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침(金針)
김정수 시인
입력 : 2022.03.21 03:00 수정 : 2022.03.21 03:03
![](https://blog.kakaocdn.net/dn/S3zNy/btrwrfTNlZO/YidIQAKkaY32yvlAlr5T80/img.jpg)
본디 구름은 침술에 밝아
빗소리만으로도 꽃을 일으키는데
오늘은 흐린 침통에서
햇빛 한 가닥 꺼내들더니
꽃무릇에 금침을 놓는다
무형무통(無形無痛)한 구름의 침술은
대대로 내려오는 향긋한 비방
백회로 들어가 괸 그늘 풀어주는
산 채로 죽은 곳에 이르는 일침
꽃봉오리 하나 달이는데
먼 별과 행성이 눈 맞추고 있다
그 아득한 손길을 지나
바위 한 채 열고 나오는 산꽃 하나
박지웅(1969~ )
피할 곳 없는 벌판에서 느닷없이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아본 적 있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감싼 손이 따가웠다. 한바탕 쏟아낸 하늘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개었다. 먹장구름이 물러가자 다시 햇빛이 내리쬐었다. 여름 한낮의 햇볕도 따가웠다. 그래도 금방 옷이 말랐고, 소낙비와 햇볕의 침을 맞은 듯 몸이 개운했다. 시인도 그런 경험이 있나 보다. 본디 침술은 경혈에 침을 놓아 병을 다스리지만, 이 시에서는 “산 채로 죽은 곳에 이르”러 꽃을 피우는 데 사용된다.
봄비는 잠든 대지를 깨운다. “빗소리만으로도 꽃”을 피운다. 오늘은 빗소리 대신 “햇빛 한 가닥” 꺼내 금침을 놓는다. 솜씨 좋은 “구름의 침술”사는 형체조차 없는 금침으로 백회를 찌른다. 통증도 없이 정수리의 숨구멍 자리에 고인 ‘그늘’을 풀어준다. 단순히 침만 놓는 게 아니라 “향긋한 비방”을 꽃에 풀어놓는다. 바로 꽃이 피면 좋으련만 뜸을 들인다. 산통이다. 마침내 “아득한 손길을 지나” 꽃의 문이 열린다. 꽃 한 송이 피우는데 온 우주가 열리는 듯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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