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발굴
皇城新聞 옛터를 찾아서 9-8
현 세종로네거리▶조선호텔 인근▶국세청 본청▶영풍문고 입구 로 네 차례 이사
- 글: 오인환 전 연세대 교수·신문방송학
입력2003-11-27 17:40:00
![](https://blog.kakaocdn.net/dn/elIDXF/btrxgGJq8yx/zOHvCLEDlLSvesR7iDebZK/img.jpg)
이곳 서린동 지역은 남쪽으로는 청계천로가 넓게 확장돼 곧게 뻗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북쪽으로는 종로 1가 대로가 서린동 쪽, 즉 남쪽으로 확장돼 있다. 종로 1가를 포함해 종로 거리는 북쪽에 ‘피마골’이라는 샛길이 있는데 종로 대로를 확장하기 전까지는 남쪽에도 북쪽의 피마골과 같은 샛길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서린동 동쪽 남대문로 1가의 경우는 도로를 확장할 때 동쪽이 많이 철거됐고 서쪽도 일부 철거됐다.
에서 보면 황성신문사의 사옥이 있었던 전 면주전 도가 터를 가리키는 원이 현재의 영풍빌딩 종로 네거리 쪽 입구 북쪽 모서리에 걸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바로 여기가 황성신문사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사옥 터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는 앞에서 옛 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포개서 찾아낸 황성신문사 터를 현재의 지도에다 표시해본 것이고, 는 이상의 논의에서 찾아진 옛 황성신문사 사옥 터 네 곳을 하나로 모아 제시해본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논의를 요약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쪹황성신문사의 첫 사옥은 옛 中署 澄淸坊 黃土峴 제23통 7호 前 右巡廳(우순청) 자리에 있었는데 현재의 자리는 세종로 네거리 기념비전이 서 있는 자리다.
쪹두 번째 사옥은 옛 南署 會賢坊 大公洞 前 紅箭門 內 北邊 第2谷 內 제27통 제10호에 있었는데 현재의 자리는 중구 소공동 소공주길 북쪽 조선호텔과 우리은행 사이에 있는 외환은행 지점 건물 자리다.
쪹세 번째 사옥은 옛 中署 壽進坊 壽洞 前 管理監 (前前 濟用監) 자리에 있었는데 현재의 자리는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 자리다.
쪹구한말 황성신문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사옥은 옛 中署 鐘路 白木廛 後谷 前 綿紬廛 都家 제20통 2호에 있었는데 현재의 자리는 종로구 서린동 영풍문고 빌딩의 종로 네거리 쪽 입구 북쪽 모서리 일대다.
사옥 위치 추적을 끝내며
구한말 민족지 황성신문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과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투쟁, 그 과정에서 경험한 좌절과 통분이 100여 년이 지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깊이 새기면서 당시 황성신문이 발행되던 현장인 사옥 터를 찾아보았다.
선행연구들을 길잡이 삼아 옛 지도에서 황성신문 사옥의 위치를 추정해보고 그 지점이 현재의 지도에서 어디인지를 필자 나름대로는 될수록 정확히 확인해보고자 했다. 필자의 이 추리가 어느 정도 인정된다면 지도(地圖)와 제도(製圖)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작업을 할 경우 황성신문 사옥들의 보다 정확한 위치(어디쯤이나 어디 부근이 아닌)가 찾아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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