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풍부(西風賦) 김춘수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 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울려놓고 복사꽃을 울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복사꽃 피는 언덕에서 / 김상미
엄마, 복사꽃이 피었어요.
사람 사는 근처에 피어야 더 아름답다는 복사꽃,
복사꽃이 피고 있어요.
전생이 복사꽃이어서 아직도 내게
그 향기가 묻어 있다는 복사꽃, 느껴봐요.
꽃의 숨결, 꽃들이 부는 휘파람 소리,
못잊을 그리움은 저렇게 휘파람으로 부는 것이라며,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저 칼날 같은 꽃향기들,
눈으로 코로 입으로 콸콸 쏟아져 들어오는
그 향기로 진달래 화전 대신 복사꽃 화전을 만들어 먹었어요.
들어봐요. 엄마, 나예요, 나예요, 나라고요, 하며
내 영혼이 조각조각 꽃잎으로 전율하고 있어요.
복사꽃 한 잎 한 잎에 묻은 겹겹의 세월들이
온몸으로 환한 봄언덕을 물들이고 있어요.
꿈만 같은 봄바람 온 힘으로 앞서가고 있어요.
내 마음 깊이 잠든 엄마까지 깨우며,
이 세상 모든 머릿속 새장 문 활짝 열어제치고 있어요,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환장한 찰나로
'시와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루에 시작은 아침에 (0) | 2008.04.22 |
---|---|
청춘은 달콤히고 뜨거운 여름이었다 (0) | 2008.04.22 |
매화(梅花) 모음 (0) | 2008.04.18 |
누군가 말했지요 (0) | 2008.04.17 |
행복을 원한다면 (0) | 2008.04.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