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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다 (11)
유자광은 감옥 안에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11장
유자광은 절망 속에서도 마음을 가다듬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대왕대비께서는 세조대왕의 왕후이시니, 대왕이 나를 얼마나 아꼈는지 잘 아실 수도 있다!’
마침 지나가는 내금위 군졸 한 명이 유자광이 내병조에서 근무할 때 눈에 익은 자였다. 유자광은 군졸에게 붓과 먹물을 옥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내금위 군졸은 부탁받은 붓과 먹물을 몰래 넣어주며 말했다.
"이것들은 절대 저한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유자광은 눈빛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유자광은 옷을 찢어 종이로 삼고 붓을 들어 쓰기 시작하였다.
"신은 말은 한 적도 없고, 또 할 말도 없습니다. 신은 재능이 없는데도 세조대왕의 망극한 은혜를 입어 미천한 가운데서 발탁되어 수년 안에 지위가 재상에 이르렀습니다. 남이가 변을 꾸미는 말을 듣던 날에 곧장 말을 달려 아뢰어 으뜸가는 공을 얻어서 지위가 1품에 이르렀습니다.”
유자광은 옷자락에 상소를 쓰면서 자신의 처지가 기가 막혀 눈물이 솟구쳤다. 사직을 구한 일등공신으로 세상에서 거칠 것이 없었는데, 별안간 죄인이 된 몸으로 목에 칼을 찬 채 감옥에 갇혀있는 현실이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겨우 쓰고 있는 이 상소가 제대로 대왕대비에게 전해질 수나 있을지 몰라 가슴이 답답하였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죽을 때 죽더라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자.’
유자광은 목에 칼을 차고 있어 불편한 몸으로, 감옥에 비추는 달빛을 의지하여 정성을 다해 한 자 한 자 힘들게 써 내려갔다.
"신이 박성간에게 벌을 주었더니 그가 앙심을 품고 신을 모함하려고 신의 입에서 나오지도 않은 말로 무고하였습니다. 만일 신이 과연 말하였다고 한다면 좌우의 많은 사람 가운데에서 하필 똑똑지 못하고 용렬한 아우와 말하였겠습니까? 천지신명이 위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신은 한 말도 없지만, 또 할 말도 없습니다. 만일 신이 한 말이 있고 이를 숨긴다 하여 신을 베어 죽음의 땅에 두신다면, 신이 나라의 은혜를 입은 것이 이미 족하니 이 몸은 아까울 것이 없습니다만, 이 원통함을 지하에서 어떻게 풀겠습니까?”
유자광은 또다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통곡을 했다. 옥을 지키는 군졸이 졸다가 대성통곡하는 소리에 잠을 깨어 유자광을 살피려 왔다.
유자광은 머쓱하여 울음을 멈추고, 군졸이 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붓을 들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신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시어 신으로 하여금 원통함을 안고 죽지 않게 하소서. 신은 말을 한 적도 없지만, 무슨 말로 변명하여야 하겠습니까? 신이 갇힌 가운데에 있어 어찌할 바를 몰라 눈물을 흘리며 울기만 할 뿐입니다.”
유자광은 여백이 없어 더 쓰지 못하고 붓을 들고 멍하니 상소를 내려다보았다. 찢어진 옷 위에 쓰인 검은 글자들을 달빛이 쓸쓸하게 비추었다.
아침이 밝자 유자광은 다시 국문 장에 끌려왔다.
유자광은 추국관에게 임금에게 올리는 옥중 상소를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글을 주상께 전해주시면 소원이 없겠소.”
추국관은 유자광이 들고 있는 옷에 쓴 글을 보며 싸늘하게 거절했다.
"어찌 역모의 혐의를 쓴 죄인의 글을 주상께 올린단 말인가.”
추국관은 곁에 있는 내금위 군졸을 불러 명했다.
"저 옷을 태워버려라!”
유자광은 절망하여 눈을 감았다.
마침 국문 현장을 살피러 온 우부승지가 그 광경을 보고 제지시켰다.
"기다려 주시오!”
우부승지는 옷에 쓴 상소를 받아, 관복 소매에 넣으며 말했다.
"대왕대비께서 관심이 있을 것이요.”
대왕대비는 승지 이숭원이 올린 유자광이 옷에 적은 글을 읽어 보았다. 눈물로 얼룩진 절절한 상소였다. 대왕대비는 생전에 세조가 유자광을 아껴 한고조가 한신을 대하듯 기꺼워하였던 생각이 나서 가슴이 아팠다.
대왕대비는 원상들에게 유자광의 상소를 보여주었다.
"유자광의 일은 그의 반인(伴人)이 고변하고 아우가 꿈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였으므로 부득이하게 형벌하여 심문한 것인데, 고변자의 말이 일관되지 않고 그 아우가 어리석은 자라고 하니 말하는 것을 족히 믿을 수 없소. 유자광은 공이 큰 대신이니, 석방하는 것이 어떻겠소?”
신숙주가 아뢰었다.
"고변이 있는 중요사건이니 갑자기 석방할 수는 없습니다. 승지를 보내어 유자광의 집에 가서 살펴보아서 판단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대왕대비는 우부승지에게 명하여 유자광의 집에 가서 살피게 하였다. 승지가 유자광의 집으로 떠나자 대왕대비는 원상들을 보고 말했다.
"유자광의 상소를 보아하니 박성간의 말이 거짓 고변으로 여겨지니, 유자광의 항쇄(項鎖, 목에 채운 칼)는 풀어 주는 것이 어떻겠소?”
신숙주와 원상들이 아뢰었다.
"오늘 안에 사실이 무엇인지 분간이 될 것이니, 지금 항쇄를 풀어 줄 것은 없습니다.”
대왕대비는 원상들의 말에 한 숨을 쉬고는 도승지에게 명했다
"아무래도 박성간이 말한 것이 앞뒤가 맞지 않으니, 힐문하여 끝까지 추궁해 보아라.”
도승지가 박성간을 엄히 심문하니 대답이 두서가 없고, 물음에 따라 이미 말한 것을 바꾸어 말하였다. 도승지가 명하여 장(杖)을 때리게 하니, 박성간이 곤장을 못 견디고 사실대로 고했다.
"유자광이 가죽신 두 벌을 만들게 하였는데, 곧 명령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장(杖)을 60대나 때리므로, 원한을 품어 해하고자 말을 만들었습니다.”
정희대비는 도승지의 보고를 받고 박성간을 의금부에 가두고, 당장 유자광을 석방하여 편전으로 오게 했다.
대왕대비는 유자광이 헝클어진 몰골로 입시하는 것을 보니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박성간의 고변이 있었고, 네 아우의 말도 박성간의 말과 비슷했기 때문에 부득이하여 장(杖)을 때려 경을 심문하였으니, 다 나의 잘못이오. 주상은 심문하지 말라고 했는데, 내가 하는 일을 주상이 어찌 감히 저지할 수가 있었겠소?”
정희대비는 어린 왕에게 허물이 갈까 봐, 임금의 판단은 옳았는데 자신의 잘못이라며 주상을 감쌌다. 유자광은 대왕대비의 따뜻한 말에 감격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신이 거의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는데, 이렇게 풀려나니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대왕대비는 유자광에 술상을 내리고 위로하였다.
유자광이 정희대비와 임금에게 큰 절을 올리고 물러나자 대왕대비는 한숨을 쉬며 승정원에 명했다.
“조정을 능멸한 박성간을 엄하게 다스려라.”
박성간은 유자광을 무고한 죄로 참형의 위기에 처하자,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
"비밀히 아뢸 일이 있습니다!”
의금부에서 박성간의 말을 보고하자 대왕대비가 명했다.
"박성간의 말은 반드시 허황된 말일 것이오.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으니, 불러서 원상들이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신숙주가 나서서 아뢰었다.
"박성간이 법에 마땅히 죽게 되어 있는데, 죽을 죄수가 궐내에 출입하는 것이 마땅치 않을 듯합니다. 갇힌 채로 의금부에게 묻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대왕대비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박성간이 죽을 것을 생각하고, 그 죄를 면하기를 꾀하여 다른 무고를 꾀할 것이오. 만일 할 말이 있었다면 처음 물을 때에 다 말하였을 것이오. 그러니 박성간의 농간에 또다시 빠지지 말고, 묻지 않는 것이 어떻겠소?”
원상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렸다.
"지당하신 분부이시옵니다.”
박성간은 두 번 다시 말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유자광을 무고한 죄로 참형을 당하였다.
임금은 각도의 관찰사에게 문서를 내렸다.
"근래에 무고하는 것이 풍속이 되어, 원한을 갚고자, 혹은 상(賞)을 노리고 거짓으로 고변하는 것이 수십 인에 이르렀다. 지난해에 김유지란 자가 밭을 두고 벌어진 송사에서 지게 되자, 수령과 감사를 원망하여 모반한다고 무고하였고, 유자광의 반인(伴人) 박성간이란 자가 유자광에게 벌을 받고 모반한다고 무고하였으므로, 대신에게 명하여 국문해서 진실을 알아내어 극형에 처하려 한다.
남을 해하고 이익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큰 처벌을 받으니, 그 어리석음이 불쌍하지 않은가? 더구나 무고를 입은 사람이 잘못되어 갇히니 또한 불쌍한 일이다. 각도의 관찰사는 민간에 두루 알아듣게 타일러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
감성에세이와 역사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연예인 '만담왕' 신불출 스토리를 발굴하였고, 조선시대 선비들의 이야기인 '선비의 나라'를 집필중입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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