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e 23.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19
조선최고의 다혈질정자왕, 숙종(제19대 왕 1661~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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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에서 왕위에 오른 장남은 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숙종, 경종, 현종, 헌종, 순종 등 아홉명 뿐이었는데요. 모두 불운한 수난을 겪었지만, 오직 숙종만이 예외로 47년간의 장기집권을 하며 강력한 왕권의 원동력을 다졌습니다.
그는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당파정쟁을 세력강화와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환국감행으로 왕권을 강하는 등 노련함을 지닌 절대군주엿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신하들도 가차없이 죽이고, 왕비와 아들에게도 함부로했을 정도로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는 잔혹한 왕이었습니다.
왕권은 매우 강력하여 세 차례의 환국이 있었는데, 경신환국(1680,숙종6)에는 남인이 실각되며 서인을 등용하고, 기사환국(1689,숙종15)에는 희빈 장씨의 등장으로 남인이 집권하게 됩니다. 갑술환국(1694,숙종20)때에는 희빈 장씨가 폐비되면서 노론과 소론의 갈등은 있었지만, 서인이 주도하면서 종결됩니다. 집권당파가 바뀔때마다 보복성 숙청으로 몰아치는 피바람은 마치 붕당(朋黨 뜻을 같이한 정치무리)이 처음 일어난 선조대왕시절에 피비린내나는 권력혈투를 벌이는 것과 흡사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숙종실록>을 보면 고양이나 토끼 등 동물들을 사랑하였고, 죽은 참새새끼의 장례를 치러줬던 인간적이고 따스한 이야기도 전하고는 있습니다.
어릴적부터 잔병치례가 많아 온갖 몸에 좋다는 약재들을 찾아먹었다고 합니다. 덕분에 호환마마도 이겨내었다고 합니다.
몸은 허약하였지만, 반면 성질은 불같아서, 조선왕비들 중 한 ‘성질’하였다는 어머니 명성왕후조차도 “세자는 내 배로 낳았지만, 그 성질이 아침에 다르고 점심에 다르고 저녁에 다르니, 나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전합니다.
아버지 현종이 일찍 세상을 떠난 영향도 있지만, 매우 독선적인 명성왕후의 양육이 숙종을 성군으로 바로 세우는데 부족하지 않았나도 해석되고 있습니다.
그는 “내가 세자 적부터 이미 화증(火症)이 있었는데, 거기다 성미(性味)가 느긋하지 못하여 일이 앞에 있으면 버려두지를 못하니라. 근래에는 현기증이 발작하면 수레나 배 위에 있는 것 같다.”라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은 숙종14년(1688) 7월16일 “이 때에 왕의 노여움이 폭발하고 점차로 번뇌가 심해져, 입에는 꾸짖는 말(욕설)이 끊이지 않았고, 밤이면 또 잠들지 못하다. 마음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곤란할 정도로 번뇌가 심하다.”고, 전형적인 화병증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숙종은 평생을 두고 산증(疝症 아랫배에 병이 생겨서 배가 아프고 대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을 호소하였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에는 이 병의 원인을 “대체로 성을 몸시 내면 간에서 화(火)가 생긴다. 화가 몰린지 오래되면, 내부가 습기로 차가와지며 통증이 생긴다.”며 화병을 풀이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간질성방광염(Interstitial cystitis)’으로, 방광근육내부의 궤양과 섬유화로 인해 방광용적이 줄어들고, 하복부통증이 만성화되며, 혈뇨, 배뇨통, 골반통증과 함께 빈뇨, 요절박 같은 자극성 배뇨증상을 동반합니다.
영조대왕 또한 산증(疝症)으로 힘들었다는 기록을 보면, 스트레스성 질환이거나 유전적인 방광이상으로 인해 통증이 만성화되어 인격자체가 신경질적으로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조선왕업무의 살인적인 스케줄과 꼼꼼하고 급하며 과감한 성정(性情) 또한 그를 조선 최고의 다혈질로 만들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다양한 전염병이 시기별로 유행하였는데, 15세기의 악병(惡病), 16세기의 돌림병, 온역(瘟疫), 조선 후기의 두창(痘瘡, 두진(痘疹), 천연두(天然痘)), 19세기의 콜레라가 대표적입니다.
왕실에서도 천연두의 저주를 피해갈 수 없었는데요, 허준 또한 두창(痘瘡 천연두)에 걸린 광해군을 치료하면서 선조의 총애를 받게되었습니다.
<숙종실록>에는, 전염병으로 처소까지 격리시켰지만 아내 인경왕후와 어머니 명성왕비를 잃은 기록이 전합니다. 괴테, 모차르트, 조지 워싱턴, 그리고 숙종과 아들 경종, 영종까지도 천연두와 악연을 겪었습니다.
“질병은 함께 찾아온다.”는 말처럼, 그는 두창(痘瘡, 천연두)을 앓고나서부터 기침병(해수(咳嗽), 위장병, 어지럼증, 통풍, 관절통, 노화성백내장까지 앓으며 회복이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과로한 업무로 불규칙한 식사와 잠자리에 불같은 성격은 점점 예민해졌고, 기력을 점점 떨어져갔습니다. 내의원의 탕약이나 음식들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하자, 복부와 무릎에 뜸을 뜨기 시작하였습니다(중완혈 수구사(中脘穴受灸事). 중완혈(中脘穴 태창혈(太倉穴))은 ‘위(胃. 脘)의 중간 정도에 자리잡는다.’고 기록되었는데, 우리 몸 앞면 정 중앙을 지나는 선 상에 있는데 배꼽에서 4촌위의 지점에 위치합니다.
왕에게 뜸의 열기로 생살을 지지는 고통을 견디기 쉽지않았지만, 일주일에 100장씩 지속적으로 뜨면서 증상은 점차 개선되며 완전히 회복되게 되었습니다.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지만, 평소 블랙푸드를 즐겨먹고 온천수와 중완혈수구사(100장/주)가 숙종에게 강력한 왕권과 47년 장기집권, 그리고 60세가 넘도록 로맨스의 은공이었습니다.
또한, 부항치료로 고질적 견비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부항요법은 중국에서 동물 뿔을 이용해 피를 뽑는 ‘각법(角法)’으로 시작되었는데, 이집트 등 고대국가에서도 비슷한 기록이 있습니다. 선조시대 <침구경험방>을 쓴 허임이 부항요법을 발전시켰는데, <승정원일기>에는 “동국(東國) 조선의 독특한 치료법”으로 조선 후기의 보편적 치료법으로 자라잡았습니다.
재위 40년이 되면서, 심화(心火)증이 심하고, 복부팽만, 구역, 간경화(암), 간질환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한의사 <난경>에는 “간이 병들면 오줌이 방울방울 떨어지며 대변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기록되었는데, 숙종의 증상이 풀이 될 수 있습니다.
<숙종실록>에는 “상의 환후가 7개월 동안 계속되어, 증세가 백 가지로 변해 부기(浮氣)가 날로 더해졌다.”고 전합니다.
숙종은 56세부터 당시에 안질(眼疾)이라 불리는 시각장애까지 겪으며, 듣는 문서로 업무를 대신하였습니다. 온천수를 이용하기도 하였지만, 상황이 좋아지지않아, 결국은 조선의 앞날을 위해 왕세자에게 대리청정를 강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들 연령군이 사망하면서, 마음고생이 심해지며 병세는 급속도로 나빠져, 재위 46년 5월에 간경화말기 증세인 복수가 차오른지 한 달만에 6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되십니다.
46년의 숙종 재위기간은 경종 4년과 영조52년까지 더하여, 102년 장기간에 걸친 3부자의 치세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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