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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것의 기록들

고무줄 놀이

by 까망잉크 2009. 4. 4.

 

고무줄 놀이

 

 
고무줄을 가지고 하는 어린이 놀이.
동요 또는 변형된 구전동요에 맞추어 특정한 발동작을 취하면서 뛰고 넘고 하는 유희로, 줄넘기와 함께 8~12세 사이의 여자 어린이들이 많이 즐기는 놀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4명이 편을 갈라 노는 것이 보통이지만 더 많은 수의 인원이 하기도 한다.
놀이 방법은 크게 2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무릎 정도의 높이에서 각기 다른 노래에 맞추어 발이나 다리가 줄에 닿지 않게 뛰거나 넘는 발동작을 하는 형태이고, 같은 노래에 맞추어 아주 낮은 곳에서부터 높은 단계에 이르기까지 다리를 고무줄에 걸치면서 하는 형태도 있다. 이때 각각의 단계는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발목·무릎·허벅다리 등 신체의 높이를 단계로 하여 머리 위까지 이르는데, 가장 마지막 단계를 '만세'라고 하고 먼저 만세에까지 올라간 편이 이기게 된다. 겨드랑이 이상부터는 뛰어서 발을 뻗기가 힘들기 때문에 물구나무서기를 하여 다리를 고무줄에 걸기도 한다. 보통 고무줄놀이는 1줄을 가지고 놀지만, 고무줄의 양쪽 끝을 묶어 2줄 놀이도 한다. 같은 편의 2사람이 고무줄의 양쪽 끝을 잡는 것이 기본이며, 단 2명이 놀 때는 한쪽 끝을 기둥에 잡아매고 한다.

편이 확정되면 양편의 대표가 가위바위보를 하여 순서를 정하는데 보통 진 편이 먼저 고무줄을 잡게 된다. 고무줄을 잡게 된 편이 특정 노래를 주문하면 이긴 편은 그 노래에 해당하는 특정 동작을 취하면서 고무줄놀이를 한다. 만일 놀이 도중 한 아이가 탈락되었을 때는, 다른 아이가 자기의 몫을 다하고 난 뒤 탈락된 아이의 몫을 한 번 더 되풀이하게 되면 그 아이는 다시 놀이에 낄 수 있다. 한 팀 모두가 성공하게 되면 놀이 방법에 따라 상대편이 다른 노래를 주문하기도 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도 한다.                                                                      

 

 

사라진 놀이

고무줄놀이  -  시골의 한가한 시간 어느 구석이던 볼 수 있었던 고무줄 놀이도 이제는 사라져 가는 놀이문화중 하나이다.

70년대 후반만 해도 시골의 한가한 시간이면 어디선가 여자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이때 노래소리를 따라가면 으례히 마을의 타작마당이나 동 사무소 앞 공터, 또는 다소 넓은 골목길 귀퉁이에는 동네 여자아이들 몇몇이 모여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무줄을 다리사이에 두고 노래에 맞춰 이쪽 저쪽으로 뛰어넘던 형식의 이 놀이는 여자아이들만이 하던 놀이로 술래격인 두사람이 고무줄을 평행선으로 잡고 1단, 발목, 2단, 정강이, 허리, 턱, 눈높이, 머리위까지 차츰 고무줄을 높혀 난이도(難易度)를 더해갔다.

학교에 등교하면 여자아이들이 제일 먼저 하던 놀이가 바로 고무줄놀이였으며 쉬는 시간에도 예외없이 이 놀이를 즐겼다. 그러나 때로는 심술궂은 남자아이들의 방해를 받기도 했고 어른들의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심심해진 남자아이들이 여자들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고무줄을 끊어버리거나 휘감고 도망치기도 했으며 어른들은 “배 꺼진다 뛰지 마라, 신발 떨어진다 뛰지 마라”하고 나무라기 일쑤였다.

당시 궁핍했던 우리의 생활은 적게 먹고 적게 쓰는 것, 즉 먹는데도 아끼고 고무신 한 켤레라도 덜 닳게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이었고 보면 어른들의 꾸지람은 당연지사(當然之事) 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한창 성장해가던 여자아이들의 육체는 인간본능(人間本能)의 운동량을 요구받으며 가만히, 또는 조용히 그냥 자리를 지키지는 못해 어른들의 눈을 피해가며 맨발이나 버선발로 이 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고무줄놀이때 부르던 노래는 대부분 학교에서 배운 동요(童謠)가 많았으나 때로는 군가(軍歌)나 당시 유행되던 노래도 있었다. 일제 때나 해방 후 주로 불리던 노래는 “피었네 피었네 무궁화 꽃이 피었네…,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갈까요 고기를 잡으러 강으로 갈까요…, 새야 새야 파랑새야…,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가랑잎 때굴때굴 어디로 굴러가 벌거벗은 이 몸이 춥고 추워서 따뜻한 부엌 속을 찾아 갑니다…, 아가야 나오너라 달맞이 가자 앵두 따다 실에 꿰어 목에다 걸고 검둥개야 너도 가자 냇가로 가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흘러가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사라져간 전우야 잘자라” 등 민족사의 애환(哀歡)을 담은 노래들이나 군가도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중반이후부터는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이 강산 침노하는 왜적무리를 거북선 앞세우고 무찌르시니…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같은 대한독립만세… 장난감 기차가 칙칙 떠나간다… 새신을 신고 뛰어보자 팔짝…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린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등 학교에서 배운 동요(童謠)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고무줄놀이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보급됐는지 기록은 없지만 일제시대 때도 여성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고무줄놀이도 각종 놀이기구 등장과 함께 서서히 빛을 잃어 우리의 주위에선 좀처럼 구경하기 힘들게 됐다. 더구나 일부 현대 의학자들은 고무줄놀이가 여성들의 자궁을 아래로 쳐지게 하는 등 인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굳이 바람직한 놀이가 아니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어 풍전등화(風前燈火)격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여성들로부터 오랜 세월, 가장 인기를 끌었던 고무줄놀이는 우리의 민속놀이 널뛰기와 함께 한국여성들의 배심, 하체단련 등 건강에 큰 도움이 되며 당시 임산부들이 산부인과 신세를지지 않고도 아기를 생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윗사람들의 여론도 배제할 수는 없는 처지다. 

 

 


 

   

 

 

출처:다음,야후,사라져간명물.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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