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의 일곱 가지 수수께끼
첫째: 동도(東都= 경주)의 옥피리는 문경새재를 넘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 둘째: 안압지의 부초는 연못의 수위에 따라 오르내리면서 항상 가라앉지 않는다.
셋째: 백률사(栢栗寺)의 순송(笋松= 새로 나오는 가지)은 가지를 잘라내도 움이 튼다. 넷째: 매월당의 북향화(北向花= 목련)는 해를 등지고 핀다. 다섯째: 기림사(祇林寺) 감천(甘泉)= 뒤에 빠진 글이 있는 듯하다. 여섯째: 기림사의 오색 작약은 옮겨 심으면 제 빛깔이 나지 않는다.
일곱째: 불국사의 무영탑은 그것만 못에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 이것이 동도의 일곱 가지 괴이한 일이다.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靑城雜記)를 풀어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실장 박소동이 엮은 궁궐 밖의 역사에서 **옥피리: 신라 31대 신문왕이 동해에 나갔는데 30대 문무왕이 해룡이 되어서 대나무를 주어 그대로 피리를 만들어 부니, 전쟁 때 불면 적군이 물러가고, 가물 때 불면 비가 오고, 장마에 불면 비가 개이니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지금 박물관에 있는 두 개의 옥저 중 큰 것이 신라시대의 만파식적이라 전해오며 신라가 멸망 후 고려 태조 왕건이 이 옥피리를 수도 개성으로 가지고 갈려고 문경새재를 넘으니 소리가 나지 않아 신라 땅에서만 소리가 나는 신기한 것이라 하여 신라로 되돌려 보내왔다. 조선시대에도 옥저는 경주의 명물로 소중히 보관되어 왔는데 임진란 때 분실되어 이를 안타까이 여겨 새로 만든 것이 박물관의 작은 옥저이다. 그후 1692년 김승학이라는 사람이 땅을 파다 옥저를 발견하여 몰래 숨기고 있었는데 잘못하여 두 동강으로 부러지고 말았다. 아깝게도 그것이 진짜 만파식적이었다. 이 소문을 들은 당시 경주 부윤 이인징이 옛 보물을 찾아 밀로 때우고 은판으로 수리하여 먼저 만든 적은 옥저와 같이 나무상자에 넣어서 소중히 보관하였다. 이것이 지금 박물관의 옥저 만파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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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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