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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제비의 하소연

by 까망잉크 2008. 6. 4.

 


 

제비의 하소연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진흙을 물기 시작하면 따뜻한 봄날이 시작된다. 언 땅이 풀리고, 집집 처마마다 재잘대는 소리가 시끄럽다. 지난 해 찾았던 집을 다시 찾아 주면 그것이 고맙고, 새로운 제비가 찾아오면 그것이 또 반갑다.
청나라 때 장조(張潮)는 《유몽영(幽夢影)》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고기 중에는 금붕어가, 새 중에는 제비가 사물 중의 신선이라 말할 만하니, 동방삭이 금마문에서 벼슬하며 세상을 피하여 사람들이 이를 해치지 못했던 것과 꼭 같다 하겠다.
 
무슨 말인고 하니, 금붕어는 빛깔은 곱지만 삶으면 맛이 써서 먹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무도 금붕어로 매운탕을 끓여 먹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제비가 집 처마 밑에 둥지를 틀어도 사람들은 오히려 제 집 찾아준 것을 고마워할 뿐, 참새처럼 이를 잡아 구이를 해 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살아 별다른 근심이 없고, 듬뿍 사랑만 받으니 신선의 삶이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한무제 때 동방삭은 벼슬 속에 몸을 감춘 이은(吏隱)이었다. 우스갯 소리 잘하고 낄낄대며 한 세상 건너갔기에 그 험한 시절에 제 한몸을 다치지 않고 삶을 마칠 수 있었다.
또 성호 이익 선생도 〈관물편〉에서 제비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제비는 집 들보에 둥지를 틀어 사람과 가깝다. 사람과 가깝게 지내면 벌레와 짐승의 해를 피할 수가 있다. 벌레와 짐승은 피하면서 사람은 피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 어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제비는 고기가 도마 위에 오르지도 않고, 날개가 장식으로 꾸미는데 쓰이지도 않는다. 그런 까닭에 사람이 죽이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다. 제비가 문득 그렇지 않음을 환히 깨달았다면 또한 높이 날아가 버렸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비 보다 지혜로운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제비는 사람이 저를 해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집 들보에 둥지를 틀어 짐승의 해를 피한다는 것이다. 제비가 집 들보에 둥지를 틀면 주인에게 길한 일이 있다 해서 그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그것을 잡아 먹는 경우란 없다.
다음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노래한 〈제비의 하소연〉이다. 원래 따로 제목은 없고, 〈고시(古詩)〉 27수 가운데 하나이다.
 
제비가 강남 갔다 처음 와서는
지지배배 쉼없이 조잘거리네.
말 뜻은 비록 분명찮으나
집 없는 근심을 하소하는 듯.
"느릅나무 홰나무 늙어 구멍 많은데
어째서 거기엔 머물질 않니."
제비가 다시금 조잘대는데
마치 내게 대꾸라도 하는 듯 하다.
"느릅나무 구멍엔 황새가 와서 쪼고
홰나무 구멍엔 뱀이 와 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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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분류 읽는 법
燕子初來時                                                                             
語不休(남:口+南) 
語意雖未明
似訴無家愁
楡槐老多穴
何不此淹留
 
 
 
 燕子復남남   
似與人語酬
楡穴관來啄(황새 관)
槐穴蛇來搜
 
지붕 위에서 조잘대는 제비가 자꾸 내게 무어라고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가만히 들어보니 집이 없어 걱정이라는 하소연이다.
"저기 저 느릅나무나 홰나무에는 둥지로 쓰기에 꼭 알맞은 구멍도 많은데, 거기에 깃들면 될 것을 왜 걱정하니?"
제비가 대답한다.
"그러면 편한 줄을 모르는 바 아니지요. 그렇지만 느릅나무 구멍에는 이따금씩 황새가 쳐들어 와서 제 집이라며 그 날카로운 부리로 꼭꼭 쪼아 대지요. 홰나무 구멍 속에는 구렁이가 슬금슬금 기어 들어와 새끼들을 다 잡아 먹는 답니다. 그러니 어째요. 열심히 진흙을 물어 처마 밑에 둥지를 지을 밖에요."
아마 다산 선생께는 제비가 황새나 뱀 같은 힘있는 자들에게 짓눌려 자기의 터전 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떠도는 가엾은 백성처럼 보였던가 보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도처에 함정과 덫이 발목을 노리고 있다. 수월하겠다 싶어 이미 만들어진 것에 파고 들면, 황새가 여기가 어딘 줄 아느냐고 이마를 쪼고, 뱀이 너 잘 걸렸다 하며 꿀꺽 삼킨다. 그러니 힘들어도 진흙을 한톨 한톨 물어다 거꾸로 매달린 처마 밑에다 둥지를 지을 밖에.
하지만 이 제비집도 이제는 보기가 힘들어졌다는 소식이다. 농약으로 곤충들이 다 죽어 먹이 사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겨, 제비의 개체수도 현저히 줄어들었을뿐더러, 그나마 알을 까고 나온 새끼의 생존율도 먹이 공급의 문제 때문에 갈수록 낮아진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

정민 교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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