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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서풍부(西風賦) 김춘수

by 까망잉크 2008. 4. 11.

서풍부(西風賦) 김춘수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 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울려놓고 복사꽃을 울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복사꽃 피는 언덕에서 / 김상미


엄마, 복사꽃이 피었어요.

사람 사는 근처에 피어야 더 아름답다는
복사꽃,

복사꽃이 피고 있어요.

전생이
복사꽃이어서 아직도 내게

그 향기가 묻어 있다는
복사꽃, 느껴봐요.

꽃의 숨결, 꽃들이 부는 휘파람 소리,

못잊을 그리움은 저렇게 휘파람으로 부는 것이라며,

몸 구석구석으로 퍼지는 저 칼날 같은 꽃향기들,

눈으로 코로 입으로 콸콸 쏟아져 들어오는

그 향기로 진달래 화전 대신 복사꽃 화전을 만들어 먹었어요.

들어봐요. 엄마, 나예요, 나예요, 나라고요, 하며

내 영혼이 조각조각 꽃잎으로 전율하고 있어요.

복사꽃 한 잎 한 잎에 묻은 겹겹의 세월들이

온몸으로 환한 봄언덕을 물들이고 있어요.

꿈만 같은 봄바람 온 힘으로 앞서가고 있어요.
내 마음 깊이 잠든 엄마까지 깨우며,

이 세상 모든 머릿속 새장 문 활짝 열어제치고 있어요,

황홀한 아름다움으로, 환장한 찰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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