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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야간당번’ 지밀궁녀,

by 까망잉크 2021. 12. 24.

‘야간당번’ 지밀궁녀, 2교대 근무… 월급은 최고 980만원

기사입력 | 2021-12-24 10:20
 



■ 박영규의 지식카페 - ④ 궁녀들의 직장생활Ⅱ

궁녀들에겐 월봉 이외에 명절· 생일 때마다 따로 쌀·비단 제공… 상궁들에겐 ‘하녀 격’ 방자 쓸 수 있는 비용 별도 지급
월봉 상당액 주로 궁 바깥나들이때 기생·악사 고용 ‘유흥비’로 써… 대부분은 富축적하지만 직계자손없어 혈족들이 재산 차지


그렇다면 궁녀들은 어떤 방식으로 근무할까? 궁녀는 대개 격일제 근무이고, 야간 당번을 서야 하는 지밀 같은 경우만 하루를 주야로 나눠서 2교대로 근무한다. 흔히 이를 번(番)살이라고 한다. 번살이는 이미 견습나인 시절부터 시작되지만, 견습 시절엔 야간 근무는 하지 않고 낮에만 나인들의 보조자로서 근무한다. 일종의 예비 훈련인 셈이다.

지밀의 번살이가 본격화되는 것은 관례를 올린 뒤부터다. 번은 2명이 한 조가 되는데, 2명씩 4명이 낮과 밤으로 교체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낮 근무와 밤 근무가 서로 교대한다. 근무 교대 시간은 오후 3∼4시와 새벽이다. 교대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소 달라진다.

지밀 외의 다른 부서는 격일제로 근무한다. 비번일 때는 자신의 처소에서 개인 생활을 영위한다. 이렇게 근무 규정이 명백한 만큼 당연히 이들에게도 급여가 지급된다. 하지만 일반 관리들이 녹봉을 받는 것에 비해 이들은 월봉을 받는다. 녹봉(祿俸)은 녹과 봉을 결합한 용어로 녹은 나라에서 받는 토지를 말하며 봉은 곡식으로 주어지며 계절마다 곡식이 지급되는 데 비해 월봉은 매월 곡식 또는 돈으로 지급된다.

‘속대전’에 따르면 궁녀 중 최고위직인 제조상궁의 월급은 쌀 25말 5승, 콩 5말, 북어 110마리였다. 이는 정3품 당상관의 월급 수준이었다. 그리고 부제조상궁은 쌀 19말 5승, 콩 5말, 북어 90마리였다. 그 외의 상궁들은 쌀이 10말에서 16말 사이, 콩은 5말, 북어는 50마리에서 80마리 사이로 지급됐다. 또 고종 3년의 월급 명세서에 따르면 무수리 같은 비자들에게는 쌀 6말, 콩 3말, 대구어 4미가 지급됐다.

이를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려면 다소 복잡하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때인 1925년의 월봉 기록을 참고로 할 필요가 있다.

1925년 당시 여관과 비자들의 월급 명세표를 보면 지밀이 가장 많은 보수를 받고, 나머지 부서의 월급은 거의 비슷했다. 지밀은 가장 적게 받는 궁녀가 50원이고, 가장 많이 받는 궁녀가 196원이었다. 다른 부서는 최하 40원에서 최고 80원 사이였다. 그리고 비자들은 거의 일률적으로 18원이었고, 비자 중에 가장 우두머리만 20원이었다.

이를 지금의 돈으로 환산하자면 1925년 당시 1원의 가치가 대개 5만 원 정도였음을 고려할 때, 지밀 궁녀의 월급은 최저 250만 원에서 최고 980만 원 사이였고, 다른 부서는 200만 원에서 400만 원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여관들의 월급이다. 그리고 그 아래의 비자들은 대개 90만 원 정도 받았고, 비자의 우두머리만 100만 원 정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고정적인 월봉 이외에 명절이나 혼인, 생신 등을 치를 때마다 궁녀들에겐 따로 쌀이나 비단, 옷감 등이 내려졌고, 특히 상궁들에겐 월급 이외에 하녀 격인 방자를 쓸 수 있는 비용을 별도로 지급했다. 거기다 궁녀들에겐 거처까지 제공했음을 감안할 때, 당시 궁녀들의 월급은 결코 낮은 편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얼핏 생각하기에 혼자 사는 궁녀가 월급을 받아 어디에 썼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궁궐에서 평생 지내는 궁녀에게 무슨 돈이 필요했을까 싶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궁녀도 돈 쓸 곳이 많았던 모양이다.


대개의 궁녀는 아기나인과 견습나인 시절에 받은 월봉을 모두 부모가 대신 받았다. 아기나인도 월봉을 받는다는 사실을 의아하게 여기겠지만,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일단 궁녀로 발탁돼 입궁하면 나라에서 반드시 월봉을 지급했다. 심지어 4살 된 아기나인의 월봉을 지급한 기록도 있다. 물론 부모에게 곡식으로 지급된다.

견습나인 시절을 마치고 정식나인이 된 궁녀들은 대개 자신이 월봉을 관리한다. 그렇다면 이들 궁녀는 받은 월봉으로 무엇을 했을까?

궁녀들은 월봉으로 받은 돈의 상당액을 주로 바깥나들이에 쓴 것으로 보인다. 기생을 동원하고 궁궐의 별감이나 하인들도 동행해 한바탕 놀고 오는 것이 궁녀들에겐 최고의 낙이었다. 그런데 이런 놀이 한 번에 드는 비용이 꽤 컸다. 기생을 동원하면 음악이 뒤따르기 마련이고, 음악이 있는 곳에는 악사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들을 노는 자리에 동원하려면 상당히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궁녀들은 돌아가면서 이런 바깥놀이를 즐기는 것을 오랜 전통으로 여겼다. 그 때문에 그들이 받은 월봉의 상당 부분은 이를 위해 썼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궁녀들이 월봉을 먹고 노는 데만 쓴 것은 아니었다. 궁녀 중 상당수는 월봉을 차곡차곡 모아 재테크에 사용했다. 특히 상궁쯤 되면 궁궐 바깥에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고, 토지를 사들여 상당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이렇게 축적된 궁녀들의 재산은 대개 양자로 들인 조카들에게 상속됐다. 궁녀들은 비록 월봉과 여타의 일로 생기는 돈으로 부를 축적하긴 하지만 유산을 물려줄 직계 자손이 없기 때문에 결국 혈족들이 재산을 차지했다. 대다수의 궁녀가 월봉을 주로 먹고 노는 데 쓴 이유도 그들의 이런 처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궁녀는 궁궐에 한 번 들어가면 살아서는 나오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사실 궁녀는 절대로 궁궐 안에서 죽으면 안 된다. 혹 궁녀 중에 궁궐에서 불의의 사고로 숨을 거두면 측문으로 몰래 업어다 밖으로 내보내곤 했다. 그런 궁녀를 제외한 모든 궁녀는 산 채로 궁 밖에 나온다.

궁녀가 궁궐에서 내보내지는 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크게 보면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궁녀가 병들거나 늙어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이고, 둘째는 나라에 큰 재난이나 우환이 있을 때이며, 셋째는 궁녀가 죄를 지었을 때다.

궁녀는 원래 종신제이기에 죽을 때까지 궁 안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대개 나이가 60살이 넘으면 야간근무는 없어지고 주간에만 근무한다. 그런데 너무 늙어 주간근무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출궁한다. 또 젊은 상궁이나 나인이라도 병이 너무 깊어 근무할 처지가 되지 않으면 역시 출궁한다.

출궁한 궁녀는 대개 본가로 보내진다. 이럴 경우 본가의 동생이나 오빠, 또는 조카가 출궁할 궁녀를 데려가기 위해 궁 안으로 들어온다.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때, 이를테면 가뭄이 오랫동안 계속된다거나 궁궐에 우환이 지속될 때도 궁녀들을 내보낸다. 이 경우엔 대개 젊은 나인들이 출궁하는데, 그 이유는 나라의 재난이 시집을 가지 못한 여자들의 원한이 뭉친 결과라는 속설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속설은 오래전에 중국에서 생긴 것이다. 그리고 실제 중국에선 오제시대 이후로 줄곧 가뭄이 생기면 궁녀들을 방출하곤 했다. 또 당 태종 이세민은 가뭄이 너무 심해 메뚜기 떼가 창궐하자, 자신이 직접 메뚜기를 잡아 씹어먹으며 백성들을 독려했고, 이어 궁녀 3000명을 해방하기도 했다. 이런 중국의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나라에 변고나 재난이 생기면 궁녀를 내보내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궁녀는 출궁했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의 몸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궁녀는 입궁할 때에 이미 임금의 여자가 된 것으로 간주되기에 다시 시집을 갈 수 없도록 했다. 궁녀를 해방시키는 원래 의도가 결혼하지 못한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또 결혼하지 못한 총각들에게 짝을 내어준다는 의미인데, 실제는 전혀 실행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죄를 지은 궁녀를 출궁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죄지은 궁녀들은 섬으로 귀양을 보냈다.

영조 10년 9월 27일에 어기(御器)를 훔친 궁녀를 특별히 사형에서 감형한 기록이 있다. 이때 감형된 궁녀는 섬으로 귀양 갔다. 귀양 간 궁녀는 대개 관비로 지내며 노역을 해야 했는데, 절대 결혼은 허락되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출궁한 궁녀들은 죽은 뒤에는 대개 화장됐다. 하지만 모든 궁녀가 화장된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 일부는 화장되지 않고 무덤이 마련됐다. 그들의 무덤은 대개 한성 주변에 있는데, 경기도 고양시엔 최근까지 궁녀들의 무덤이 남아있었다.


■ 용어설명

번(番)살이 : 궁녀들의 근무 방식을 일컫는 용어. 궁녀들은 보통 격일제로 근무했는데, 야간 당번을 서는 ‘지밀’은 주야 2교대로 일했다. 견습나인 시절부터 ‘번살이’를 시작하지만, 일종의 예비 훈련을 받는 견습 땐 야간근무는 하지 않고 낮에만 나인들의 보조자로 근무했다.

일러스트 = 김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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