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그림

초혼(招魂)/김 소월

by 까망잉크 2022. 9. 21.

초혼(招魂)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

진달래꽃 / 초혼

1925년 매문사에서 발간한 ≪진달래꽃≫에 수록된 김소월이 지은 시.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학중앙연구원

개설

1925년 매문사(賣文社)에서 발간한 『진달래꽃』에 수록되어 있다. 창작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그의 시 세계가 어느 정도 확립된 1925년경으로 추정된다.

내용

1연 4행씩 전(全) 5연의 형식을 지닌 시로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격앙된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그리하여 자칫 잘못하면 단순히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을 슬퍼한 넋두리로 보아버릴 수도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결코 그렇게 부정적인 평가로 일관될 작품은 아니다. 우선, ‘초혼’이라는 제목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상례의식의 한 절차인 고복의식(皐復儀式)에서 왔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고복의식은 임종 직후 북쪽을 향하여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번 부르는 행위로서, 죽은 사람을 재생시키려는 의지를 표현하는 부름의 의식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죽음을 확인하는 절차인 것이다.

이러한 의식이 「초혼」의 전체적 구조에 수용되어 있다. 이 시에서는 죽은 사람의 이름을 첫째 연과 둘째 연,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세 차례 부르고 있다.

이것은 사랑하던 사람을 상실한 아픔이 점차로 고조되어감에 따라 님의 상실이 처음에는 개인적 차원의 것이었다가 차츰 전체나 집단의 차원으로 확대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 작품에서 소월의 율격의식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1연·3연·4연의 2행과 5연의 2행에서 보이는 동량(同量) 4음(音) 3보격(步格), 2연의 1·2행과 4연의 3·4행, 5연의 1행에서 나타나는 이른바 7·5조로 불리는 층량(層量) 3보격, 2연의 3·4행과 5연의 1행에서 나타나는 층량 2보격 등 세 유형으로서, 각각의 율격은 각 연의 어조와 정서표출에 이바지하고 있다.

'시와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영미의 어떤 시] [88] 푸르른 날  (0) 2022.09.26
친구가 그립다(친구이야기)  (0) 2022.09.22
아버지  (1) 2022.09.20
[정은귀의 詩와 視線]  (0) 2022.09.17
가을 소리[이준식의 한시 한 수]  (0) 2022.09.1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