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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무튼, 주말] ‘백수의 왕’이 둥지 틀었던 인왕산... 그 깨알같던 추억

by 까망잉크 2022. 1. 14.

2022. 1. 14.

[아무튼, 주말] ‘백수의 왕’이 둥지 틀었던 인왕산... 그 깨알같던 추억

[김동규의 나는 꼰대로소이다]

김신조 청와대습격사건부터
이건희 기증 ‘인왕제색도’까지

김동규 서울대 신경외과학 명예교수 '마음 놓고 뀌는 방귀' 저자
입력 2022.01.08 03:00
 
 
 
 
 
일러스트=안병현

정월의 긴긴 밤이 깊어갔다. 난롯가에서 식구들이 한가롭게 이야기를 나누며 ‘이한치한(以寒治寒)’이랄까, 얼음이 서걱서걱 씹히는 동치미에 찬밥으로 밤참을 즐기고 있는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느닷없이 귀를 찢는 굉음과 함께 밖이 대낮같이 훤해졌다. “이게 어찌 된 일이래. 무슨 날도 아니고, 불꽃놀이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약간 무서웠으나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서울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인왕산 기슭에 살던 어린 시절이었다.

북쪽 하늘에서 난리가 났다. 무언가 로켓처럼 위로 솟구쳐 올라가 ‘뻥!’ 하고 터지면서 사방을 밝혔다. 가끔 국경일에 있는 불꽃놀이와는 딴판이었는데 알고 보니 어둠을 밝히는 조명탄이었다. “어라, 저기는 청와대 부근이 틀림없는데. 사달이 나도 보통 크게 난 게 아닌 모양이네.” 슬쩍 건들기만 해도 터질 듯 남북한 간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인 1968년의 1·21사태가 만천하에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생중계된 TV 회견에서 “청와대를 까부수고, 박정희 목을 따러 왔습네다.” 생포된 무장 공비 ‘김신조’가 오라에 꽁꽁 묶인 채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거침없이 뱉어내는 육성에 소름이 돋았다. 대통령 암살조가 청와대 바로 뒤까지 왔다니 방비가 허술한 건지, 북한 게릴라가 날랜 건지, 아무튼 생각만 해도 섬뜩했다.

북한 특공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은 어린 중학생의 일상에도 영향을 끼쳤다. 제 집 앞마당같이 뻔질나게 드나들던 인왕산이 김신조 일당의 도주 루트로 밝혀지면서 일반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이었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삼각산 북악이 주산으로 낙점되고 자연스레 인왕산은 우백호가 됐다. 인왕산은 그다지 높진 않지만 시원스러운 자태의 돌산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조선 시대 말까지 호랑이가 포효하던 명산이다.

인왕산 언저리에서 태어나 코흘리개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수시로 인왕산에 올랐다. 정선의 산수화 ‘수성동’에 등장하는 ‘기린교’에 앉아 사진도 찍었고, 나무 그늘 밑 널찍한 바위에 앉으면 피서지로 그만한 곳이 없었다. 가친께서 허리춤에 찼던 노란색 알루미늄 컵에 받아 주시는 약수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 가슴 속까지 서늘했다.

초등학생 때는 두 살 터울의 작은 형과 작당해 하루가 멀다 하고 인왕산 구석구석을 빨빨거리며 들쑤시고 다녔다. 다른 마땅한 놀거리가 없었고, 자연과 만나는 장소로 최고였기 때문이다. 소나무, 아카시아, 도토리나무가 많았고 운이 좋은 날은 산골짝 다람쥐도, 맑은 개울물에서 가재도 만났다. 매미, 잠자리, 풍뎅이, 하늘소, 반딧불이, 메뚜기, 방아깨비, 호랑나비 등 없는 것이 없었는데 날쌘 매미 잡기가 곤충채집의 진수였다.

 

작은형이 살금살금 나무에 올랐다. 동생은 숨을 죽인 채 손에 땀을 쥐고 있는데 사정권에 들어왔다 싶으면 매미채를 건네 달라는 눈짓을 보냈다. 긴장의 시간이 흐른 뒤 그물망 속으로 속절없이 내동댕이쳐진 매미는 빠른 날갯짓으로 퍼덕거리며 자지러지게 울어댔다.

만년 조수 노릇만 하는 동생이 안됐던지 형이 직접 잡아볼 기회를 줬으나 허탕을 거듭했다. 매미란 놈이 비웃기라도 하듯 오줌을 찍 갈기며 퍼드덕하고 창공을 가를 때는 참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연속된 헛발질 끝에 이뤄낸 ‘득템’의 희열이란….

잡은 매미 다리에 실로 매듭을 지어 정원의 나무에 앉히고 어깨를 으쓱하며 “엄마, 시원한 매미 소리를 들어 보세요” 하고 뻐기듯 말했다. 포로가 된 녀석이 간간이 울었지만 씩씩한 노래가 아니고 창살 없는 감옥 속 신세를 한탄하듯 소리가 사뭇 처량했다. 마당에서 빨래 널던 어머니께서 가여운 생각이 드셨는지 넌지시 말씀을 건네셨다. “얘야, 그만 놔 주지 그러렴.” 머쓱해져서 풀어 주었는데 해방된지도 모르고 한동안 잠자코 있던 녀석이 힘찬 기세로 하늘을 박차고 올랐다.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았던 청와대 습격 사건 후 산 입구엔 붉은 글씨로 쓴 ‘입산 금지’ 팻말이 세워졌다. 칼 꽂은 총을 든 경비병의 위세에 눌려 입산은커녕 근처에도 얼씬하지 못했다.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워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했다. 하지만 무슨 도리가 있으랴. 백수의 왕이 둥지를 틀었던 인왕산의 위용을 먼발치에서 올려다보는 눈요기로 허전한 마음 달랠 수밖에….

역신(逆臣)의 친딸이라는 이유로 반정 후 며칠 만에 궁에서 쫓겨난 조선 시대 중종비 단경왕후 신씨(愼氏)의 애절한 사연이 전해지는 정중앙의 치마바위는 언제 봐도 속이 후련했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으로 다시금 세인의 관심이 집중된 국보 ‘인왕제색도’에서도 빠른 붓질의 중량감 넘치는 묵직한 치마바위가 가운데 버티고 앉아 그림 전체를 압도하고 있지 않은가.

부분적 산책로 허용의 단계를 거쳐 2018년 인왕산이 모든 사람에게 완전히 개방됐다고 들었다. 실로 50 년 만의 경사로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 한번 가 봐야지, 가 봐야지 하면서도 그동안 바쁘기도 했고 무엇보다 천성의 게으름이 발목을 잡아 아직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인왕산 입구 서촌이 요즈음 ‘핫’ 한 동네라는 풍문도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추위가 가시고 봄기운이 돌면 ‘범의 해’에 꼭 좋은 날을 잡아 아내의 손을 잡고 옛 정취에 흠뻑 빠져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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