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성탄제/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어처롭게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주방의 좁은 창문 밖으로 산수유가 보인 것이 여러 날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선연한 예쁨을 견디지 못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문득 목울대가 뜨거워졌고, 김종길 선생의 성탄제가 떠올랐습니다.
다시 읽으며 이것이 참 아름다운 사랑 시였음을 새삼 알게 됐습니다.
시험 문제에 나오는 교과서 작품이었기에 저의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선생께서 대학에 재직하실 때, 중앙도서관에서 늘 학생들과 함께 점심을 하시던 모습, 참 그립습니다.
출처: 장재선 문학노트 http://cafe.munhwa.com/literartur
'시와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나무 (0) | 2009.12.21 |
---|---|
소나무 (0) | 2009.12.18 |
첫눈 오는 날 만나자 (0) | 2009.12.03 |
[스크랩] 아, 삶이란 때론 이렇게 외롭구나. (0) | 2009.11.30 |
♡...정말 좋은 사람은...♡ (0) | 2009.11.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