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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남도일보]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기생 소백주 (제15회) 한양길<제4화>기생 소백주 (16) 이정승

by 까망잉크 2023. 5. 2.

[남도일보]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제15회) 한양길

입력 2020. 11. 11 18: 55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그러나 김선비에게는 정말로 관운이 없어서였을까? 스무 살 무렵부터 꾸준히 과거를 치렀지만 보는 족족히 보기 좋게 낙방이었다.

시험 운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슨 귀신이라도 붙은 것일까? 유려한 문장도 고운 필체도 박학다식(博學多識)한 학식도 과거급제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평생을 과거급제에만 매달려오며 아까운 청춘을 다 버리고 그새 마흔 줄이 되어버린 김선비는 길이 탄식하였다. 나라에서 치르는 과거시험도 중앙의 실권을 틀어쥐고 있는 높은 관리들과 연줄이 있어야 가능하고 또 엄청난 뇌물을 갖다 바쳐야 급제하느니 어쩌느니 하는 부정한 소문들이 심심찮게 들리더니 과연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깊은 고민 끝에 김선비는 어느 날 마음을 정했다. 정직과 곧은 정신으로 사사로운 권력과 재물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야할 선비임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글공부를 해서 과거급제도 못하고 꿈에도 그리던 벼슬자리 한번 해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살다 죽느니 가산을 정리해 먼 인척관계에 있는 지금 조정의 권력을 한 손에 틀어주고 있는 한양의 이정승을 찾아가 지방의 하급관리자리라도 하나 달라고 한번 청탁(請託)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더더욱 김선비가 그리 마음을 정한 것은 늙은 어머니의 성화 때문이었다. 늙은 어머니는 죽기 전에 김선비가 과거에 급제하여 떡하니 사모관대를 쓰고 임금이 하사한 교지를 들고 나타나 여봐라! 하고 호령하며 천하를 굽어 다스리는 늠름한 모습을 보는 것을 소원했던 것이다.

오직 벼슬을 하여 가문을 빛내는 것을 바라는 늙은 어머니에게 효도하기 위해서라도 김선비는 체면이고 뭐고 다 내버리고 선비로서는 도무지 해서는 아니 될 비굴하기 짝이 없는 일이기는 했으나 한양 땅의 이정승을 찾아가 굽실거리며 부탁을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과거시험을 보는 족족히 보기 좋게 낙방하는 것이 실력이 부족해서인지 운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뇌물을 바치지 않아서인지 김선비 자신도 도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급기야 김선비는 그해 거둬들인 곡식을 모두 팔아 처분하고 또 조상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논밭을 얼마간 팔아 돈 천 냥을 만들어 젊은 하인 등 지게에 짊어지게 하고 한양 땅에 사는 이정승 집을 찾아 길을 떠났다.

김선비는 이른바 거액의 뇌물을 챙겨들고 떡하니 벼슬자리를 청탁하러 한양의 실권 있는 이정승을 찾아 길을 나섰던 것이다.

김선비가 여러 날 걸어 한양 땅에 당도하여 조정의 우의정이라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한 손아귀에 거머쥐고 있는 이정승 집에 당도하여 보니 과연 그 집이 대궐 같았다.

99칸 기와집이라더니 고래 등 같은 집들이 어깨를 서로 마주하고 들어서 있었다. 우선 하인이 안내해 주는 사랑방에 여장을 풀고 밤이 되어 이정승이 퇴궐하여 집으로 돌아오자 김선비는 마음을 가다듬었다.

비록 낯을 들 수 없을 만큼 비굴한 일이기는 했으나 이렇게 한양까지 왔으니 최선을 다해야했다. 김선비는 마음을 굳혀 먹고 사랑방을 나서 이정승이 있는 서실(書室)로 향해 갔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16) 이정승

학이며 소나무가 그려진 여덟 폭 진기한 병풍이 방안을 빙 둘러 쳐져 있고 값나가는 붓과 먹과 벼루, 은빛 황금빛 광택이 고운 번뜩이는 장롱과 청자 백자 문양 고운 도자기, 여러 진기한 서책과 글씨 편액들이 가지런히 걸려 서실 안을 장식하고 있었다.

어여쁜 여동생이 임금의 빈(嬪)으로 간택되어 외척의 세도를 단단히 누리게 된 이정승은 그 힘으로 우의정 자리를 거머쥐었다고 소문이 파다했는데 각진 이마에 성질깨나 사나운 듯 눈꼬리가 위로 북 치켜 올라간 것이 첫눈에도 살진 얼굴에 탐욕이 덕지덕지 흘러넘치는 것이 참으로 거만(倨慢)한 인상이었다.

나이를 따져보자면 이정승이 김선비 보다 열 살 쯤 더 많았다. 흡사 커다란 멧돼지 같은 몸집의 이정승은 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엎드려 절을 하는 김선비를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으음!……경상도 상주 땅의 김유경이라!……내 당고모할머니의 손자라 하셨는가?”

“예, 그렇사옵니다.”

김선비는 거만하게 거들먹거리며 자신을 내리 깔아보는 이정승의 오만한 눈빛을 의식하며 자신도 모르게 불끈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청탁하러 간 처지를 생각하고는 공손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챙겨간 돈 꾸러미를 이정승 앞으로 슬그머니 들이밀었다.

“그 그건…… 무슨 짐 보따리인가?”

이정승이 묵직하게 보이는 뜻밖의 짐 보따리를 보고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실은 제가 워낙 천학비재(淺學菲才)라 이제껏 글공부라고 하였으나 과거를 보는 쪽 쪽 낙방하여 어디 미관말직이라도 하나 얻어 볼까 하고 천하에 명성이 자자한 이정승님께 약소하나마 돈 몇 냥 챙겨 왔습니다.”

요즈음 거액의 뇌물을 받고 지위 높은 권세가들이 벼슬자리를 거래한다고 나라 안에 소문이 자자했는데 특히나 외척의 세도를 단단히 누리고 있는 학식도 변변찮은 이정승이야말로 뇌물 밝히고 뒷거래 잘하기로 최고으뜸이라는 것을 조선팔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어 어흠!…… 뭘 이런 것 까지나……”

이정승이 헛기침을 하면서 김선비가 들고 간 돈 보따리를 눈어림으로 가늠해 보고는 다시 입맛을 쩝! 하고 다시며 말했다.

“아! 그래……으 으음!……그거라면 저 사랑방에 가서 며칠 묵으며 기다려보시게나!”

“아! 예! 정승나리!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이정승과의 면담은 그것으로 짧게 끝이 났다. 김선비는 공손히 이정승에게 절을 하고 그 방을 물러나왔다.

그날 밤 김선비는 이정승과 헤어져 사랑방으로 가면서 멀지 않아 어디 지방의 미관말직이라도 하나 챙겨 주리라는 가슴 부푼 기대를 한껏 가져보는 것이었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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