을까?
궁궐은 크게 내전과 외전으로 구분하는데, 내전은 왕과 그 가족들의 생활공간이고, 외전은 왕의 업무공간이다. 그래서 내전은 궁궐 깊숙한 곳에 뒀는데, 이곳엔 임금이 사생활을 하는 침전, 왕비가 머무는 중궁전, 대비가 머무는 대비전, 후궁들과 궁녀들이 머무는 여러 건물이 모여 있다.
한편 외전은 임금이 평소에 업무 공간으로 사용하는 편전(사정전)을 기점으로 바깥쪽으로 배치돼 있는데, 편전 바깥으로는 경복궁의 근정전을 비롯해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 등과 같이 공식 행사를 치르는 정전이 있고, 정전의 담 바깥에 왕을 보좌하는 신하들의 사무실인 궐내각사가 있다. 궁궐을 직장으로 삼아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모두 궁궐 속에 있는 관청을 뜻하는 궐내각사에서 근무한다.
그러면 궐내각사는 구체적으로 궁궐 어느 곳에 배치돼 있었을까?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을 사례로 삼아 한 번 살펴보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에 들어서면 정면에는 흥례문이 보이고, 흥례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교서관과 승문원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전연사와 전설사가 있었다. 그리고 흥례문 왼쪽의 용성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내사복시가 있었고, 또 용성문의 반대편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위도총부를 만날 수 있었다. 이 관청들의 임무가 무엇인지는 뒤에 논하기로 하고, 경복궁 안으로 계속 들어가 보자. 흥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는 근정문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유화문이 있었다. 대다수의 궐내각사는 유화문을 열고 들어가면 만날 수 있었다.
유화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간원이 맨 앞에 있고, 그 안쪽에는 승정원·홍문관·예문관이 나란히 있었다. 거기서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흠경각·내의원·상서원·사옹원·춘추관·관상감·내반원·수정전(집현전)·빈청·경연청·금군청·선전관청·액정서·내수사 등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흥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 근정문이 보이는데, 근정문 안으로 들어서면 정전인 근정전이 있고, 그 오른쪽에 있는 일화문을 빠져나가면 세자가 머무는 동궁이 나온다.
이렇듯 궁궐 안에는 20여 개의 관청이 있었다. 이곳에는 양반부터 노비에 이르는 계층들이 매일 같이 출퇴근을 하며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궁궐에서 근무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심지어 계약직이거나 월급이 없는 무급직이라도 궁궐에서 근무하는 것을 매우 선호했다. 조선시대 궁궐은 그만큼 핫한 직장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궁궐 속 직장들 중에 ‘베스트 잡(job)’은 어디였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우선 궁궐 속 직장들의 임무와 역할을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궁궐 속에 있는 20여 개 기관의 임무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됐다. 첫째는 왕의 업무를 보좌하는 것이고, 둘째는 왕과 왕족의 신변을 보호하는 것, 셋째는 사생활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왕의 업무를 보좌하는 역할을 한 기관으로는 승정원·홍문관·예문관·사간원·승문원·상서원·교서관·춘추관·빈청·오위도총부 등이 있었다. 이 기관들의 주된 임무는 국정 논의, 자문, 문서 작성, 군무 등이었다. 신변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 기관으로는 금군청과 선전관청이 있었다. 그리고 내반원을 비롯해 내의원·사복시·내사복·액정서 등 여타 기관들은 생활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이 기관 중에 조선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고 우러러보는 직장, 즉 베스트 잡은 어디였을까?
조선은 신분 사회였으니, 당연히 양반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직장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은 왕조 사회로서 왕을 정점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구조였다. 왕은 입법, 사법, 행정권을 모두 가진 절대 권력자였다. 그리고 양반은 왕의 명령을 받아 권력을 행사하는 관리 계층이었다. 따라서 양반의 직장 선호도는 당연히 왕과의 거리와 비례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관리는 권력을 행사하는 계층인 만큼 권력의 정점인 왕과 가까이 있을수록 권력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관직 중에서 왕과 가장 밀접한 기관은 어디였을까? 우선 문관 직을 살펴보면 왕의 비서기관인 승정원이 있고, 왕의 자문기관이자 언론 기관인 홍문관, 왕의 글을 짓고 사초를 작성하는 예문관, 그리고 간언을 전담하는 사간원 등 네 부서를 꼽을 수 있다. 이 네 기관의 공통점은 모두 대궐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네 부서의 관원이 된다는 것은 출세가도에 올랐다는 뜻이기도 했다. 특히 이 네 기관 중에 홍문관을 최고의 부서로 꼽았다. 그래서 홍문관은 ‘가장 깨끗한 요직’이라는 뜻의 청요직(淸要職)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홍문관은 예문관과 함께 나라의 학문을 책임질 뿐 아니라 임금의 자문기구이면서 동시에 언론 기관이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않기 때문에 책임도 무겁지 않았다. 사헌부와 사간원과 함께 언론삼사(言論三司)로 불렸지만 사헌부는 권력을 행사하는 곳이고, 사간원은 간쟁을 전담하는 부서인 데 반해 홍문관은 학문과 자문, 언론에만 치중하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적었다. 이것이 홍문관을 사헌부나 사간원보다 선호하는 이유였다. 또한 홍문관의 관리는 예문관의 상위 직책을 겸하기 때문에 왕의 글을 짓는 데도 간여한다. 하지만 예문관 관원들처럼 사초를 작성하는 임무가 없기 때문에 피로도가 덜하고 책임감도 덜하다. 홍문관은 여러모로 문관들이 선호하는 장점들만 모아놓은 기관인 셈이다. 이에 비해 승정원의 주서와 승지들은 항상 격무에 시달리고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도 매우 심했다. 특히 승지들은 육조의 모든 업무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늘 무거운 책임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런 까닭에 왕과 가장 가까운 부서 중에 홍문관을 제일의 직장으로 꼽는 것이다.
이렇듯 홍문관이 문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베스트 잡이라면, 무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베스트 잡은 어디일까? 바로 무관직 중에서 유일하게 청요직으로 분류됐던 선전관청이다. 선전관청은 무반들의 승정원으로 불리는 곳인데, 홍문관 관보다 왕의 신임이 더 높은 기관이었다. 선전관청의 가장 주된 임무는 병력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부신의 출납과 전국 각 군에 왕명을 전달하는 역할, 그리고 무엇보다도 왕의 목숨을 지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전관은 왕이 외부로 나갈 때는 가장 근거리에서 왕을 경호하고, 왕이 잠자리에 들면 목숨을 걸고 침전을 지켰다. 물론 야간에 왕을 가장 가까이서 시중드는 존재는 궁녀와 환관이다. 하지만 그들은 왕의 사생활을 시중드는 역할을 할 뿐이었고, 왕의 목숨을 지키는 역할은 선전관의 몫이었다. 선전관은 왕 주변에서 유일하게 칼을 차고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왕이 가장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만이 선전관에 임명되는 것은 당연했다.
선전관의 숫자는 대개 20명 정도였는데, 정3품 당상관인 선전관 1인이 행수로서 예하를 통령하는 책임을 졌고, 그 밑으로 종6품의 참상관인 선전관이 3인, 종9품의 참하관인 선전관이 17인 있었다. 조선의 왕들은 이들 선전관에게 매일 밤 자신의 목숨을 맡긴 채 잠들었던 것이다. 이렇듯 선전관의 임무가 막중했던 까닭에 선전관 출신들은 고속 승진의 특전을 입어 조선 무관의 중추로 성장했다. 한마디로 출세가 보장된 직책이었으니, 무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베스트 잡일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작가
■ 용어설명
청요직(淸要職) : ‘가장 깨끗한 요직’이자 ‘지위가 높고 귀한 관직’을 뜻한다. 조선 문관들이 선호한 언론기관인 ‘홍문관’은 청요직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무관직 가운데 유일하게 청요직으로 분류된 기관은 ‘선전관청’이다. ‘무반들의 승정원’으로 불린 선전관청은 병력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는 부신의 출납, 각 군에 왕명을 전달하는 역할, 왕의 목숨을 지키는 임무 등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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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생. 한국외대 독문과·철학과 졸업. 200만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크리미널 조선’ ‘에로틱 조선’ ‘메디컬 조선’ 등 다양한 역사 교양서를 집필했다. 흩어진 사료를 조합해 서사를 구성하는 스토리텔링으로 ‘대중 역사저술’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러스트=김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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