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쩍에 조씨(趙氏) 성(性)을 가진 양반이 살았더래요
삼백년 전에 이씨조선(李氏朝鮮)시대(時代)에 趙(조)씨 성(性)을 가진 사람 하나가 장가든 첫 날밤이다. 밤이 이미 깊어서 賀客(하객 : 축하하러 들린 손님)들은 흩으져 가고 만뢰(萬瀨 : 만물이 여울 져)가 구적(俱寂 : 모두 잠든밤)했다. 신랑도 신부와 더불어 화촉동방(華燭洞房)에 들어서 백년가약(百年佳約)의 꿈이 이루어지려 했다. 이 때 별안간 신부가 복통을 일으켜 어찌할 줄 모르더니 옥동자(玉童子)를 분만(分娩)했다. 청천벽력(淸天霹靂 : 마른하늘에 날벼락)에다 우주현황(宇宙玄黃 : 하늘이 까맿고 땅이 노랬다)인 일이었다. 웬만한 사람이면 당장에 자리를 박차고 그 집을 뛰쳐나왔을 뿐이며 식솔(食率 : 거느린 가족)들을 불러 그 밤으로 쫒아내고 신부는 일생을 햇빛을 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신부의 가족들까지 얼굴을 들고 세상 사람을 대할 수 없어 가문(家門)의 문을 닫게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趙氏(조씨)의 태도는 너무나 침착했고 대인(大人 : 높은 가문이나 벼슬의 어른)다웁게 처신하였다. 갓난아기의 삼(芟 : 탯줄)을 가른 뒤 포대기 하나를 꺼내서 싸가지고 남모르게 뒷담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집 뒤 안전한 굴뚝 밑에 두고 담을 넘어 다시 신방(新房)으로 돌아와 배가 아프다고 방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장모가 사위의 비명소리를 듣고 와서 무슨약을 지으면 좋겠냐고 밖에서 물으니 미역국과 밥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부랴부랴 계집종과 서둘러 밥상을 신방(新房)에 들여 보내니 신부(新婦)인들 어찌 반상(飯床 : 밥상)을 받겠냐마는 신랑이 강권(强勸 : 억지로 권함)하니 마지 못해 들면서 눈물을 흘리며 감읍(感泣 : 감사의 눈물)하더라.
신새벽(新時)에 일어난 신랑이 짐짓 거짓부렁으로 산보하는 양(樣) 뒷곁에 나가 굴뚝사이에 두었던 갓난아기를 울려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면서 '불쌍한 생명이니 데려다 키워야겠다'며 하녀에게 포대기를 들려서 집으로 돌아왔다. 연후에 조씨(趙氏) 가문(家門)에 입적(入籍 : 호적에 편입해 들임)하여 무탈(無奪)하고 늠름(凜凜 : 기세가 꽉 참)하게 자랐다.
그때로부터 17년 지난 어느 날부인이 고아(孤兒)로, 입양아(入養兒)로 자라고 있는 본래 제 자식을 불러 앞에 앉혔다. 자기가 시집오기 전에 이웃집 총각에게 겁탈(劫奪 : 위협을 주어 빼앗음)로 인(因)하여 포태(胞胎)한 것과 첫날 화촉신방(火燭新房)이 무참(無斬 : 베어 없앰)하게 된 그 일들을 소상(召詳)히 털어 놓았더니 묵묵부답(默默不答)으로나갔더라. 이어 그 아들은 마침내 소리 소문(簫問) 없이 자취를 감춰 버린게 아닌가?
그로부터 20년 후 세월이 흘러가 조씨가 늙어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평온(平溫)하게 임종(臨終)하니 만인(萬人)이 울더라. 여러 상제들을 비롯해서 온 집안이 슬픔에 잠기고 초종(初終) 치르는 일이 예법(禮法)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장례식을 며칠 앞 둔 어느 날 청아(淸雅)한 목탁(木鐸 : 중이 쓰는 나무 혀로 된 방울)소리가 들리며 중년의 승려가 찿아 왔는데 예사롭지 않는 조상(弔喪 : 죽은 이에게 애도의 염불을 함)을 하고 나더니 상주(喪主)들에게 정중하게 말을 꺼냈다. “이 근방 바닷가에는 무인도(無人島)가 하나 있는데 그 섬 안에는 백자천손(百子千孫)에다 발복(發福)으로 부귀(富貴)하고 대대로 정승판서가 나올 명당자리가 있으니 그기에다 선친(先親)의 유해(遺骸)를 모십시오. 저와는 전생에 인연(因軟)이 있어 이렇게 멀리서 모르는 사람이지만 찾아왔소이다.” 라고 권유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운구(運軀)할 배와 사람들 까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상주(喪主)는 그 중의 외모(外貌)로 보아서 속승(俗僧)이 아닌 도(道)가 높은 분으로 보인데다 명당(明堂)자리라기에 식솔(食率)들과 의논한 후 승낙하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며 고두백배(叩頭百拜 : 공경하여 무수히 절함)하였다.
장례 날이 되었다. 바닷가에는 이미 배가 두 척이 등대(等對 : 미리 갖추어 기다림) 되었기에 모든 준비를 마친 후 관(棺)과 제구(祭構)들은 앞에 싣고 중이 옆에 모시었고 상제(喪制 : 어버이가 떠나고 조부모의 상을 입은 이들)들은 뒷배에 올라 출발 하였다, 그런데 이 게 어쩐 일인가? 얼마 가지 않아 앞배가 쏜살같이 달아나 도저히 딸아 갈 수 없어 낙심하며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그 중은 누구이겠는가? 바로 조씨의 부인이 첫날밤에 낳은 아이로 17년간 거둔 그 아이였던 것이었다. 그 아이는 출가하여 중이되어 도를 닦고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익혀 전국을 편답(遍踏)하여 제일가는 명당에다 모심으로 대대손손(代代孫孫)으로 축복받을 명당자리를 찾아 그 은혜(恩惠)에 보답(報答)하였던 것이었다. 그 뒤 趙氏의 후손은 참으로 번창하여 우리나라에서 망족(望族 : 부럽게 바라보는 일족)이 되었다 한다. 그러나 그 명당(明堂)이 어디에 있는 섬인지 밝혀지지 않았고 그 중이 아무도 훼찰(毁刹 : 망그러트림)치 못하게 했다고 한다. 趙氏(조씨)는 조선 말기의까지의 당당한 세도(勢道) 집안이었다. 조선시대(趙鮮時代) 오백년을 넘도록 가장 많은 고관대작(高冠大爵 : 높은 관직과 큰 벼슬)을 배출하였다고 한다.
출처: http://blog.naver.com/ekeovh2002?Redirect=Log&logNo=50082961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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