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野說天下
<제3화>최고의 사윗감 (1회)두더지부부의 고민
입력 2020. 01. 04 18: 07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먼 미래에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하러 도솔천궁에서 인간세계로 내려온다는 미륵부처의 터전 덕룡산 미륵사, 커다란 미륵입상 기단 아래 집 지어 터전을 일구고 사는 부지런한 두더지 부부는 아들 열에 딸 하나를 낳아 기르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일까? 지금 두더지 부부는 집에 없었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들에 나가 씨앗을 뿌려 그것을 거두어 먹고사는 두더지 부부는 근면하고 성실해서 이 여름날 논 잡초라도 뽑고, 불볕에 땀을 뻘뻘 흘리며 고추밭에 나가 붉은 고추라도 따서 말려야 할 텐데 열 아들에게 모두 맡겨 놓고 먼 길을 떠나고 없었다.
도대체 두 내외가 어디를 간 것일까? 두더지 부부가 어느 날 밤 곰곰 생각해 보니 이제는 검은머리가 무서리 맞은 것처럼 하얗게 새고 눈이 자꾸 어두침침해질 만큼 살았으니 젊어 팔팔하던 기세도 수그러져 매일 들에 나가 일 욕심내고 살아왔던 지난날이 이제 옛말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모든 생명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는 것은 언젠가는 늙어 죽음을 맞게 된다더니 이 두더지 부부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열 아들 낳아 길러 짝 맞춰 오두막에 땅 장만이라도 해서 동네 골목 여기저기로 딴살림 물려주고 나니 이제 두더지 부부도 젊어 처녀 총각으로 만나 결혼식 올리던 시절이 까마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열 아들내외의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손자, 손녀 재롱에 이래저래 즐거운 일, 속상한 일을 겪으며 늘그막에 도란도란 사는 맛을 부대끼고 있는데 막상 이 두더지 부부에게 커다란 근심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낳은 열한 번째 외동딸이 이제 막 올해 열여덟 살이 되었으니 좋은 배필을 하나 만나 혼례식을 올려 주면 부모로서 할 일은 다 하는 셈이 되었는데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에 맞는 신랑감이 썩 눈에 띄지 않는 것이었다. 자기 속으로 난 자식 예쁘지 않은 부모 없겠지만 아들만 열에 끝에 딸 하나를 얻었으니 남의 집 귀한 외동아들 키우듯이 온 정성을 다해 기른 딸이었다. 어려부터 명석하기도 하거니와 행동거지가 바르고 단정해 딸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두더지 부부는 이 딸이 나이가 열다섯, 여섯 이렇게 먹어가면서 여인으로서 자태가 고와지고 품행이방정해 마치 울안에 핀 작약 꽃같이 화사하고 예쁘게만 보이는 것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그런 딸을 바라볼 때면 은근히 가슴에 삶의 보람 같은 게 괴어오르는 것이었고, 그 보람만큼이나 야무지고 당찬 꿈이 일렁이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이 나라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최고의 사윗감을 얻어 배필을 맺어 주어야 직성이 풀릴 것만 같았던 것이다. 딸이 자라면서 두더지 부부는 이런 옹골찬 생각을 설핏 가슴에 안아보곤 했는데 이젠 딸의 나이가 열여덟이 되고 보니 더 이상 주저할 수도 없는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딸과 같은 또래의 이웃의 처녀애들은 여기 저기 맞선을 보기도 하고 하나 둘 시집을 보내기도 하는 터라서 두더지 부부도 자신의 딸 일에 대하여 이젠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으면 아니 될 처지에 이르고 말았다.
지난 봄 덕룡산 자락 골짜기마다 하얀 겨울눈이 쌓였던 것이 녹고 파란 싹들이 들에서 산에서 다투어 피어났다. 그새 멀리서 다가온 남녘의 해풍은 보리밭에 보리를 푸르게 일으켜 세우는가 싶더니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쑥이며 민들레를 파랗게 들 가득 깔아버렸다. 그리고 바다를 건너 날아온 여름철새들은 파랗게 눈을 뜨는 나뭇가지에 앉아 반가운 울음을 울며 고단한 깃을 다듬는 것이었다.
이제 두더지 부부도 또 한해를 시작하는 봄을 맞아 논과 밭을 갈아 씨를 뿌리고 모종을 내고 길러야 했다. 그새 부지런한 이웃들이 논밭을 갈아엎느라 덕룡산 미륵사 주변 밭 자락은 쟁깃날에 갈아엎은 붉디붉은 선홍빛 황토를 내보이며 봄을 앓고 있었다. 이렇게 새봄을 맞이한 두더지 부부는 이제 딸이 열여덟이 된 것을 알고는 딸의 혼사에 대하여 어느 날 밤 불현 듯 말을 내었던 것이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3화>최고의 사윗감 (2회)가장 힘센 사위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여보, 영감 우리 딸도 이제 열여덟이니 시집갈 나이 아니겠어요?”
잠자리에 누운 두더지 영감은 아내가 불쑥 던져오는 말에 귀를 열고 조용히 생각해 보다가 말했다.
“벌써 그렇게 되었구만, 할멈, 혹시 어디 사윗감으로 생각해 놓은 좋은 사윗감 있나?”
두더지 아내는 영감의 말을 듣고는 속으로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내가 아는 곳에서는 아직 사윗감을 발견하지 못했다오. 영감은 누구 나 몰래 점찍어 놓은 사윗감이라도 있소?”
이렇게 물어오는 아내의 말에 두더지 영감은 한동안 생각에 잠겨 보는 것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배필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도무지 없었다. 이웃집 두돌이 녀석은 힘은 세지만 머리가 미련하였고, 건넛집 두생이 녀석은 머리는 약삭빨랐지만 힘이 모자랐고, 인물이 성에 차면 머리가 부족했고, 가문이 좋고 재산이 실하면 사람이 보잘것없어 보이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두더지 영감은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온 듯 봄날 꽃송이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제 딸을 여기 저기 이웃의 덜 떨어진 허점투성이에 못나게만 보이는 총각 녀석들과 비긴다는 게 몹시 마뜩찮았다.
“없어! 무슨 그 녀석들은 절대로 안 되지!”
두더지 영감은 아내의 말을 몹쓸 것을 입에 문양 퉤! 하고 멀리 내뱉어 버리듯 말했다.
“그럼 영감, 애 나이도 혼기가 찼는데 이러고만 있으면 안 되잖아요.”
“하긴 그러네…”
두더지 부부는 밤새워 말을 나누며 딸의 장래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렇게 그날 밤 말이 나오자 이제 두더지 부부는 밤마다 딸의 신랑감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밤 두더지 부부는 딸의 신랑감에 대하여 일종의 합의에 이르렀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자기 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어 결혼식을 올려 주기로 했던 것이다. 이제 두더지 부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가 누군가에 대하여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동네에서 가장 돈이 많은 두돈이 대감의 아들이라 해도 권력과 돈을 함께 가진 고을의 원님 아들보다는 힘이 약했고, 고을의 원님 아들은 또 한양의 정승 아들보다는 힘이 약했고, 정승의 아들은 한 나라의 임금의 아들인 왕자보다는 힘이 약할 것이었다. 물론 임금이 며느리 삼자고 두더지 영감에게 딸을 주라고 할리 만무했지만, 두더지 영감이 생각하기엔 그 임금의 아들 왕자라 해도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두더지 영감의 의견에 아내도 동의를 해왔다. 왕자라고 해봐야 세상의 모진 풍파에 몰리면 하루아침에 가을바람에 낙엽처럼 신세가 험악하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고, 또 권력에 대한 암투에 휘말리거나 내란이나 전쟁을 당하면 자칫 생명조차 부지하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고된 일을 해야 했던 모내기철을 보내고 있는 어느 밤이었다. 두더지 영감이 저녁을 먹고 진달래꽃이 지고 푸른 잎이 돋아나는 깊은 산 속에서 두견새가 울어대고 무논에 개구리가 우는 저녁에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는데 아내가 퍼뜩 말을 건네 오던 것이다.
“영감,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는 아무래도 저 하늘의 해님이 아니겠소.”
“…!”
그 말에 두더지 영감은 번갯불 맞은 양 머리가 번쩍 틔었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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