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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역사) 이야기

정몽주 단심가와 선죽교

by 까망잉크 2014. 3. 2.

 

 


 

 

 




 

  

 

 

고려 말의 문신.

호는 포은이며. 시호는 문충이다.

1360년에 문과에 장원 급제한 후 예문관 검열, 예조정랑, 성균관 박사, 우의사대부 등을 역임했다.

1363년에는 여진족 토벌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고,

1380년에는 이성계와 함께 왜구를 토벌하는 데 앞장서기도 했다.

오부학당과 향교를 세워 유생들을 가르치고 유학을 진흥하여 성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1390년부터는 이성계와 정치적으로 결별하여 대립 관계에 놓였으며,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가깝게 지내자는 친원 정책에 반대하고 끝까지 고여 왕조를 받들었다. 1392년에 정도전, 조준 등이 혁명을 일으켜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하려 하자 크게 반발하다가

선죽교에서 이방원의 부하인 조영규가 보낸 자객에게 살해당했다.

 

*정몽주의 단심가

정몽주가 고려에 대한 충절을 담아 노래한 시이다.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한 답으로 지은 시다.

이 시를 읽고 난 이방원은 정몽주의 뜻이 확고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를 죽이기로 마음 먹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선죽교

고려 시대의 돌다리로,

정용주가 이방원의 부하들에게 목숨을 잃은 곳이다.

선죽교에는 아직도 당시의 핏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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