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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나무

by 까망잉크 2011. 11. 29.

 

 [시가 있는 아침] 나무

 

[중앙일보] 입력 2011.11.29 00:35 / 수정 2011.11.29 00:45

 

전나무 Abies holophylla

 

나무    안찬수(1964~ )


아무도 이 나무의 세월을

다 알지 못한다


나무는 베어진 뒤에야

나이테의 둥근 물결로

자신이 살아온 나날의


바람과

비와

구름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뿐


아무도 이 나무의 세월을

다 알지 못한다


하늘과 바람과 별을 품고 살아가는 나무의 세월을 헤아리는 건 애당초 불가능했다. 나무는 굵은 줄기 안쪽의 깊숙한 속살에 세월의 켜를 차곡차곡 쌓아 나이테를 짓는다. 그러나 앙다툼하며 흐르는 세월을 붙들지 않는다. 말하거나 보여줄 필요도 없다. 세월 깊어지면 나무는 줄기 안쪽의 살점을 스스로 덜어낸다. 세월의 켜는 나무가 비워낸 허공으로 흩어진다. 나무를 살게 한 하늘과 바람과 별의 자취는 안쪽부터 서서히 사라진다. 나이테로 남은 세월보다 허공에 흩어진 세월이 더 길고 깊다. 그리고 다시 다가오는 하늘과 바람과 별을 바라보며 주어진 삶을 살아갈 뿐이다. 나무는 끝내 지나온 세월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고규홍·나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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