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2> 고사완매도(高士玩梅圖)
매화를 처로, 학을 아들로 삼은 임포(송나라 시인), 그 은둔의 삶을 화폭에 담은 장승업
- 송영진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 | 입력 : 2022-02-20 19:46:34
- 겨우내 매서웠던 추위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출 즈음이면, 봄을 알리는 매화가 피기 시작한다. 선조들이 유난히 사랑했던 매화는 조선시대 절개와 지조의 상징이었다. 매화는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는 다섯 장의 매화 꽃잎이 오복(五福)을 나타낸다고 여겨 문방구나 가구 등에 전통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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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물관은 매화를 소재로 한 유물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간략한 필선으로 매화의 정취를 그린 윤득신(1669~1752)의 ‘묵매도’, 만개한 홍매와 백매를 어우러지게 표현한 조희룡(1789~1866)의 ‘홍백매도’, 동래지역에서 활동했던 변박(18세기)이 1764년 통신사 사행 중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묵매도’를 비롯한 매화문 도자기, 매화가 새겨진 문방구 등이다.
이번에 소개할 유물은 매화에 얽힌 옛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승업의 ‘고사완매도(高士玩梅圖)’다.
오원 장승업(1843~1897)은 조선 말기 대표적인 화가로 산수 인물 그릇과 화초 등 여러 소재들을 힘찬 필력과 묵법으로 대담하고 자유롭게 다룬 화가였다. ‘고사완매도’는 북송의 시인 임포(967~1028)의 ‘매처학자(梅妻鶴子)’와 관련된 고사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매화를 사랑했던 임포가 산 중에 초가를 짓고 매화를 아내로, 학을 아들로 삼아 은거했다는 일화를 담고 있다. 실제로 임포는 세속의 영리를 멀리하고 깊은 산속에서 홀로 살았던 인물이다. 그림 속 하늘을 날고 있는 학, 늙은 매화나무를 감싼 상서로운 구름은 속세와 분리된 임포의 은거지임을 나타낸다. 고목 아래 갓 피어난 매화분을 옮기는 시종과 이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노년의 임포가 배치되어 있다. 중국적 주제, 여백이 많은 공간, 위아래로 이어지는 구성, 대상의 농담을 표현한 필묵법 등은 이 그림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잘 알려진 유적지나 사찰에는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지내 온 매화나무가 있다.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손수 아끼고 가꾸었다는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구례 화엄사 길상암 앞에 자리한 들매화, 순천 선암사 무우전과 팔상전 주변에 핀 매화나무 등이다. 이에 못지않게 부산박물관에도 40년 세월을 함께 한 매화나무가 야외정원에 있다. 이 나무는 곧 혹한을 이겨내고 매화꽃을 피워낼 것이다. 꿋꿋한 지조가 그리운 이 시절에 그윽한 매화향을 따라 부산박물관으로 발걸음을 해보는 건 어떠실지.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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