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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술술 읽는 삼국지](1) 나관중의 ‘삼국연의’ 첫 구절은?

by 까망잉크 2023. 4. 17.

[술술 읽는 삼국지](1) 나관중의 ‘삼국연의’ 첫 구절은?

중앙일보

입력 2023.01.16 06:00

업데이트 2023.01.16 10:34

독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해가 바뀐 지 벌써 보름이나 지났습니다. 2023년 새해에는 난세를 이겨내는 지혜가 담긴 중국 고전 삼국지를 저와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요?

오늘부터 읽는 삼국지는 소설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삼국연의(三國演義)』입니다. ‘연의’라는 말은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여기저기서 전해져오는 야사와 전설 등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모아서 만든 것입니다. 요즘 말로 ‘팩션(faction)’입니다.

소설 '삼국연의'의 작가 나관중. [출처=예슝(葉雄) 화백]

우리는 '삼국지'라고 말하면 일반적으로 소설을 뜻하지만 보다 엄밀하게 살펴보면  진(晉)나라 때 진수(陳壽)가 쓴 역사서인 『삼국지(三國志)』를 의미합니다.

진수의 『삼국지』는 중국역사의 초기를 다룬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와 함께 ‘전사사(前四史)’라고 합니다. 『삼국연의』도 『수호지(水滸誌)』, 『서유기(西遊記)』, 『금병매(金甁梅)』와 함께 중국이 자랑하는 ‘4대 기서(奇書)’입니다. 『삼국지』와 『삼국연의』가 각기 역사와 소설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삼국연의』(이제부터는 ‘연의’로 약칭하겠습니다.)는 명(明)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지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읽고 있는 것은 청(淸)나라 때 모종강(毛宗岡)이 엮은 것입니다.

나관중이 지은 연의는 총 24권 240칙(則)이었습니다. 이것을 모종강이 부친인 모윤(毛綸)과 함께 120회로 대폭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곳에는 그에 어울리는 시를 추가하였습니다. 우리가 읽는 연의는 대부분이 12회분을 한 권으로 편집하여 총 열 권으로 완성되어 있습니다.

자, 그럼 연의를 펼쳐보겠습니다. ‘도원결의’가 시작이라고요? 아닙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사(詞)’라는 노래입니다. 사는 시(詩)의 변형입니다. 시는 운율이 엄격하게 맞아야 하고 정형화되어 있어서 읽기 위주였습니다. 하지만 사는 ‘노래하듯 부르는 시’입니다. 즉, 요즘의 대중가요인 셈입니다. 그래서 자유로운 형식으로 노랫말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노래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춤입니다. ‘사’도 춤을 곁들이며 불렀다고 합니다.

‘시’가 당(唐)나라 때 유행한 문학 장르라면 ‘사’는 송(宋)나라 때 유행한 문학 장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선진국의 문화는 서로가 따라서 배우려고 합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K-팝을 따라 부르며 한류 문화에 열광하듯이, 송사(宋詞)도 서로가 따라 배우는 것이 유행이었습니다. 우리의 고려시대 선비들도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송사를 원어로 한 곡조씩 부르곤 했습니다. 그럼, 우리도 한 번 따라 불러볼까요?

滾滾長江東逝水 gǔngǔn chángjiāng dōngshìshuǐ
장강은 넘실넘실 동쪽으로 흐르는데

浪花淘盡英雄 lànghuā táo jìn yīngxióng
영웅은 물거품처럼 다 사라졌구나.

是非成敗轉頭空 shìfēi chéngbài zhuǎn tóu kōng
시비 성패도 한갓 공허한 것이로다.

靑山依舊在 qīngshān yījiù zài
청산은 옛날 그 자리인데

幾度夕陽紅 jǐdù xīyáng hóng
노을은 몇 번이나 붉음을 반복했던가!

白髮漁樵江渚上 báifà yúqiáo jiāng zhǔ shàng
강가의 어부와 나무꾼은 백발이 되었어라.

慣看秋月春風 guànkàn qiūyuè chūnfēng
가을 달 봄바람은 어느 때나 보는 것

一壺濁酒喜相逢 yīhú zhuójiǔ xǐ xiāngféng
한 병 탁주로 반갑게 마주 앉아

古今多少事 gǔjīn duōshǎo shì
고금의 숱한 일들을

都付笑談中 dōu fù xiàotán zhōng
모두 다 우스개 이야기로 흘려버리세.

연의의 서사(序詞)인 이 노래는 명(明)나라 때 양신(楊愼)이 지은 ‘임강선(臨江仙)’이라는 사의 일부분입니다. 그는 중국의 역사를 10개의 단계로 나누어 노래로 묶은 〈이십일사탄사(二十一史彈詞)〉를 지었습니다. 모종강이 서사로 활용한 노래는 제3단인 ‘진(秦)나라와 한(漢)나라의 노래’ 부분입니다.


'삼국연의' 모정강본 서사 부분. [출처=허우범 작가]

내용을 음미하면 연의를 다 읽은 듯한 느낌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부귀영화도 의미 없는 일이고 오직 노자(老子)적 삶인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는, 다분히 해탈의 경지에 있습니다. 또한, 이 노래는 연의의 첫 회에 나오는 ‘천하의 대세는 나누어진 지 오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면 반드시 나누어진다. (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라는 순환론적 역사관을 응축시켜 놓았습니다.

양신은 왜 이런 가사를 지었을까요? 양신은 명나라 중기에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한림원 수찬(修撰)이 된 촉망받던 학자였습니다. 그런데 세종(世宗)이 자신의 생부(生父)를 황제로 추존하려고 하자,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이를 반대하였습니다. 이에 분노한 세종은 양신에게 형벌을 가하고 운남 지역으로 유배시켰습니다. 양신은 그곳에서 35년간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유배 중에도 100여 종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70세가 넘어 촉(蜀)땅으로 옮겨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죄인이었습니다. 촉망받던 신하에서 한순간에 죄인이 되어 변방으로 내몰린 양신. 그가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던 것은 노장사상에의 심취였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그가 참담한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서예가 무산 윤인구의 ‘삼국연의 서사’ 휘호 [출처=허우범 작가]

그렇다면 모종강은 왜 양신의 이 노래를 넣었을까요? 모종강도 젊어서부터 글을 잘 짓기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런데 벼슬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시력까지 잃은 것으로 봐서 건강이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세상을 볼 수 없다면 삶 자체가 암흑인 것입니다. 자연히 인생도 무의미해집니다. 그리하여 모종강자신도 절절하게 공감한 양신의 이 가사를 대하소설의 응축본으로 맨 처음에 배치한 것이라면 너무 엉뚱한 생각일까요?

이제 항구를 출발했으니 본격적으로 연의의 바다로 나가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튼실한 채비를 하여 매주 월·수 마다 월척을 낚기 바랍니다.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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