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13~15)
<제2화> 명필 이삼만 (13)300냥
입력 2020. 09. 22 17: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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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저는 공부도 많이 하지 못한 그저 깊은 산골에 박혀 사는 농사짓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람의 글씨를 받고자 한다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초지종을 알길 없는 이삼만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말하면서 정중히 거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변변하게 어디다 자신의 글씨를 내보인 적도 없고 또 내놓을만한 학문에 변변한 경력도 없기에 한편으로 몹시 당황했던 것이다. 더구나 중국인들이 자신의 글씨를 보았을 까닭이 도무지 없지 않은가? 저들은 도대체 이삼만의 글씨를 어떻게 알아보고 먼 중국에서 벽지 산골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정읍 고을의 이름 없는 이삼만을 물어물어 여기까지 찾아왔단 말인가?
그것은 다름 아닌 정읍에 사는 약초 상인에게 몇 달 전 써준 물목기가 원인이었던 것이다.
대구 약령시에서 중국산 약 재료를 가지고 온 하얀 머리칼의 중국 상인은 정읍에서 온 상인이 내민 물목기를 보고는 흠칫 제 눈을 의심하며 깜짝 놀랐다. 한 글자 한 글자 휘갈겨 쓴 글씨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꿈틀꿈틀 기운차게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흐흠! 글씨의 필획에 기품과 기운이 넘치는구나!’
한동안 그 물목기를 바라보며 글씨를 감상하고 있던 기품 있는 얼굴의 중국 상인은 마침 약재 값으로 300냥을 치르려는 정읍의 상인을 보고 말했다.
“이 물목기는 누가 쓴 글씨인가요?”
정읍의 상인은 그 말을 듣고 별 이상스런 것을 묻는 중국인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우리 고향 정읍 산골에서 근근이 농사지어 먹고 사는 장가도 못간 노총각이 써준 것이라오.”
“흐음, 그래요. 그가 누군가요?”
중국인은 그 말을 듣고는 다시 유심히 물목기의 글씨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이삼만이라는 자요.”
약초 상인은 별 생각 없이 말했다.
“으음! 정읍에 사는 이삼만이라!....... 좋습니다. 내 오늘 당신이 약재를 산 약재 값 300냥을 받지 않을 테니 이 물목기를 내게 주고 갈수 있겠소?”
“뭐 뭐라고요? 그 그게 정말이나요!”
정읍의 약초 상인은 중국 상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 귀를 의심하며 말했다. 대체 300냥이 얼마나 큰돈인데 그것을 저 하잘 것 없는 물목기와 바꾸겠다니 머리에 몽둥이라도 얻어맞은 듯 어안이 벙벙했던 것이다.
“정말이오. 이 물목기를 내게 주시면 약재 값 300냥을 받지 않겠소이다.”
중국인은 다시 또릿또릿하게 말했다.
“아!”
정읍의 약초 상인은 벌린 입을 닫지 못했다. ‘도대체 이삼만이 쓴 저 물목기 글씨가 300냥이란 말인가!’ 본시 물목기는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이렇게 글씨를 보고 약재 값을 받지 않고 물목기를 갖겠다고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던 것이다.
중국인은 그 자리에서 정읍에 가면 이삼만을 만날 수 있는가를 물었고, 이렇게 하여 정읍의 먼 산골까지 어려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이삼만을 찾았던 것이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4)순수한 예술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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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정경도(한국화가)
글씨를 써줄 것을 정중히 간청하는 중국인에게 자신의 글씨가 별것 아니라고 겸손하게 거절하는 이삼만을 한동안 바라보던 중국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어찌 글씨에 산골이 있고, 농사꾼이 따로 있을 수 있겠소. 사양하지마시고 비단에 글씨 한 점만 써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중국인은 준비 해온 필묵에 새하얀 비단을 이삼만 앞에 펼치는 것이었다. 같은 조선인도 아니고 바다 건너 중국인이 자신의 글씨를 알아보고 글씨를 받고자 한다니 이삼만은 한편으로 당황했고 또 기쁘기도 했던 것이다.
더구나 예의를 갖춰 말하는 그 중국인의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삼만은 이윽고 아름다운 중국 비단에 글씨를 쓱쓱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글씨가 완성되자 한참동안 유심히 그 글씨를 들여다보던 중국인이 말했다.
“으음! 참으로 글씨는 명필이나 자획 속에 사기(邪氣)가 끼었으니 애석하도다!”
글씨는 명필이나 글씨에 사기가 끼었다니? 그 중국인의 한마디가 이삼만의 머리를 사납게 내리쳤다. 중국인은 글씨를 써준 이삼만에게 많은 돈을 주고 감사하다며 후히 사례하고 돌아갔다.
뜻밖의 일을 당한 이삼만은 어안이 벙벙했다. 생각지도 않은 일들이 벌어진 것에 대한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비단에 쓴 자신의 글씨를 보고 평(評)을 하던 그 중국인의 말이 묵직한 뼈다귀처럼 가슴에 박혀 얹힌 듯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 글씨에 사기(邪氣)가 끼었다니 그 무슨 말인가?’
이삼만은 처음으로 자신의 글씨를 알아봐준 중국인의 그 말을 음미하고 또 음미하면서 결국 자신이 중국인의 뜻하지 않는 부탁을 받고 화려한 비단에 처음으로 글씨를 쓰면서 달뜬 마음에 기교와 잔꾀를 잔뜩 부려 운필(運筆)을 했던 것을 생각 했다.
‘으음........, 글씨는 곧 내 마음이었구나!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중국인은 내 글씨를 보고 내 마음의 허와 실을 모조리 꿰뚫어 보았던 것이야!’
이삼만은 순간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그 후로 이삼만은 정신 수양에 더욱 힘을 썼고 필을 쥐고 싶은 마음이 나지 않으면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글씨를 쓰지 않았던 것이다.
논두렁 풀이나 베고 흙이나 파먹고 사는 농투성이 이삼만이 일약 필객으로 이름을 세상에 날리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이 낯선 중국인의 방문 때문이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온 약재 상인은 서예가로서 일평생 서예에 몰두 해온 예인(藝人)이었고 우연히 조선에 와서 이삼만의 필체를 물목기로 접하게 되어 그 필체의 어떤 경지를 발견해 세상에 들어내 놓게 했던 것이다. 이삼만에게는 그 중국인이 최고의 은인이자 최초의 스승이 된 셈이었다.
더구나 글씨에 사기가 끼어 애석하다는 그 한마디는 이삼만이 자기 멋대로 공부를 하며 글씨를 그냥 써온 그에게 글씨라는 것이 무엇인지 새로운 눈을 뜨게 해주었던 커다란 울림으로 가슴을 때렸던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부터 이삼만은 필객으로서 갖추어야할 모든 조건과 정신적 수양과 고뇌가 한꺼번에 물밀듯 몰아닥쳤을 것이고 또 자신의 글씨를 비로소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들여다보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었다. 벼루 열개를 구멍 내 버리고 붓 천 자루를 닳아 버렸다고 하니 이삼만의 피나는 노력이 얼마 만큼이었는가를 쉽게 짐작하게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그에게 하잘 것 없는 그 글씨의 아름다움과 그 글씨 속에 배인 정신까지 발견하여 그의 앞길을 밝혀 준 그 중국인은 참으로 사특함이 없는 순수한 예술혼의 경지를 더듬는 소유자였음이 분명하였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2화> 명필 이삼만 (15)추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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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이국의 땅에 장사꾼으로 와서 그냥 버려질 물목기의 필체를 눈여겨 볼 줄 아는 마음, 그리고 그 쓰레기 종잇장과 같은 물목기의 글씨에 반해 300냥이라는 거금을 던질 줄 아는 마음, 정읍 산골까지 먼 길을 달려와 그 글씨 쓴 사람을 찾아 만나서 글씨 값을 지불하고 글씨를 받아 갈 줄 아는 그 중국인의 순정한 마음이 곧 한 시대의 필객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글씨를 볼 줄 알고, 그 글씨를 쓴 사람을 볼 줄 알고, 수고롭게 그 사람을 찾을 줄 알고, 또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아닌 것은 아니다’ 말 할 줄 알았던 그 중국인은 참으로 내심 어떤 탁월한 경지를 더듬는 부러운 마음의 소유자임에 틀림없다.
수만의 눈이 있으나 보는 것은 돈이요, 칼이요, 권력이요, 탐욕이요, 출세요, 쾌락밖에 볼 줄 모르는 썩은 동태 눈깔들만 줄줄이 모여 사는 좁고 추저분한 그런 곳에서는 빛나는 보석이 길가에 깔려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은 마치 개새끼에게 금목걸이를 걸어준 것과 다름없을 것이다.
개새끼에게는 먹다버린 뼈다귀가 제격이요. 굶주린 늑대에게는 죽은 병아리가 제격이겠다. 사람으로 태어나 겨우 형체나 사람일뿐이고 또 재주 좋아 높은 자리에 올라 고상한 것 같으나 실상은 한손에 칼을 쥐고 한손에는 기름진 배창자를 두들기며 가난한 백성의 피비린내 나는 생육이나 도려 삼키는 데나 골몰하는 그런 한심한 인사들에게는 예인(藝人)은 사치요, 예술품은 허세며 종국에는 유치한 자기기만이자 천박하고 교만한 쾌락일 것이며 투기품목일 뿐일 게다.
당시 조선의 명필로 소문이 자자한 54세이던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귀향 가는 길에 전라감영에 들려 열여섯 살이나 더 많은 70세의 이삼만을 불러 글씨를 시험해 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그때 추사는 이삼만의 글씨를 보고 서슴없이 말했다.
“흐흠! 역시 내 생각대로 조필삼십년(操筆三十年)에 부지자획(不知字劃)이로구나!(삼십년 붓을 잡았다지만 획도 하나 못 긋는다) 내 보니 노인은 겨우 시골에서 글씨로 밥은 먹고 살만한 글씨로군!”
오만한 눈빛으로 이삼만의 글씨를 사정없이 하평(下評)해대는 추사를 쓱 바라보며 이삼만은 당당하게 큰소리로 일갈을 했다.
“저 자가 글씨는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조선 붓의 헤지는 맛과 조선종이의 스미는 맛은 분명 잘 모르는 자가 아닌가!”
당시 권력을 누리던 문벌 양반들은 고급스런 털이 짧은 중국 붓과 종이를 수입해 썼는데 가난하게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이삼만은 그런 고급스런 수입 붓과 종이를 전연 쓰지 않고 오직 꾀꼬리 꽁지털이나 칡으로 만든 갈필(葛筆)에 앵무새 꽁지 털로 만든 부드러운 조선 붓과 종이를 사용했기에 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추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황급히 등을 돌려 길을 떠나갔다.
당대의 양반 문벌로 태어나 최고 교육을 받고 쉽게 이르지 못할 높은 벼슬에 오른 교만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추사의 눈에 어찌 삼전이나 파 뒤집어 먹고 흙 구렁 속에서 무지렁이처럼 살아가는 산골의 학벌 없고 문벌 없고 지위 없는 그런 하찮은 노인의 특이한 것이 눈에 보이기나 했겠는가!
자연 속에 살아오면서 하찮은 지위나 허명이나 권력 따위는 행여 꿈결에도 욕심내지 않고 하루하루 자신의 끝없는 정신 수양의 끝에서 조선 붓을 잡고 조선종이 위에 사리처럼 빚어가는 글씨의 멋과 오묘한 깊이를 권문세가의 알량한 지식 속에 과거 급제와 벼슬이라는 고관대작의 교만과 오만으로 치렁치렁 치장해 두르고 그 속에서 화려하게 뒹굴며 살아온 나이어린 추사가 감히 알아보고 문턱이나 넘었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따지고 보면 물목기의 글씨를 보고 이삼만의 글씨를 한눈에 알아본 그 옛날 중국인의 눈에도 형편없이 못 미치는 오만과 교만으로 가려진 눈을 추사는 가지고 살았던 것이 아닌가!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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