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3화>최고의 사윗감 (9)바람님
입력 2020. 10. 15 18: 01
그림/이지선(홍익대 미술대학 졸업)
눈이 내려 온몸이 빠지고 뼈가 얼리도록 시린 바람이 불어대는 때였던 것이다. 두더지 부부는 겨우 북쪽 얼음바닷가에 도착해 마침 썰매를 타고 지나가던 흰곰 영감에게 물었다.
“영감님, 풍천국은 어느 길로 가는 것이지요?”
“에구! 추운데 풍천국을 찾아 가신다고요. 그럼 이 썰매에 오르시오. 나도 거기로 가는 중이라오. 내 아들놈이 풍천국 바람궁에 근무하는데 일이 있어 거기 가는 길이지요.”
두더지 부부는 잘 되었구나하고 얼른 흰곰의 썰매에 올라탔다. 썰매는 바람처럼 미끄러지며 얼음의 바다 위를 달려 나갔다. 한참을 달려가니 하늘에 반짝이는 얼음성이 나타났다. 얼음으로 뾰쪽 뾰쪽 깎아 만든 기기묘묘한 성이었다.
성문 앞에 도착하자 독수리 대장이 지키고 있었다. 흰곰 영감은 성문 안으로 들어가고 두더지 부부는 따로 독수리 대장을 만났다.
“두 분은 무슨 일로 풍천국을 찾아 오셨나요?”
“저희들은 덕룡산 미륵사 미륵님 아래 사는 두더지 부부인데 풍천국에 사는 바람님을 뵈러 온 것이지요.”
독수리 대장은 두더지 부부를 고니 성지기에게 안내를 해주었다. 고니 성지기는 두더지 부부를 귀빈실로 데리고 가서 저녁을 대접했다. 기러기 시녀들이 맛있는 저녁을 내왔다.
저녁을 먹은 두더지 부부는 바람님이 오기를 기다리다가 고니 성지기가 내주는 방에 들어 잠을 청했다. 바람님은 밤새워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아침에나 올 거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을 먹고 난 후 두더지 부부는 귀빈실에서 바람님을 만났다. 바람님은 그 위풍만큼이나 투명한 얼음 옷을 걸쳐 입고 근엄한 얼굴에 매서운 눈썹을 휘날리며 가는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맞아주었다.
“두 분 이 먼 곳까지 어인 일이 십니까? 저는 하루에도 열 몇 번씩 덕룡산 미륵사 미륵님을 뵙지요. 봄에는 따뜻한 봄바람으로 여름에는 강력한 태풍으로 가을에는 서늘한 산들바람으로 지금 같은 겨울에는 매서운 북풍으로 만나곤 한답니다. 가끔씩 비와 눈을 몰고 가 퍼붓고 오지도 하지요.”
“오! 그러신가요 바람님. 다름이 아니라 내겐 아들이 열에 딸이 하나 있는데, 아들은 모두 결혼을 시켰으나 하나 있는 딸을 아직 사윗감을 구하지 못해 결혼을 시켜주지 못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위를 얻고 싶은 게 소원이 되었지요. 그래서 모든 생명을 길러주는 저 파란하늘의 해님이라 생각되어 찾아갔더니 해님은 자기가 아니고 구름님이라 일러 주었지요. 그래서 다시 구름님을 찾아갔더니 자기도 아니고 바로 바람님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이라고 일러주어 이렇게 내 딸의 배필이 되어 주십사 하고 찾아왔군요. 내 딸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색시이니 바람님은 거절하지 말고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3화>최고의 사윗감 (10)미륵님
그림/이미애(단국대 예술대학 졸업)
두더지 영감은 그간의 고생에 비쩍 야윈 얼굴로 간절히 바람님에게 말했다. 정말 이렇게 바람님을 만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였던가! 발은 띵띵 얼어붙고 살갗은 헤져 트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었다. 바람님은 두더지 영감의 말을 듣고 한동안 말없이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뜻을 들어주기는 어렵지 않으나 저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가 아니랍니다.”
“뭐라고요?”
해님을 만나고 구름님을 만나고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바람님을 만나기 위하여 세상의 끝 이곳 바람궁까지 왔는데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가 바람님 자신이 아니라니!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두더지 영감은 바람님을 넋이 나간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분 잘 들어 보세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이는 인간들이 사는 사바세계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천리 두 분이 오신 덕룡산 미륵사 바로 거기 서있는 미륵님이랍니다.”
“뭐라고? 자신들이 살고 있는 집 위 바로 미륵님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그 말을 들은 두더지 부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두더지 부부는 혹시 잘못 들은 것은 아닌가하고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놀란 눈빛으로 바람님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지금껏 자신들은 바로 자기 집 위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미륵님도 몰라보고 살아왔단 말인가? 이런 바보천치 멍텅구리가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결코 그럴 리는 없었다.
“바람님, 무슨 농담을 그렇게 잘하시나요. 우리들이 아무리 무식하기로서니 우리 집 위에 서 있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도 몰라보고 지금껏 살아오며 여기까지 왔겠어요. 그러지 말고 우리 청을 들어주시오.” 두더지 영감은 미륵님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그게 정말이랍니다. 제가 천년동안이나 거센 폭풍우에 차디찬 눈바람을 그 미륵님에게 하염없이 몰아쳐 불어댔으나 한 번도 미소 변하지 않고 지금도 까딱없이 그 자리에 서있지 않나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분은 바로 제가 아니라 덕룡산 미륵사 그 미륵님입니다. 두 분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그분에게 사위가 좀 되어 달라고 잘 부탁해 보시지요.”
바람님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게 옳지 않은가! 두더지 부부는 정말 자기 집 위에 항상 미소를 그윽하게 짓고 서있는 커다란 미륵님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자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자신들을 후회하며 바람님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 자기 집 위에 있는 사윗감도 몰라보고 동에서 남으로 다시 북으로 수천리 길을 발이 닿도록 돌아다니지 않았는가!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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