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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皇城新聞 옛터를 찾아서9-9

by 까망잉크 2022. 4. 1.
 

역사 발굴

皇城新聞 옛터를 찾아서

현 세종로네거리▶조선호텔 인근▶국세청 본청▶영풍문고 입구 로 네 차례 이사

  • 글: 오인환 전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
입력2003-11-27 17:40:00

 

황성신문의 사옥 터 찾기를 일단 끝내면서 필자에게 남는 아쉬움 가운데 하나는 황성신문사의 사진이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필자는 얼마전 ‘구한말의 독립신문사 사옥의 위치를 찾는 연구’(‘신문과 방송’ 2002년 10월)에서 “독립신문사 앞에서 서재필 주시경 취재기자 식자직원 배달원 등이 함께 기념촬영을 한 사진이 나오면 얼마나 감동적일까”했었는데 황성신문의 경우도 “남궁억 장지연 취재기자 공무직원 배달원 등이 황성신문사 앞에서 신문사 간판이 보이게 함께 기념촬영한 사진 한 장만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이 역시 크나큰 흥분을 자아낼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사진촬영이 시작된 것은 서양인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서양인 여행자들이 들르면서, 청일전쟁과 노일전쟁 때 외국인 기자들이 들어와 취재를 하면서 비롯됐으니 19세기 말엽부터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울에는 사진관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때문에 구한말 황성신문사의 사진을 누군가가 찍었을 것이다. 한 장의 사진이 때로는 열 마디 백 마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사실감 있게 전해주고 증언한다. 이런 뜻에서 황성신문을 비롯한 구한말 우리 신문과 관련된 사진들, 언론활동과 관련된 사진들이 발굴된다면 언론사 연구에 많은 도움과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기록의 가치와 중요성을 늘 이야기하면서도 기록의 보존과 발굴에는 소홀했었고 지금도 여전히 소홀히 다루고 있다. 불과 90여 년 전, 길게는 100여 년 전에 있었던 한 신문사의 위치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아 이런저런 방증자료들을 동원해 그 위치를 찾아내려 한다는 것 자체가 기록에 대한 우리의 무감각 내지는 경시 풍조를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닌가.

어쩌면 별것 아니기에 다뤄지지 않았을지도 모를 작업을 하면서 너무나 큰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끄러운 마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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