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나란히 물들고 싶은 사람
입력2022.10.28. 오전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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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에 나갔다가 서리가 내리기 전에 저 농작물들을 얼른 걷어야 할 텐데 하면서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콩밭의 콩잎들도, 그 주변으로 길게 장대처럼 서 있는 수수도 색이 곱게 물들어 있길래 괜히 눈길을 주다가 돌아왔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지리산에도 단풍이 물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년을 단위로 치면 황혼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이 무렵을 나는 가장 시(詩)적인 한때라 생각합니다. 당연히 지리산에 혼자 살면서 시를 쓰는 박남준 시인이 생각났습니다.
박남준 시인의 이 고운 시를 읽다보면, 이 시가 마저 이 계절을 푹푹 물들인다 싶습니다. ‘은빛 강물’이라는 말은 부부의 오랜 세월을 더 단단하게 끌어 매주는 것 같네요. 그다음에 나오는 ‘억새꽃들’이 핀 장면은 이 땅의 풍경이 아니라 차라리 하늘 풍경 같기만 하고요.
얼마 전 나 혼자 분식점에서 식사를 하다가 마주친 풍경이에요. 할머니 한분이 만두를 절반 남겨놓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곧이어 볼일을 보고 들어선 할아버지에게 남은 만두를 권합니다. “다 먹으래두….” 할아버지가 손을 내저으며 안 먹겠다고 말하자 할머니는 봉지를 얻어 남은 만두를 싸 갖고 가십니다.
할아버지를 뒤따르는 할머니의 손에 들린 검은 봉지가 너무 가벼워서 팔랑거리기도 했습니다. 이 시에 나오는 ‘바람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듯 봉지가 아주 곱게 살랑거리기도 하였습니다.
나란히 물들고 싶은 사람 하나, 떠오르는 계절이 왔습니다. 한 사람 생각만으로 푹푹 물들어도 좋을 그런 계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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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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