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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한 올을 붙잡고 명동 성당 종탑시계를

by 까망잉크 2009. 2. 21.

 

 

한 올을 붙잡고 명동 성당 종탑시계를

 

정오 12시 - 김세형 -

-김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선종을 추모하며-

 

선종(善終)이다

 

 

명동성당 종루에서 선한 종이 댕, 댕, 거리에 울려 퍼진다.

종이 울리자 시계 초침처럼 초조히 움직이던 도시의 물상들이

갑자기 정물들처럼 한 시각 한곳을 향해 일제히 멈춰 선다.

정오 12시에 삼위일체로 멈춰 선 고장 난 종탑 시계바늘들처럼

일체 한 치의 미동도 없다. 마치 고요하기가 *‘그랑자트의 섬의

일요일 오후’ 같다. 나는 그 생경하고 이상한 정오의 정물들

틈 사이로 은빛물살처럼 재빠르게 소용돌이치며 빨려 들어간다.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다 언뜻, 흐려진 순간의 의식

한 올을 붙잡고 명동 성당 종탑시계를 올려다보니,

 

 

정오 12시다.

 

 

난 고장 난 종탑 둥근 유리관 속에 삼위일체로 안치된 시계바늘들처럼

정오 12시 앞에 우뚝 멈춰 선다. 성모마리아 성화가 그려진 성당건물 벽면

스테인드글라스 볼록 유리창에 머리가 으깨진 잿빛의식 한올이 순간,

무지개 빛을 발하며 깃털처럼 공중으로 눈부시게 퍼져 오른다. 순간에,

순간의 모습을 잃지 않고 순간 속에 멈춰선 것들은 이미

영원 속에 고요히 서 있다. 정오 12시가

마치 살지도 않고 죽은 자의 얼굴처럼 지극히 고요하다.

그러나 난 고요 속에 멈춰 섰어도 이 고요를 이해하지 못한다.

멈춤들 속에 멈춰 서서도 난 나의 멈춤을 이해 할 수 없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순간의 죽음. 죽음의 순간.

 

 

선종(禪終)이다.

 

 

장엄하게 고장 난 정오 12시의 성당 안. 투명한 유리관 속

추기경의 고요히 멈춘 회분색 주름 진 얼굴표정이 정확히

정오 12시 쪽을 향해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고장 난 표정은 아니다.

멈춘 표정 속에서도 고요로 냉장된 주름진 시간은 계속

고장난 정오 12시 속을 호수의 잔물결처럼 잔잔히 흘러가고 있다.

 

*그랑쟈트 섬의 일요일 오후-조르주 쇠라 작품.

이상하기까지 한 정지와 정적의 인상을 그린 작품.

개개의 대상은 모두 현실적인 것을 재료로 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전혀 비현실적인 인상을 주는 묘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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