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3화>최고의 사윗감 (3회) 염천국(炎天國)
입력 2020. 10. 06. 18: 15
![](https://blog.kakaocdn.net/dn/cZXrGe/btr8LruOmCi/82svw6Ir03R7x0AiMT8vkK/img.jpg)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내가 오늘 낮에 논에 가면서 생각해 보니까 산에 나무들도 다 해님이 길러 주고, 우리 논에 나락도, 우리 밭에 고추도 상추도 다 해님 덕에 파릇하니 자라나니 세상에 하늘의 해님만큼 힘이 세고 강한 사윗감이 어디 있겠어요!”
“어이 옳거니! 인자 봉깨로 늙은 할망구가 그래도 쓸 모양이 많네 그랴! 허허허!” 두더지 영감은 이제야 비로소 제 딸의 사윗감을 찾았구나 하고 만면에 웃음을 베어 물며 맞장구를 쳤다.
늘그막에 혼기가 찬 예쁜 딸 배필도 찾지 못하고 끙끙 앓다 덜컥 죽어 가려는 팔자는 아닌가하고 괜스레 겁이 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윗감을 용케 찾아내다니 생각하니 십 년 묵은 체증이 한꺼번에 쑥 내려간 듯 두더지 영감은 마음이 금세 부풀어 올랐다.
‘음! 그럼! 그렇지! 암! 그렇고말고! 내 사위는 저 하늘의 해님 정도는 되어야지!’ 두더지 영감은 속으로 이렇게 되 뇌이며 이 세상의 밝은 낮을 온통 지배하고 하늘에 높이 떠서 만물을 길러주는 해님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라고 확신하는 것이었다.
이제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윗감을 알아냈으니 그 사윗감을 만나 설득해 딸의 배필로 정해 날짜를 잡아 결혼식을 올려주면 될 것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그 날 이후부터 해님을 만날 일에만 몰두했다. 세상의 어느 부모가 제 자식 잘되는 일에 적극적이지 않겠는가. 세상에 없는 것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구해주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인데 하물며 매일 보는 하늘의 해님쯤이야 딸의 행복한 삶을 위하여 못 얻어주랴. 이런 심정으로 두더지 부부는 해님이 사는 곳을 수소문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님이 사는 곳을 수소문하기를 또 한달 드디어 덕룡산 골짜기에서 온통 새하얀 머리에 긴 수염을 휘날리는 어느 늙은 도인을 만나 동쪽으로 천리 길 동해 바닷가 염천국(炎天國)에 해님이 살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드디어 해님이 살고 있는 곳을 알아낸 두더지 부부는 집으로 돌아온 곧바로 열 아들을 불러모아놓고 일렀다.
부모는 내일 아침에 중요한 일로 오랜 여행을 떠날 것이니 논과 밭을 열 아들이 열흘에 한 번씩 돌아가며 잘 돌보라고 말이다. 열 아들은 부모인 두더지 부부의 여행에 대하여 물었으나 두더지 부부는 그 일을 비밀에 부치고 천리 길을 떠날 채비를 챙겼다. 부러 그 일을 아들들에게 먼저 알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여행에 필요한 넉넉한 여비에 짐을 챙겨 등에 메고 다음날 해님이 산다는 염천국을 향하여 동으로 동으로 발길을 옮겼다.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을 위하여 이만큼의 노고야 힘든 일이 아니었다. 두더지 부부는 향기로운 봄꽃 만발한 늦봄의 들길을 지나 호젓한 산길을 걸어 때론 지나가는 우마차에 몸을 의지해 가기도 하고, 끼니때면 주막에 들어 국밥을 사먹기도 하고, 인심 좋은 동네에 들어가 한 끼 점심이나 저녁을 신세지기도 했다. 날이 저물면 여관에 들어 자기도 하고 또 길가 집에 들어 사정을 말하고 하룻밤 얹혀 자고 가기도 했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3화>최고의 사윗감 (4회) 해님
![](https://blog.kakaocdn.net/dn/clXRZ3/btr8KJJgbHw/7tIUs8fBC1KmzDiesV6iNk/img.jpg)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이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시작되는 뜨거운 길을 걸어 두더지 부부는 줄기차게 동쪽을 향해 나아갔다. 집 떠난 지도 그새 한 달 여가 지나가고 달포가 가까워지자 마침내 바다가 나타났다. 드넓은 바다가 나타나고 한없이 푸른 물결 위로 갈매기들이 날아다녔다. 두더지 부부는 해님이 산다는 동해에 도착한 줄을 알고는 지나가는 수염이 텁수룩한 생쥐영감에게 물었다.
“여보시오 생쥐 영감님, 여기가 해님이 산다는 염천국인가요?”
“오호라! 염천국을 찾아가시는 객이시군요. 염천국은 여기서 배를 타고 한참가면 섬이 나타나는데 그곳이라오. 염천국행 배는 석양에 딱 한번 있으니 그때를 놓치지 마시오.“
두더지 부부는 자신들이 제대로 염천국을 찾아온 것을 알고는 뛸 듯이 기뻤다. 이제 이곳 바닷가에서 염천국행 배만 타면 해님을 만날 것이었다. 석양에 한번 있는 배를 타기 위하여 두더지 부부는 근처 바닷가 주막에 들어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은 두더지 부부는 불볕 이글거리는 여름날의 바닷가에 나가 시원한 바닷물에 생전 처음으로 해수욕을 즐겼다. 그리고 드디어 서쪽 하늘이 빨갛게 물들어 바닷물이 온통 핏빛으로 붉게 물들어오는 석양이 되자 선착장에 집채만큼 큰 배 한 척이 뿌아앙! 뱃고동을 울리며 나타났다. 염천국행 배였다. 두더지 부부는 서둘러 배에 올랐다.
막 해님이 바닷물에 닿는 순간 배는 출발했다. 빛살처럼 미끄러지듯 바다를 가르는 배는 해님이 바닷물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동쪽 끝 커다란 섬에 도착했다. 섬은 고요한 어둠 속에 쌓여 있었다.
용솟음치는 거대한 바다 물결이 섬을 곧 삼켜버릴 듯 일렁이고 있었다. 배에서 내린 두더지 부부는 시퍼런 바다 물결이 두려워 잽싸게 선착장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곳에는 낙지영감이 있었다.
“낙지 영감님, 해님의 집은 어디인가요?”
“저기 동쪽 산 아래 커다란 대궐이 있는데 그곳이라오.”
두더지 부부는 낙지영감이 가르쳐준 곳을 향해 재우쳐 걸어갔다. 과연 얼마를 가니 동쪽 산비탈에 커다란 대궐 같은 집이 나타나고 커다란 대문이 보였다.
두더지 부부는 대문 앞에 다가가 소쩍새 문지기에게 물었다.
“여기가 해님의 집인가요?”
“네 그렇소. 우리 해님은 지금 막 일을 마치고 돌아와 저녁을 들고 계시는 중이라오. 그런데 댁은 뉘시오?”
“우리는 저기 지구 조선국 전라도 서쪽 땅 덕룡산 미륵사 미륵님 아래 사는 두더지 부부라오. 해님을 만나 부탁드릴게 있어서 왔으니 우릴 좀 해님에게 데려가 주시오.”
“참으로 먼 길들 오셨군요. 나를 따라오시오.”
석양을 안내하는 소쩍새 문지기는 두더지 부부를 밤을 지키는 두견새 안내인에게 데려다 주었다. 두견새 안내인은 두더지 부부를 응접실로 데리고 가더니 가재 시녀들을 시켜 저녁을 내오게 했다. 두더지 부부는 맛있는 저녁을 배불리 얻어먹고 응접실에서 기다렸다. 잠시 후 해님이 모습을 나타냈다. 얼굴이 거울처럼 반짝이는 해님은 과연 하늘의 왕답게 위엄 있었는데 인자한 미소로 두더지 부부를 반겨 주었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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