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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아야기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51/52

by 까망잉크 2023. 5. 30.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51)천생연분

임력 2021. 01. 05 18: 33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땀범벅이 된 둘은 날숨을 토하고 어둠 속에 앉아 자리끼로 윗목에 놓아둔 물을 벌컥벌컥 번갈아가며 들이켰다. 그리고는 이불속에 들어 서로를 끌어안고 누웠다.

“서방님은 어디서 사시는 분이기에 이제야 나타나신 건가요?”

소백주가 김선비의 품에 안겨 속삭였다.

“부인, 내 고향은 경상도 상주지요.”

“그래요. 그런데 이 먼 수원 땅을 어떻게 해서 오시게 되었나요?”

하룻밤 수많은 격정의 순간이 지나가고 이제야 비로소 김선비의 신상이 궁금하였던지 소백주는 지나온 내력을 묻는 것이었다.

“으음!...... 내 본시 글 읽는 서생으로 과거에 급제하기 위하여 수많은 세월을 공부에만 전념하였지요. 그런데 과거를 보는 족족 낙방하여 더 이상 세월을 보낼 수도 없고 하여 먼 친척인 지체 높은 이정승에게 부탁하여 벼슬을 사보려고 집안의 가산을 다 팔아 삼천 냥을 갖다 바치고 삼 년을 기다렸지요. 그러나 삼년이 지나가도록 아무런 벼슬자리 하나 주지를 않고 급기야 상주 고향땅에서 늙은 노모와 처자식이 굶어 죽는다하기에 더 이상 그 집에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 없어 몇 냥 노자라도 얻어 고향에 가려했으나 노자 한 푼 주지 않아 걸어서 점심도 굶고 오다가 수원에 당도하여 그대의 방을 보고 너무나 배가 고파서 술이나 한잔 얻어먹고 허기나 면하고 가려다가 이렇게 된 것이지요.”

김선비는 지나온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숨김없이 말했다.

“서방님, 그러셨군요. 그러시다면 아무 걱정 마시고 이곳에서 지내셔요.”

그렇게 말하며 소백주는 다시 김선비의 넓은 가슴을 어루만지는 것이었다. 젊은 여인의 부드럽고 뜨거운 손길이 닿자 김선비는 다시 불끈 몸이 달아오르는 것이었다. 김선비는 소백주를 살그머니 꼭 끌어안아주었다.

“서방님과 저는 천생연분(天生緣分)인가 봅니다. 서방님의 손길 닿는 곳마다 내 몸 구석구석 마구 꽃이 피어나고 봄 불이 번집니다.”

“어허! 그러신가요. 부인! 나도 그대를 만나 이렇게 허기를 면하고 조선에서도 최고로 소문난 여인을 내 품에 안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쁘기 한량이 없군요.”

김선비는 소백주의 몸을 어루만지며 몸 위로 또 다시 나는 듯이 벌떡 오르는 것이었다. 남녀 관계란 것이 처음이 어려운 것이지 그 벽을 넘어 한번 서로 사랑을 나누게 되면 쉬이 넘나들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김선비와 소백주는 그 궁합이라는 것이 딱 맞는 천생연분이라서 그랬을까? 절구와 절굿공이처럼 서로의 마음과 몸이 마치 한 몸처럼 서로 잘 융합되고 화음이 교묘하게 딱딱 들어맞는 것이었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52)고향생각

그림/이미애(삽화가)

둘 사이에는 늘 아름다운 봄바람 같은 따뜻한 바람이 흐르고 있었고 그 바람은 서로에게 환희를 낳았다. 환희의 나무 밑에서는 금슬이라는 탐스러운 열매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김선비는 그날 이후로 소백주에게 흠씬 빠져 고향 집으로 내려갈 마음을 송두리째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백주는 매일 김선비를 새 옷으로 갈아 입혀 주고 술과 고기로 융숭히 대접해 주면서 들로 산으로 유람을 나다니는 것이었다.

연일 꽃피는 봄날만 같은 시름없는 날들이었다. 소백주 옆에만 있으면 향기 그칠 일 없었고 근심일랑 있을 수 없었다. 남녀 간에 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마음 편하게 근심걱정 없이만 살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었다. 더 이상 욕심 부려 공부해 과거 따윈 볼 필요도 없었고, 힘써 재물을 늘려 부귀영화를 누리려 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돈 많은 어여쁜 부인 소백주가 이끄는 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되었으니 누구는 새로 얻은 마누라 덕에 호강한다고 할지 몰라도 그 세월이 참으로 김선비에게는 춘삼월 호시절(好時節)이었던 것이다.

김선비는 고향의 노모와 처자식이 다 굶어 죽게 생겼다는 것은 딱 잊어버리고 아무 생각 없이 소백주와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만 있었다. 좋은 옷 입고 좋은 음식 먹으며 밤마다 아름다운 여인 소백주를 끌어안고 자면서 세월을 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꿀같이 달콤한 망각의 세월 삼년이 거짓말같이 번쩍 흘러가 버린 어느 가을 날, 문득 멀리 북녘으로부터 찬바람이 몰려오고 산비탈에 심은 밤나무에서 밤알이 툭툭 벌어지고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물들어 오자 김선비는 고향생각이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어허! 간밤에 단꿈을 꾸고 막 일어난 것만 같은데 그새 삼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단 말인가!”

김선비는 혼잣말을 하며 소백주에게 홀랑 빠져 지낸 세월을 더듬어 보는 것이었다.

지금쯤 그 고향집에도 가을을 맡느라 분주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고 잊고 살았던 노모며 처자식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 견딜 수 없이 그들이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식구들이 죄다 굶어 죽게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고향집에 가다가 소백주를 만나 이렇게 그들을 다 잊어버리고 혼자만 호강하고 살아온 것을 그제야 깊이 되새겨 생각해 보는 것이었다.

‘아이쿠! 이거, 내 고향땅에 살아있을 노모며 처자식은 어찌되었단 말인가? 필시 굶어 죽었을 것이야! 내가 이거 사람이 아니었구나!’

김선비는 속으로 깊이 뉘우치면서 소백주의 집을 떠나 하루빨리 고향집으로 가야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날 밤 잠자리에 들어 소백주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부인, 내 그대 덕분에 이곳에서 세월 가는 줄 모르고 호강하고 살았는데 생각해보니 내 고향집에 두고 온 노모며 처자식은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해 마음이 몹시 불편하군요.”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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