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race 22. 왕의 몸은 역사에게 솔직하다 18
만성 스트레스 증후군, 현종(제 18대왕 1641~1674)
심양에서 태어난 현종은 조선 왕들 중 유일하게 후궁을 들이지않는 애처가이자 공처가였다고 합니다.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남인과 서인의 당쟁이 끊이지않아 국력이 쇠퇴하고, 질병과 기근이 계속 되는 등 불안한 정세였습니다.
하지만, 온화한 성품으로 대립하는 붕당들사이를 견제하며 교통정리를 위해 중립을 지켰다고 하는데요, 서인중심으로 빠진 정국의 균형을 위해 탕평책을 제안한 선구적인 군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서인(송시열 군단)과 남인(윤선도 군단)들이 현종의 정통성을 논하는 ‘예송논쟁’은 지긋지긋한 소모전에 불과한 그들끼리의 권력싸움이었습니다. 나라를 살려보려 고군분투하는 왕의 진정성은 무시되어 역적으로 내몰려 독살설도 피해가지 못한 ‘밥그릇 챙기기’일 뿐이었습니다,
또한 당시는 전 세계적 ‘이상저온현상(소빙기)’으로 조선에도 최악의 기근인 ‘경신대기근’을 겪으면서,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대동법’을 실시하여 민생안정에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왕이었습니다.
현종은 어려서부터 병약하여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고 하는데요, <승정원일기>에는 한약을 다수 처방받았다 전합니다.
특히, 즉위 7년동안 63회나 처방받은 <가감양격산>은 화병으로 인한 가슴답답증을 치료하는 약으로 당쟁이 그에게 심한 병적무게였음을 알게해줍니다.
<실록>에는 평생동안 종기로 고생했다는 기록도 많이 나와있습니다.
“종기를 달고 살다시피 했으며, 종기에서 고름이 한 되 가량 나온 적도 있다.”
현종 10년이 되면서부터는 뒷목과 쇄골부의를 둘러싸고 종기가 연달아 생기면서 목숨까지 위협받았다고 합니다.
<동의보감>에서는 종기의 원인을 스트레스 화(火)와 당뇨(소갈증 消渴症)때문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현종 10년 기록에는 갑작스런 두통과 청각과민증인 ‘염청(厭聽)’증상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소리를 견디지못하고 발작까지 발생하여 심하게 고통스런 시간을 보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평소에 안질(왼쪽눈의 장애)도 심해서 친서(親書)나 제사참석도 쉽지않으셨는데요, 사소한 소리에도 예민해지니, 대신들과의 소통은 거의 힘든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랜시간 결핵균 학질에 감염되어있었으며, 과로사로도 고생하셔 치료를 계속 받았으나 차도를 보지 못하고 나빠졌습니다.
<현종실록> 1674년 1일 “상이 손가락이 붓고 아픈 증상 때문에 연일 뜸을 떴다.”
4월 “상이 번열을 느끼고 설사 등 제반 증세가 더욱 심하여, 장신징이 창성군 이필, 김석주, 정유악 등과 함께 입진하였다.”
5월 “상의 병세가 시름시름하여 내의 도제조 허적, 제조 남용익, 부제조 이원정이 여러 어의와 함께 입진하였다.”
8월에는 “상의 병세가 더욱 혼수상태에서 백회혈에다 뜸을 떴다.”고 전합니다.
소모전인 ‘예송논쟁과 자연재해상황에서도 왕의 자리를 의연하게 지켜냈지만, 스트레스로 잔병치례가 많아왔고, 학질(瘧疾)과 스트레스성 대장질환으로 현종15년 34세에 승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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