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러 저런 아야기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11/12

by 까망잉크 2023. 4. 13.

<제3화>최고의 사윗감 (11)구도자

입력 2020. 10. 19. 18: 14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두더지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가슴을 치고 탓하면서 어서 그 힘이 센 사위를 얻어 성대하게 딸의 혼례식을 올려주자고 마음을 다잡으며 그리운 고향집을 향해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두더지 부부가 집에 도착한 것은 계절이 바뀌어 다시 온 세상에 푸른 생명 일렁이는 봄이었다. 지난 봄 고향을 떠날 때 새로 푸르게 돋아나던 이파리들을 나뭇가지마다 달고 있었고 여기저기 색색의 봄꽃들이 향기를 머금고 일제히 피어나고 있었다. 그 나뭇가지마다 지난 가을 남녘으로 날아갔던 여름 철새들이 돌아와 새로운 사랑을 위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두더지의 열 아들들은 멀리 길 떠난 부모를 기다리며 올해 농사를 새로 지으려고 소를 몰고 나가 논밭 쟁기질에 열중이었고, 딸은 부모가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집을 잘 지키고 있을 것이었다.

두더지 부부는 오랜 여행으로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잖아도 늙은 몸이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겠다는 욕심으로 동으로 해님을 찾아, 남으로 구름님을 찾아, 북으로 바람님을 찾아 고행의 길을 떠났다가 마침내 서녘 끝 자신의 고향으로 되돌아오면서 그 기나긴 여로에 몸이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었던 것이다.

얼굴의 주름 골은 논고랑처럼 깊이 패었고, 머리카락은 파뿌리처럼 새하얗게 새버렸고, 허리가 지끈지끈 쑤시고 다리는 퉁퉁 부어 흡사 절름발이처럼 절뚝거렸다. 그러나 두더지 부부는 몸은 쑤시고 아팠지만 마음은 매우 편안했다. 그들이 애초에 가졌던 열망에 대한 답을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하나의 번뇌 망상의 열망이 가슴에 불씨가 되어 그것을 구하러 집을 떠난 구도자(求道者)가 되어 천하를 주유하는 가파르고 고단한 고행 끝에 비로소 자신의 고향 땅에 자신들이 찾아 헤매는 가장 힘센 사위가 있다는 위대한 깨달음을 얻고 돌아오는 거룩한 성자(聖者)와도 진배 없었다. 집 대문 앞에 돌아온 두더지 부부는 급한 마음으로 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뒤로 미룬 채 집 위의 미륵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륵님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바보 같은 우리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위에 있는 미륵님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이라는 것도 모르고 이렇게 한 평생을 살아왔군요.”

“아니, 그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그 말을 들은 미륵님은 순간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은 우리 내외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자는 소원을 가지고 지난해 봄 집을 떠나 해님과 구름님과 바람님을 찾아 세상 곳곳을 헤매었지요.”

“아! 그러한 연유로 두 분께서 오랫동안 집을 비우셨군요.”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3화>최고의 사윗감 (12)두더지 총각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그런데 그 고단한 여정 끝에 비로소 미륵님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 집에 막 도착했습니다. 미륵님, 우리 딸의 배필이 되어 주십시오. 날을 잡아 음식을 많이 장만해놓고 일대의 수많은 분들을 초대해 성대하게 혼례식을 올립시다. 우리 딸이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싯감이란 것을 미륵님도 잘 아시겠지요?”

두더지 부부는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간절히 말했다. 빙그레 미소를 지은 채 그 말을 들은 미륵님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뜻을 들어주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나 사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가 아니랍니다.”

“뭐? 뭐라! 미륵님! 지, 지금 무슨 말씀을 그리하십니까? 매일 흙이나 파먹고 살아가는 무식한 두더지라 싫어서 그러십니까? 우리 부부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죽기 전에 우리 딸을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어 시집보내는 게 마지막 소원입니다. 미륵님은 제발 거절하지 마시고 이 늙은 부부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두더지 영감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애절한 목소리로 공손히 말했다.

“아이고! 두더지 영감님, 절대로 그것이 아닙니다. 제가 서있는 아래를 잘 살펴보십시오. 지금 저는 불안해서 죽을 지경이랍니다. 당신 두더지들이 제가 선 발아래를 파서 집을 만들고 사니 언제 제가 쓰러질지 몰라 두려워서 날마다 가슴을 콩닥콩닥 졸이고 있답니다.”

미륵님의 말을 들은 두더지 부부가 설마하고 미륵님의 발아래를 살펴보니 정말 두더지들이 이리 저리 흙집을 짓느라고 파헤쳐 미륵님이 언제 쓰러져 버릴지 모를 지경이었다. 깜짝 놀란 두더지 부부가 미륵님의 얼굴을 바라보니 은은한 미소 깊숙한 곳에 두려움이 가득 묻어 있었다.

저렇게 단단하고 육중한 돌로 만들어진 미륵님도, 온 세상을 다 품에 안을 듯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륵님도 한낱 자신들 두더지들의 흙 작업에 두려워 벌벌 떨고 있었다.

“두 분 이제 잘 아시겠지요?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힘이 센가를요!”

미륵님이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미륵님의 그 말을 들은 순간 두더지 부부는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충격으로 자신도 모르게 ‘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활연관통(豁然貫通) 대오(大悟)의 찬란한 희열(喜悅)이 정수리에 내리꽂히는 오도(悟道)의 찰나였다.

“어허! 그럼 우리 두더지들이 해님보다도 구름님보다도 바람님보다도 여기 미륵님보다도 더 힘이 센 존재란 말인가! 우하하하하하! 아니 세상에서 우리 두더지가 제일 힘이 센 존재란 말인가! 우우하하하하하하!”

“아니 정말 우리 두더지들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존재라니! 여보 그게 정말인가요! 호호호호호!”

그때야 비로소 자신의 위대함을 발견한 두더지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얼싸안고 소리치며 하늘이 무너져 내리라고 크게 웃었다.

두더지 부부가 세상에서 하나뿐인 예쁜 자기 딸을 마음씨 착하고 근면한 그리고 진실하고 정직한 성품을 지닌 건강한 이웃집 두더지 총각에게 시집보낸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끝>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