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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이야기

바위틈서 버텨온 천년세월 고성 천학송(天鶴松)의 가르침

by 까망잉크 2023. 6. 7.

바위틈서 버텨온 천년세월 고성 천학송(天鶴松)의 가르침

강원도 고성의 천학송. 1400년이나 된 소나무라고 한다.

소나무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어 온 장고송(張古松·82) 선생. 80대이지만 60대 정도의 체력을 지니고 있다. 필자가 작년에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 밑의 산장에서 장고송 선생을 처음 만났을 때 그 눈빛이나 태도가 범상치 않게 느껴졌다. 사람마다 풍기는 아우라가 있는 법인데, 그의 풍모가 신선같이 느껴졌다.

 

기인 장고송 선생과의 만남

최근 그와 설악산의 오색약수터에 있는 그린야드호텔에서 4박5일 같은 방에 머무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악산에서 풍기는 기운은 어떻습니까?” “육산(肉山)인 지리산에 비해서 훨씬 강하죠. 전부 바위가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설악산 약초꾼들만 보아도 깡마른 체질에다가 자기 주장과 고집이 여간 강한 게 아닙니다. 같은 약초라도 설악산에서 캔 것이 효과가 좋아요. 험난한 바위에서 자랐기 때문에 약효가 더 있죠. 바위가 많은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약초나 소나무가 더 약효도 많고 생명력이 강합니다. 내설악과 외설악의 기운이 달라요. 내설악 기운이 사람을 더 안아주는 느낌이 있죠.”

그의 말처럼 내설악의 오색은 점봉산이 같이 둘러싸고 있어서 솥단지 안에 들어와 있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외설악은 풍경은 좋은데 에너지가 흩어지는 느낌이 있다면 내설악은 풍경은 덜하지만 기운이 안아주는 경향이 있다.

장 선생은 “내설악의 기운을 느끼기에 좋은 장소가 바로 주전골입니다. 주전골을 한번 둘러봅시다”고 제안했다. 필자는 계룡산과 지리산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사실 설악산은 자세히 모른다. 조선시대 설악산에 숨어든 낭인들이 외부 감시를 피해서 몰래 엽전을 주조했다는 주전골은 그만큼 후미진 오지다.

주전골은 계곡이다. 온통 바위 속을 수백만 년 동안 계곡물이 흘러내리면서 물길을 만들었다. 주변에 암봉들이 뾰쪽뾰쪽 솟아 있어서 계곡에 들어가는 사람을 압도한다. 옛날 사람들은 날카로운 바위 절벽과 봉우리가 사람을 압도하는 풍광을 ‘천인벽립(千仞壁立)’이라고 표현했다. ‘천길 낭떠러지의 바위 절벽이 벽처럼 서 있다’는 의미이다. 기상이 삼엄해서 상대방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의 소유자를 표현할 때 ‘천인벽립’의 기상을 지니고 있다라고 표현한다. 조선조 남명 조식의 기상을 표현할 때 가끔 쓰는 표현이 천인벽립이다. 천인벽립의 기상을 느끼게 하는 주전골 골짜기를 두세 시간 산책을 해보니 양쪽 바위 절벽에서 바위 기운이 몸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장 먼저 이마 쪽의 상단전을 기운이 때린다. 상단전에 들어오면 양쪽 미간에 힘이 들어가고 뒤통수 쪽에서 찡하고 기운이 충전되기 시작한다.

바위산에 오면 이 기운이 충전될 때 감지되기 시작하는 전기 에너지의 맛이 기가 막힌다. 이런 바위 기운을 받으면 서울에서 지하철에 시달려도 1주일은 버틸 수 있다. 바위 절벽의 기운은 이마의 상단전만 때리는 게 아니다. 발 뒤꿈치부터도 올라오기 시작한다. 척추 꼬리뼈에서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올라온다. 위에서는 때리고 아래서는 올라올 때 온몸이 감전되는 상태이다. 이게 산의 맛이요, 바위의 맛이요, 설악의 맛이라고나 할까. 이 맛을 들이면 중독이 된다. 그 효과는 몸에서 나타나기 마련이다. 피곤이 사라지고 몸이 상쾌해지면서 숙면이 드니까 말이다.

 

내설악 주전골의 기운

장 선생은 소나무 사진을 찍다가 성령이 내려오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이걸 촬영삼매(撮影三昧)라고 표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구름이 지나가거나 안개가 끼는 모습, 그리고 서리가 얼어 있는 상고대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집중해야 한다. 안개가 끼었다가 사라지는 것은 10~20분 만에 변화가 오기 때문이다. 이 순간을 잡아야 한다. 순간 집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집중하는 훈련을 하다 보니까 촬영하는 순간에 자기를 잊어 버리고, 근심 걱정도 잊고, 빚 걱정도 잊는다. 몰입이 되는 것이다.

이 촬영삼매의 절정은 백두산에 겪었다고 한다. 겨울 백두산의 천지풍경을 담기 위해서 1990년 후반 백두산에서 2달간 머물렀는데,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면서 체중이 12㎏이나 빠졌다. 피골이 상접한 상태에서 카레마 렌즈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성령이 강림하는 듯한 체험을 하였고, 그 이후로 수시로 눈에서 눈물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잠잘 때 베갯머리에 흘린 눈물이 척척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은 자기의 에고(ego·我相)가 녹아나는 체험이다. 요가 차크라 식으로 이야기하면 네 번째 차크라인 아나하타 차크라가 열리는 체험이기도 하다. 가슴이 열리기 위해서는 눈물을 많이 흘려야 한다. 그는 “백두산에서 성령을 체험한 이후 신기한 일이 여러 가지 발생하였다”고 했다.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미래가 훤히 보이는 현상이 대표적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고난을 겪겠다. 잘되겠다. 불행을 피하려면 겸손해야 하고, 겸손해지기 위해서는 산을 많이 타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그냥은 겸손해지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산이 주는 매력은 겸손함에만 있지 않다고 한다. 무엇보다 산을 자주 타면 피곤하지가 않다. 바위산에서 서너 시간 운기조식을 하면 피로가 말끔하게 회복된다. 그리고 기억력이 증강된다. 한번 들으면 잘 잊어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이런 상태가 신선의 상태일지 모른다. 불로장생의 경지에 들어간 셈이다. 장 선생한테는 그것이 산에서 사진찍다가 성령체험 이후로 생겼다. 불교식으로 이야기하면 ‘한 소식’을 한 것이다. 그 뒤로부터 마음먹은 일은 대개 이루어진다고 한다. 단 조건이 있다. 사리사욕에 치우치면 안 되고 공적인 마음을 먹어야 한다. 사심이 앞서면 ‘사(私)가 낀다’고 한다. 사가 끼면 틀어지기 마련이다.

 

한국의 고송 300그루, 신송 20그루

“사진 찍기에 좋은 소나무는 어디에 많습니까?” “토양이 척박한 동해안 쪽에 많습니다. 땅이 비옥하면 예술적인 자태를 지닌 소나무는 나오지 않습니다. 살기 어려운 척박한 땅에서 명품 소나무가 나옵니다.” “우리나라에 좋은 소나무는 얼마나 있습니까?” “팔도에 약 2000그루가 있다고 봅니다. 500년 수령이 넘은 노송 소나무가 2000그루라고 보는 겁니다. 이 중에서 자태가 아름다운 고송(古松)은 약 300그루입니다. 여기에서 다시 더 좁히면 신송(神松)이 나옵니다. 신송은 20그루 정도 봅니다. 신송 20그루가 대부분 두타산, 설악산 일대에 있습니다. 바위가 많고 바람이 세고 척박한 토양입니다. 신송은 두타산 소나무가 최고입니다. 절벽의 아슬아슬한 곳에 매달려 있습니다. 이것 찍는다고 발을 잘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죽습니다. 저도 절벽에 매달려 죽을 고비를 넘긴 게 여러 번입니다.” “사진 찍기에 좋은 신송이 왜 두타산에 많습니까?” “제 생각에는 두타산이 석회암 성분이 많습니다. 석회암 성분이 많으니까 이게 소나무를 고생스럽게 만들고, 고생스럽다 보면 나무가 자라기는 자라도 곧게 자라지 못하고 비틀리면서 가지도 부러지고 한쪽은 썩거나 상합니다. 이런 모습이 예술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죠. 영양이 풍부하고 토양이 비옥하면 이렇게 말라비틀어진 소나무는 없습니다. 사람도 그렇지만 소나무도 말라 비틀어지는 고생을 많이 해야 명품이 된다고 봅니다.”

두타산 소나무는 절벽 중간에 매달려 있어서 가기가 어려웠다. 그 대신 고성에 있는 천학송(天鶴松)을 보러 갔다. 바위 암반 속에서 자란 소나무이다. 동네 사람들 이야기로는 1400년이나 된 소나무라고 한다. 온통 바위 틈새, 어떻게 그 어려운 상태에서 천년 이상을 생존했을까? 소나무 옆에 천학정이라는 정자가 있어서 동해 바다를 보고 있다. 그 정자 옆의 언덕에는 천년 이상을 바위 틈새에서 버티고 살아온 천학송이 나에게 ‘인생이란 이렇게 참고 사는 거여!’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주간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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