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논세(知人論世)]노욕을 조롱한 시골 처녀
김영수 중국전문가 출처; 경향신문
옛날 시골 마을의 한 가난한 집 처녀가 천상의 선녀처럼 자랐다. 게다가 심성도 착하고 영리했다. 처녀의 미모와 총명함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듯 급기야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황제는 지체없이 뚜쟁이 노파를 처녀의 집으로 보냈다. 노파는 황제의 명에 따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며 처녀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처녀가 물었다.
“황제께서는 올해 나이가 몇이며, 처첩은 몇이나 됩니까?”
“올해 일흔이시며 처첩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지.”
노파는 신이라도 난 듯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노파의 얼굴을 잠시 쳐다본 처녀는 당찬 목소리로
“그렇다면 저는 20마리의 이리와 30마리의 표범과 40마리의 사자와 60마리의 노새와 70근의 면화와 80장의 나무 판자를 예단으로 원합니다.”라고 말했다.
황당한 처녀의 요구에 노파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별수 없이 황제에게 돌아가 이 말을 전했다. 황제는 의아해하며 당시 분위기를 묻는 등 노파의 입을 주시했지만 별다른 말을 들을 순 없었다.
이때 곁에 있던 한 대신은 “그런 것들은 사냥꾼, 목동, 농부, 목수에게 준비시키면 그만입니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런데 황제를 가까이서 모시는 시종 하나가 대신의 이 말에 살며시 입을 가리고 고개를 돌리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황제는 시종을 불러 왜 웃었느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던 시종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제가 웃은 까닭은 저 분의 말씀이 틀려서입니다. 그 처녀가 요구한 예물에 담긴 뜻은 이렇습니다. 사람이 스무살이 되면 마치 이리처럼 용감하고 민첩해지며, 서른이 되면 표범처럼 몸과 힘이 강해지며, 마흔이 되면 사자처럼 위풍당당해집니다. 하지만 60까지 살면 나이든 노새처럼 힘이 빠지고, 70이 되면 솜처럼 물렁물렁해집니다. 그리고 여든까지 살면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널빤지만 있으면 그만이란 겁니다. 곧 죽으면 들어갈 관을 짤 나무가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총명한 그 처녀의 말인즉슨 지금 폐하께 필요한 것은 처녀가 아니라 시신이 들어갈 나무판자란 것이지요. 그런 것도 모르고 정색을 하고 그 예물을 준비하려고 하시니 그래서 웃은 것입니다.”
황제는 시골 처녀의 날카로운 조롱에 그만 넋이 나가고 말았다.
호기심과 욕심에는 나이도 없다고 한다. 인간 본연의 욕망을 적절하게 지적한 말이다. 하지만 의식으로서의 욕망과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욕망이 일치할 수는 없다. 그랬다간 세상이 온통 난장판이 될 것이다. 다행히 인간에게는 그 욕망을 통제할 줄 아는 이성적 판단이 존재한다. 원활한 신진대사는 사회를 건전하게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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