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부인(竹夫人)
피서용 취침 용구이다. 중국 당나라 때는 죽뢰술이라 불렀다가 송나라 때에 이르러 죽부인 또는 죽희(竹姬)라고 불렀다. 조선조 이유원의 글 '임하필기'에 보면 "무더운 여름 평상에서 죽부인을 두고 수족을 쉰다. 그 가볍고 시원함을 취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잘 마른 황죽을 참숯에 지지면서 엮어 만든 것으로 길이는 대략 넉자 반, 지름은 한아름 정도이다. 구멍이 나도록 성글게 짜서 원통형이 되게 한다. 살결이 닿을 때 감촉이 좋고, 가시에 찔리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 공정이 매우 까다롭고 잔손이 간다. 못이나 철사를 사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그리고 숯을 지져서 색을 내는 거외에는 생숯을 칠하는 등 가공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여름철 땀에 씻기거나 묻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삼베 홑이불을 씌워 죽부인을 가슴에 품고 한 다리를 척 걸치고 자면 시원하게 잠을 이룰 수 있다. 구멍이 뻥뻥 뚫리고 안이 텅 비었기 때문에 시원함이 유지될 뿐 아니라 대나무의 촉감이 또한 시원함을 준다. 이래서 여름 한철 죽부인을 사용하는 것은 피서방법으로 최고이며, 자식된 도리로서 노부모에게 죽부인을 선물하는 것은 효도라고 알려져 있다. 그 때문에 최근 죽부인을 선물하는 자식들이 늘어나 죽부인의 값도 이제는 매우 비싼 편이다.
일부에서 전하는 짖궂은 세간화(世間話)가 있다.
아들 5형제를 둔 노부부가 아직도 잠자리를 같이 한다. 형제가 밖에서 이 모습을 보고 투정을 한다. "아버지, 어머니는 우리 5형제를 두고도 모자라 또 자식을 만들려고 하니 딱하기도 하다. 여섯째가 태어나면 우리만 골탕을 먹는다. 업어 키워야 하고 똥오줌 치워야 하니 그 짓도 이젠 지긋지긋하다." 이리하여 5형제는 궁리 끝에 부모를 격리시키기로 작정을 하고 대나무로 가짜 부인을 만들기로 했다. 뒤뜰에 무성히 자란 대나무를 쪼개 얼기설기 엮어 만들어 안고 자기에 알맞은 정도의 긴 죽통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아버지에게 드렸다. 때는 무더운 여름이었다. 5형제가 만들어 준 죽통을 안고 자보니 사람을 껴안고 자는 것보다 훨씬 시원하고 잠이 절로 들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한없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한편 5형제는 나름대로 여섯 번째 동생이 생기지 않아 짐을 더니 기뻤다. 이를 이름하여 죽부인이라 한다. 그래서 부모가 쓰던 죽부인은 자식이 쓰지 못한다. 부모가 사랑스럽게 안고 자던 '죽부인'이기 때문이다. 죽부인은 담양 제품이 으뜸이다. 담양은 죽세공예가 발달하여 담양장은 전국 각지로부터 죽세품을 구하러 오는 상인들로 죽제품 시장으로도 유명하다.
대나무는 흔히 여성을 상징 그래서 죽부인은 남성 전유물
대나무를 여성의 이미지로 보는 경향은 희박하지만 신비와 영기가 서린 나무로 인정하는 측면은 많은 편이다. 삼국유사의 '미추왕과 죽엽군'은 이러한 것을 뒷받침하는 설화이다.
14대 유리왕때 이서국 사람들이 금성을 공격해왔으나 신라군이 당해내지 못했다. 이때 귀에 댓잎을 꽃은 이상한 군사들이 나타나 신라군을 도와 적을 물리쳤다. 적이 물러가자 이상한 군사도 간 데 없고 미추왕의 능 앞에는 댓잎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미추왕이 도운 것으로 알고 후에 이 능을 죽현릉(竹現陵 )이라 이름하였다. 또 같은 책에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피리에 관한 설화가 있다. 신라 신문왕 때 동해에 잦은 산이 하나 떠내려왔는데 산에 신기한 대나무가 있어 낮에는 둘이었다가 밤에는 하나가 되었다.
왕이 그 대를 베어 피리를 만들었는데 이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낫고 가뭄 때는 비가 오고 장마 때는 비를 멈추게 했다. 이처럼 나무 중에서도 대나무는 사군자의 하나로 특별히 취급될 뿐만 아니라 무당이 신내림의 대, 즉 신간(新竿)으로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나무를 여성 이미지로 볼 만한 근거는 일본이나 중국만큼 많지는 않지만, 이곳의 '죽부인전'처럼 여인의 절개을 대나무에 대입시킨 것을 보면 대나무를 여성화하는 시각도 있었던 것 같다.
어떻든 대나무를 여성화하여 죽부인을 만들어 여름 더위를 피해 보려는 지혜는 동북 아시아권 민족들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했던 것 같다. 이와 같이 대나무를 잘 게 쪼개 길고 둥글 게 엮은 베개형으로 품안에 끼고 자거나 다리를 얹고자면서 시원하게 여름을 보냈던 또 하나의 부인으로 옛 선인들의 여유와 생활의 멋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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