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역사) 이야기

아프고 슬픈 감정은 그리움에서 우러나온다.

by 까망잉크 2009. 4. 2.

 

과부된 자의 고뇌


 

 

옛날 어느 이름난 관리로 있는 형제가 어머니 앞에서 어떤 사람의 벼슬길을 막자고 의논하였다.

그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 물었다.

“무슨 허물이 있기에 벼슬길을 막으려 하느냐?”

자식 형제가 대답하였다.

“조상 가운데 과부가 있었는데 바깥 소문이 좋지 않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깜짝 놀라면서 물었다.

“남의 집 안방에서 일어났을 일을 어떻게 알았느냐?”

형제가 다시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풍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람이란 소리만 있지 형체가 없는 것이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손으로 잡을 수도 없으며 허공에서 일어나서

만물을 뒤흔드는 게 바람이다. 어쩌자고 형체 없는 일을 끄집어 내어 남을 뒤흔드는 게 바람이다. 어쩌자고 형체 없는 일을 끄집어 내어 남을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느냐? 더구나 너희들 역시 과부의 자식이 아니더냐? 과부의

아들이 그래 과부를 논할 수 있다는 말이냐? 잠시 있거라.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다.”

 

어머니는 그 말끝에 품안에서 동전 한닢을 꺼내 보여주며 물었다.

“이 엽전에 윤곽이 있느냐?”

“없습니다.”

“글자는 “없는데요.”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것이 네 어미를 차마 죽지 못하게 만드는 부적이다. 십년이나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다 닳아 빠진 것이다.

대개 사람의 혈기란 음양에 근본을 두고, 정욕이란 혈기로 인해서 작용하며, 그리움이란 고독한 데서 생기고,

아프고 슬픈 감정은 그리움에서 우러나온다.

과부야 말로 고독한 신세요. 아프고 슬프기 그지없는 존재다. 혈기가 때로 왕성하면 과부라고 어찌 다른 마음이 없겠느냐? 가물가물 등불 아래 그림자만 바라보고 앉아서 밤을 지새기 어려운데, 더구나 낙수소리가 처마 끝에서 또닥또닥 나거나 허연 달빛이 창으로 들이비칠 때, 뜰에서 나뭇잎이 뒹굴고 하늘에서 외기러기 울고 지날 적에 먼 곳의 닭 훼치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어린 종년의 코고는 소리는 요란하여 눈이 반들반들해서 잠을 못 이루는 이 쓰라린 심정을 누구에게 하소연하겠느냐?

내가 이럴 때 이 돈을 꺼내 온 방을 돌았다. 둥근 것이 잘 구르다가도 어느 모서리에 부딪치면 그만 넘어진다.

그것을 다시 찾아내어 다시 굴리고 이렇게 하룻밤에도 수십 번 굴리고 나면 날이 밝았다.

십년 동안 해마다 굴리는 날이 줄어들더니 십년 지나서는 혹 닷새에 한 번 굴리고 혹 열흘에 한번 굴리게 되었더라. 혈기가 아주 쉬하여서 다시 굴릴 필요가 없었으나 그래도 열겹으로 꼭꼭 싸서 이십 여년을 간직하고 있는

까닭은 그 공로를 잊지 않자는 것이고, 나 스스로 경계하려고 한 것이다.”

 

드디어 모자가 서로 붙잡고 울었다.

 

첨부이미지

 

-연암 박지원의 열녀함양 박씨전에서 발췌-

출처: http://blog.empas.com/sannoul/23113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