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발굴
皇城新聞 옛터를 찾아서
현 세종로네거리▶조선호텔 인근▶국세청 본청▶영풍문고 입구 로 네 차례 이사
- 글: 오인환 전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
입력2003-11-27 17: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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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2> 황성신문 사고(社告) 중 발행소의 주소를 알리는 부분들. 황성신문은 창간에서 폐간에 이르기까지 12년 동안 모두 네 곳에서 발행했다.
황성신문 발행소의 주소는 1907년 4월3일자 신문 제호 아래 사고에는 ‘中署 鐘路 제20통 2호’로 돼 있고 1910년 8월27일 황성신문이란 제호로 나간 마지막 신문에는 ‘中部 鐘路 제20통 2호’로 돼 있으나 이는 주소의 표기만 바뀐 것으로 사옥 위치가 옮겨진 것은 아니었다.
창간 당시 사옥 터는 ‘기념비전’ 자리
황성신문은 1898년 9월5일 제1호를 발행하면서 ‘본사고백(本社告白)’이란 사고를 통해 신문사 위치를 ‘中署 澄淸坊 黃土峴 제23통 7호 前 右巡廳’이라 밝혔다. 황성신문이 만일 ‘황토현 제23통 7호’라고만 했다면 그 위치를 찾기가 매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전 우순청 자리’임을 추가로 알려줬기 때문에 황성신문의 창간 당시 사옥 위치는 분명히 확인된다. 왜냐하면 김정호의 ‘도성전도’에서 보듯 옛 우리 지도에 ‘우순청’의 위치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옛 우순청 자리는 현재의 세종로 네거리 교보문고빌딩 바로 옆, 경복궁 쪽 대로와 종로 쪽 대로가 만나는 모퉁이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전(紀念碑殿)’ 자리가 된다.
우순청과 기념비전 자리, 그리고 황성신문의 첫 사옥에 관해서는 장규식 교수가 ‘개항기 서울의 개화·개혁운동 공간’이란 연구(서울시립대 국사학과,’典農史論’, 5집, 1999)에서 좀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장교수에 의하면 황성신문의 전신인 대한황성신문 때인 1898년 6월경에 이미 우순청 자리로 옮겼으며 이 자리에서 대한황성신문의 판권을 넘겨받아 9월6일 황성신문 제1호를 발간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부분에 관한 장교수의 글을 직접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얼마 뒤인 4월6일(1898) 京城新聞은 대한황성신문으로 제호를 바꾸고 주식회사제를 채택하여 운영하였다. 이때 판권도 이상재 남궁억 등에게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6월 무렵에는 사옥을 전 우순청(巡撫使의 임시군영, 지금의 광화문 네거리 기념비전 자리)으로 옮겼다. 그리고 9월6일 장지연을 주필로 하여 (사장 남궁억) 국한문 홍용의 ‘皇城新聞’으로 면모를 일신하였다. 1902년 9월 우순청 자리에 고종 즉위 사십년 칭경 기념비전이 세워지게 됨에 따라 황성신문은 9월11일 부득이 정간을 하고, 남서 회현방 대공동 前 紅箭門 內 北邊 2谷內 27통 10호(지금의 소공동 근처)에 자리를 잡고 10월21일부터 속간을 하였다.”
구한말 우리 신문들은 사고에서 자기 신문사의 위치를 글로 풀어서 알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이 옛 신문사의 위치를 확인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만일 신문사의 위치를 ‘어느 동 몇통 몇 호’라고 옛날 우리식 주소로만 표시했었다면 현재 그 위치를 확인하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의 과문 탓이라 생각되지만 조선·구한말 주소를 매긴 기준이나 원칙이 아직 연구 발표된 바가 없고 한일합방을 전후해서 일제가 자기식대로 주소를 매기면서 당시 우리나라 주소 시스템을 무시했기기 때문이다. 옛 우리 지도에 동(洞)간의 경계선이 그어져 있지 않은 것도 당시의 건물이나 지점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내는 데 어려움을 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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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오인환 전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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