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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등잔

by 까망잉크 2008. 9. 18.

등잔/

 

              기름을 담아 불을 밝히는 등화구(燈火具)의 일종.

                                                  

 

                                                                                                       

전등이 널리 쓰이기 전의 등화구 가운데 가장 널리 쓰였던 형식이다.

등잔은 등가(燈架)·등잔받침·나비형 장식 등으로 구성되며 이를 통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좁은 의미로는 기름을 담는 용기를 지칭한다. 토기·도기·청자·백자·옥석 등 불연소성 소재로 만들며, 종지형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이다.

종지형 등잔은 직경 7㎝, 높이 5㎝ 내외의 크기가 보통이며, 식물성인 참기름·콩기름·면실유·피마자유 등과

동물성인 어유(魚油)·경유(鯨油)·굳기름 등을 사용했다.

개화기 이후에는 점차 석유를 쓰기 시작하면서 형태도 뚜껑을 덮는 폐쇄형으로 바뀌었다.

이 가운데 옥석제 종지형 등잔은 옥등(玉燈) 또는 석등잔으로 부르는 고급품으로서 궁중이나 사대부가에서 주로 사용했으며,

중국·일본 등과의 공무역에도 중요한 교역품의 하나였다.

등잔을 구성하는 다른 부재들은 불이 직접 닿는 등잔과 달리 목재나 유기로도 만들어졌으며,

길상문자나 십장생 같은 문양이 새겨지기도 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백자등잔과 온양민속박물관의 목제등경이 대표적인 예이다.

신라의 유물로는 토기로 된 다등식와등(多燈式瓦燈)이 있고, 백제의 것으로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자등잔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옥등잔이라고도 하는 대리석등잔이 있었다.

특히 작은 옥등잔은 인등(引燈)이라고 하여 무가(巫家)의 행사에도 사용되었고 연등(燃燈)에도 사용되었다.

큰 것은 지름이 한자〔一尺〕에 달하는 것도 있는데 근래까지도 큰 사찰에서 더러 볼 수가 있었다.

이러한 등잔이 미의 극치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은 역시 통일신라의 연등회와 고려의 연등회·팔관회 등에 불을 밝히고 발원하는

신앙행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옥등잔과 함께 청자등잔 또한 고려시대의 값진 예술품이다.

조선시대에는 역시 백자등잔을 빼놓을 수가 없다.

백자등잔은 나무등잔걸이나 철제 또는 놋등경 어디에 얹어두어도 조화를 잘 이루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백자기름받이를 걸쳐두면 한층 조화를 이룬다.

우리의 전통적인 등잔은 심지를 그저 그릇가에 대어서 불을 켜거나 발심지를 하여 그릇의 중간에 오게 하여 불을 켜지만

석유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바로 기름에 불이 닿으면 연소가 되기 때문에 뚜껑을 겸한 심지꽂이가 따로 붙어야만 하였다.

이것을 우리 기호에 맞게 고안된 등잔이 많이 나왔다.

민족항일기에는 가스를 연료로 하는 간데라도 있었다. 그러다가 1890년경에 처음으로 서울에 전기불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석유나 가스, 전기에 의한 조명이 있었지만, 최근까지도 제사나 고사 등에는 식용기름에 발심지를 해서 불을 켰다.

조도를 높이려면 심지를 두개 또는 그 이상으로 하여 불을 켜면 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을 쌍심지라 한다.

그러나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부분 양초를 애용하고 있어 전통의 등잔은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출처:다움,엠파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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