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와 그림

잊지 못할 ‘방향’이 있으신가

by 까망잉크 2023. 1. 29.

[시인의 詩 읽기] 잊지 못할 ‘방향’이 있으신가

입력2023.01.27. 오전 5:02

어릴 적엔 언제나 북쪽이었다.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다. 언젠가 아버지께 여쭸다. “잘 때 왜 머리를 북쪽으로 둬야 하나요?” 아버지의 답은 아주 짧았다. 조상님이 그쪽에 계시잖느냐.

내 부모는 황해도 옹진에서 사시다가 1·4 후퇴 때 내려왔다. 전남 강진에서 8년 피란살이를 하고 경기 김포로 올라와 터를 잡았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문제가 생겼다. 40대 후반까지 2∼3년에 한번씩 이삿짐을 꾸렸는데 새 셋집에 들어갈 때마다 머리 둘 방향부터 살폈다. 몇번 그러다가 포기했다. ‘북쪽’은 내가 정할 수 없었다. TV나 냉장고 자리처럼 머리 둘 방향은 매번 정해져 있었다.

이용악의 ‘그리움’을 읽을 때마다 아버지의 ‘북쪽’이 생각난다. 북쪽은 흔히 어둠, 겨울, 죽음을 의미하지만 내 부모에게 북쪽은 고향이었다. 그리움은 나침반처럼 언제 어디서나 북쪽을 가리켰다. 내 부모에게도 ‘남기고 온 너’가 많았다.

누구에게나 ‘북쪽’이 있다. 가령, ‘남기고 온’ 누군가가 있는 사람, 가족이나 연인 혹은 친구가 먼 곳에 있는 사람의 눈길이 향하는 하늘 먼 곳, 그곳이 이들의 ‘북쪽’이다. 미국으로 이민 간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청년이 정동진역에서 일출을 본다고 상상해보자. 그 청년에게 동쪽의 의미는 이용악 시의 북쪽 못지않을 것이다.

누구나 잊을 수 없는 방향이 있다. 그 방향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 내 삶의 정동진 혹은 정남진인 사람. 이참에 안팎을 살펴보자. 동서남북 어느 쪽에도 이름 부를 사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지, 눈 들어 바라볼 하늘 먼 곳이 없는 사람이 혹시 나는 아닌지.

이문재 (시인)

이문재 시인 기자

 

'시와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춘(立春)이면  (0) 2023.02.06
간곡한 술 유혹[이준식의 한시 한 수]  (0) 2023.02.02
허망에 관하여  (0) 2023.01.25
인생  (0) 2023.01.17
자유로운 영혼  (0) 2023.01.0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