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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 저런 아야기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53)이별주 <제4화>기생 소백주 (54)홍수개

by 까망잉크 2023. 5. 31.

 

[남도일보]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53)이별주

입력 2021. 01. 07. 18: 29

그림/김리라(성균관대 미술학부 졸업)

“서방님, 그렇다면 고향으로 떠나시겠다는 것입니까?”

소백주는 화들짝 놀라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으며 놀란 토끼눈을 뜨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나만 좋자고 있었던 것이 그새 삼년이나 되어버렸군요. 사람이라면 이렇게 혼자만 좋자고 식구들을 내팽개치는 짓은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될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김선비는 작정한 듯 소백주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서방님, 다시 오시는 것입니까?”

소백주가 물었다.

“고향에 처자식이 있는 몸이니 가면 어찌 쉬이 올 수 있겠습니까! 다음에 혹여 한양이라도 가는 길이 있으면 반드시 내 다시 들리겠습니다.”

김선비가 말했다.

“서방님, 그럼 이 밤이 서방님과 이별의 밤이 아닙니까? 오늘밤 이별주라도 한잔 해야지요.”

그렇게 말하며 소백주가 밖으로 나갔다. 정말 이 밤이 소백주와 이별의 밤이란 말인가? 꽃피는 봄날 기약 없이 만나 꿈결 같은 나날을 보냈건만 그 세월도 이제 끝이 나야한단 말인가!

길을 떠나야만 하는 김선비의 마음도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쓸쓸했다. 그러나 어쩌랴! 밖으로 나간 소백주가 걸게 주안상을 차려왔다. 김선비와 소백주는 이별의 술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아늑한 등잔불 발간 방안에 조촐한 주안상이 차려지고 김선비와 소백주는 서로 마주하고 앉았다. 3년을 마주하며 살아온 부부의 연을 맺은 사이건만 늘 새로운 사람과 살아온 것 같은 풋풋한 싱싱함이 묻어나는 소백주였다.

차가운 칼바람 아래서도 다가올 봄을 예견한 듯 꿋꿋하게 피어나는 매화꽃 같은 상큼하고 굳센 정신이 깃든 듯 그러나 진한 향기가 먼저 코끝에 다가와 여인네의 포근한 살 향기로 늘 자신을 덮쳐버리고 말던 소백주! 김선비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학이 나래를 펴고 비상하는 그림이 그려진 말간 청주가 담긴 술잔을 손에 잡았다. 차가운 술잔의 온도가 손끝에 느끼어 왔다.

불을 지핀 방바닥은 따뜻했지만 바깥은 무서리가 내리는 차가운 늦가을 밤이었다.

북녘 멀리서 기러기가 날아올 이 차가운 밤에 고향에 두고 온 늙은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들은 밥이나 굶지 않고 몸이나 따뜻하게 있을까 생각하니 또 숨은 눈물이 가슴 밑바닥에 솟구치려 했다.

조선 천하의 미색 소백주와 언제까지나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것은 아니 될 일이었다. 글공부를 한 죄로 과거시험에 낙방한 것이 가슴에 한이 되어 급기야 벼슬을 사러 올라왔다가 3년 동안 가산을 모조리 탕진해 버리고 굶어 죽게 되었다는 식구들 편지를 받고 내려가다가 아름다운 젊은 여인 소백주의 향내 나는 품에 퐁당 빠져 장장 3년을 지내버렸으니 돌이켜보면 이건 도무지 사람으로서 해서는 아니 될 일을 하고만 것이었다. <계속>

강형구 작가의 야설천하(野說天下)

<제4화>기생 소백주 (54)홍수개

그림/이미애(삽화가)

김선비는 정말 생각할수록 자신이 쓸개 빠진 타락한 인종임을 생각하고는 가슴깊이 한숨을 삼켜 무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시험에 낙방하고 가산을 탕진해 뇌물을 바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늙은 어머니와 처자식들이 굶어 죽게 생겼다는 전갈을 받고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 한 끼 굶주림을 해결하고자 저 소백주를 만나 젊은 여인의 향기에 도취되어 일체를 망각하고 3년을 지내버렸으니 이는 도무지 상식 밖의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산을 탕진해 버린 것도 고사하고 여인에게 미쳐 가족에 대한 책임을 져버렸으니 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늙은 어머니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마누라와 자식들은 소식도 전하지 않은 자신을 원망하며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식으로서도 남편으로서도 아버지로서도 모든 것을 다 팽개쳐버리고 될 대로 되라하고 아름다운 여인의 품에 빠져 희희낙락 온갖 호사를 다 누렸으니 정말로 타락한 인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책임도 다 내버리고 지나쳐온 지난날을 회상하며 김선비는 멀리 달아나버린 제 정신이 이제야 돌아온 듯 한잔 술을 급히 들이켜고는 눈을 지그시 감는 것이었다.

정말로 이정승의 사랑방에서 어느 선비에게 들었던 수캐골의 난봉꾼 홍수개보다도 못한 자라는 생각이 들어 깊은 자괴감에 김선비는 순간 빠져 드는 것이었다.

남도의 어느 심심산골에 홍수개(洪修開)라는 자가 살고 있었다. 홍수개의 아버지 홍진사가 한 겨울에 첫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지을 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첫 글자인 닦을 수(修)자를 따고 홍가 가문의 항렬자인 열 개(開)자를 써서 성씨가 넓을 홍(洪)이니 닦아서 넓게 펼치라는 심오한 뜻으로 그렇게 지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라나면서 수개가 수캐가 되어버렸으니, 그것도 하필 발정한 수캐가 되었으니 그 또한 기이한 하늘의 조화가 아니고 무엇이랴!

홍수개의 아버지 홍진사는 비록 학문을 닦아 향시인 진사시에 합격하고는 크게 펼치지는 못하였으나 자그마한 산골에서 문자속량이라도 깨우친 자로서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비록 높은 산 고개를 두 개나 넘어야 들어가야 할 아담한 마을에 터 잡고 살고는 있었으나 그 산골짜기 산이며 논밭이 거개가 다 홍진사 땅이었다. 못해도 백석지기가 되는 집안에 서책을 두루 섭렵한 지식인이었다. 그러기에 홍진사는 아들 수개에게 기대가 컸었다.

그러나 홍수개는 아버지 홍진사의 기대를 항상 저버렸다. 어려서부터 서책은 멀리하고 밖으로만 나다니며 남의 집 아이 때려놓고 울리기, 남의 집 채소 밭 망쳐 놓기, 남의 집 과일 따먹기, 남의 집 닭 토끼 잡아먹기 등 온갖 짓궂은 장난질을 일삼았다.

그때마다 홍진사는 홍수개를 붙잡아 타일렀다. 그래도 그 버릇은 더해갔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그 철없는 강아지처럼 읽던 서책을 내팽개치고 잠시의 틈만 생기면 밖으로 줄행랑을 쳐버리는 것이었다. <계속>

 

출처 : 남도일보(http://www.namd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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