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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대한민국 제1호] 이산가족 상봉

by 까망잉크 2010. 9. 23.

 [대한민국 제1호] 1985년 9월 20일 남북 이산가족 65명 처음 만나

북한이 지난 10일 전격 제의한 추석맞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 적십자 간 실무접촉이 지난 17일 오전 개성에서 열렸다. 상봉이 이뤄지면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두 번째가 된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첫 번째 상봉은 작년 9월 금강산에서 열렸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는 1985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8월 열린 제8차 적십자 본회담 3차 실무접촉에서 남북은 광복 40주년을 계기로 이산가족 고향방문과 예술공연단 교환방문을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양측 고향 방문단이 9월 20일 오전 9시 30분 판문점을 동시에 통과해 3박4일 일정으로
평양과 서울을 교차 방문했다.

하지만 사전에 생사확인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남측 고향방문단 50명 가운데 35명만이 북측의 가족과 친척을 상봉했고, 북측 방문단도 50명 가운데 30명만<사진>(서울 워커일호텔에서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이 남측 가족을 만났다. 평양에서의 상봉 시간은 도합 4시간30분, 서울에서는 7시간30분이었다.

'고향 방문'이란 당초 취지와 달리 방문단이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점, 일회성 행사에 그치고 만 점 등이 한계로 지적된다. 김성근 대한적십자사 남북교류팀장은 "그러나 당시에 경험한 시행착오가 이후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진행하는 데 큰 교훈이 됐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은 2000년부터 이뤄졌다. 6·15 남북공동선언에 따라 2000년 8월 15일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이 이뤄졌고 지금까지 모두 17차례의 대면상봉과 7차례의 화상상봉이 이뤄졌다.

일각에선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북한 육상선수 신금단씨와 남측의 아버지 신문준씨의 만남을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아버지 신씨는 1951년 1·4 후퇴 때 헤어진 딸의 올림픽 참가 소식을 접하고 도쿄로 날아가 북한 선수단이 도쿄를 떠나기 직전 7분간 극적으로 딸을 만났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971년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회담 개최를 제의, 1985년 8번째 회담에서 성사됐다.

 

출처: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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