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많은 제자 (1)개구쟁이 제자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전설따라 남도삼백리

꾀많은 제자 (1)개구쟁이 제자

김명식 기자

입력 2020. 08. 31 18: 29

■강형구 작가의 전설따라 남도삼백리

▶꾀 많은 제자

(1)개구쟁이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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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혼자 사시는데 제가 예쁜 과부하나 중신해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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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질 좋아하는 개구쟁이 어린 제자 녀석이 불쑥 난데없는 소리를 했다. 그 소리에 먹물을 붓에 잔뜩 묻혀 글씨를 쓰고 외우던 서당 안에 가득 들어 찬 어린 녀석들이 모두 까르르 웃어 재꼈다. 이훈장은 나이도 어린 녀석이 무슨 허튼 소리를 하느냐 싶어 버럭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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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끼 이놈! 고약한 놈! 어린 녀석이 글공부에 전념해야지 그게 무슨 소리냐! 너희들 집에 가고 싶으면 어서 가서 오늘 배운 글 다 외워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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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장은 어린 녀석을 사납게 꾸짖고는 서당 아이들을 죄다 보내버렸다. 당장 끌어내 회초리를 치기에는 아직 너무 어렸고 또 글줄깨나 읽은 체통 있는 선비 체면에 어린 녀석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기도 뭣하여 냅다 서당 아이들을 모조리 보내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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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 전 아내가 병으로 죽고 외롭고 쓸쓸한 것은 고사하더라도 서당 훈장 노릇하며 빨래며 밥이며 궂은 일하면서 혼자 사는 터라 늘 고달프고 허전하고 적적했다. 그런데 어린 제자 녀석이 그 아픈 속을 느닷없이 송곳 끝처럼 콕 찌르고 드니 너무도 아프고 황당한 이훈장이었다. 그 어린 녀석이 세상 물정 알아 아직 철이 들 나이도 아니기에 혹시 그 집안의 어른들이 이훈장의 딱한 처지를 걱정하는 소리를 귀 끝으로 듣고 막무가내로 뇌까린 것쯤이려니 생각하고 말았다.

그림/김예지(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그런데 또 며칠 뒤 그 녀석이 그 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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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제가 중신해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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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끼 이놈! 또 그 소리로구나! 이놈아! 그런 소리 하려거든 다시는 서당일랑 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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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잖아도 혼자 사는 신세가 처량한데 이 어린 제자 녀석이 느닷없이 또 속을 박박 긁어 대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이훈장은 따끔하게 야단을 치고는 서당을 파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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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이 어린 녀석은 또 며칠 뒤 글공부 시간에 ‘스승님! 제가 중신 서 드려도 좋겠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훈장은 어린 녀석이 자꾸 같은 말을 해오자 ‘혹여 무슨 특별한 까닭이 라도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다른 녀석들을 다 집으로 돌려보낸 후 그 녀석만을 서당에 혼자 남게 하고는 조용히 말을 붙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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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아! 도대체 스승님이 듣기 싫다고 하지 말란 소리를 왜 그렇게 자꾸 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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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녀석이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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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스승님, 우리 마을에 아주 예쁘고 마음씨 고운 과부가 하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혼자 사시는 스승님 중신을 서 드릴까 해서 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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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라!’ 어린 녀석 하는 말이 거짓은 아닌가 보다하고 이훈장은 고개를 자신도 모르게 끄덕거렸다. 이훈장은 마음이 솔깃하여 마른 침을 꿀꺽 다시고는 슬그머니 물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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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그래?......... 그렇다면 그 여인은 누구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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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을 최대감집의 여식이온데 시집가서 한 달 만에 남편이 죽자 몇 년 째 혼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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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 맑은 눈빛의 녀석이 또랑또랑 거침없이 말했다. 이훈장은 녀석의 말을 듣고 속으로 깜짝 놀랐다. 최대감집하면 이 고을에서 내로라는 명문가였다. 양반가의 법도를 지키며 근엄하게 살아가는 최대감집을 어디 털끝하나 잘못 건들리기라도 할양에는 크게 경을 칠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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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어험! 이놈아! 네가 아직 어려서 잘 몰라 그러는데 그것은 아니 될 일이다! 다시는 그런 소리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거라! 잘못했다가는 너나 나나 정말 큰일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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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장은 누가 들을 새라 문밖을 엿보며 어린 녀석을 단단히 일러 보냈다. 만약 자신이 그녀와 좋아지낸다는 헛소문이라도 마을에 돌았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사실 이훈장 입장에서는 학식 있고 인품 고운 훌륭한 최대감 집의 젊은 그녀와 부부의 연을 맺게만 된다면 그만큼 큰 횡재는 없을 일이었다. 그러나 꿈에라도 그런 생각은 말아야 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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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구 작가의 전설따라 남도삼백리 (2)어린제자의 꾀

■강형구 작가의 전설따라 남도삼백리

▶꾀 많은 제자

(2)어린 제자의 꾀

 

그림/김예지

다음날 어린 제자 녀석은 서당이 파한 오후에 이번에는 당돌하게도 홀로 사는 젊고 어여쁜 그 최씨 부인 집을 찾아갔다. 기와집 너른 마당을 가로 질러 들어가며 녀석은 마구잡이로 그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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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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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이 덜컥 열리더니 아름다운 최씨 부인이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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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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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부인이 어린 제자 녀석을 바라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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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 스승님 안 오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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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부인은 너무도 황당한 말에 화들짝 놀라며 누가 들을 새라 얼른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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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끼! 이놈! 그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냐? 너희 스승님이 왜 우리 집엘 오시겠느냐! 큰일 날 소리 말고 어서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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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를 들은 어린 녀석은 아무 말 없이 그 집을 나와 버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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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는 이틀 뒤 녀석은 또 그 최씨 부인 집을 찾아가 큰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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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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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나기 뇌성번개 몰아온 듯 다급하게 질러대는 어린 아이 부르는 소리에 방문이 벌컥 열리고 어여쁜 최씨 부인이 무슨 일인가하고 깜짝 놀란 얼굴로 마루로 뛰쳐나왔다. 보니 엊그제 온 그 어린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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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 왜 사람을 놀라게 하느냐! 또 무슨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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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부인이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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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승님이 여기와 주무신다던데 우리 스승님 안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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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녀석이 너무도 터무니없는 말을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맹랑하게 소리쳤다. 그 말을 들은 최씨 부인은 순간 버럭 화가 나고 기가 막혀 얼굴이 금세 벌겋게 달아올랐다. 길 가는 누구라도 저 소리를 들었다가는 큰일 날 것이었다. 최씨 부인은 버선 신은 발로 후다닥 밖으로 뛰쳐나오더니 부엌으로 들어가 커다란 부지깽이를 냅다 들고 나와 녀석을 사납게 후려치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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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가거라! 이놈! 어디서 그런 해괴망측한 소리를 하는 것이냐! 어서 나가거라!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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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녀석은 최씨 부인의 부지깽이를 다람쥐마냥 껑충껑충 뛰며 이리저리 잘도 피해 밖으로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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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고 난후 며칠 뒤였다. 서당이 파하고도 어린 녀석 혼자 집에 가지 않고 서성거리고 섰더니 이훈장에게 다가와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훈장은 지레짐작 ‘이 엉뚱한 어린 녀석이 또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할 것이냐?’ 싶은 마음이 되어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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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제가 하라는 대로만 하시면 그 여인에게 장가 드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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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이놈! 또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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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장은 어린 녀석이 하는 말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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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제 하라는 데로만 하십시오. 그러면 뜻대로 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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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녀석이 소리를 낮춰 진심인 듯 이 훈장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이 훈장은 어린 녀석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자 너무 터무니없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일어 그냥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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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이 도무지 말 안 듣는 맹랑한 녀석! 그래,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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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장의 말에 어린 녀석이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로 속삭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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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 내일 이른 새벽, 밥하기 전 그 여인 집으로 들어가면 집에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스승님은 무조건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 이부자리를 펴고 그냥 누워있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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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여인 집에 새벽에 들어가 그 안방에 누워 있으라니? 이런 기가 막힐 소리를 듣게 되다니! 이 훈장은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소리에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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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 아무리 철없는 어린 녀석이라고 듣자 듣자하니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것이냐! 너 이놈! 지금 이 스승을 도적놈으로 몰아 죽이려고 그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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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훈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