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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

엄마 목소리

by 까망잉크 2018. 3. 9.

 

동아일보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 엄마 목소리
입력 2018-03-09 03:00수정 2018-03-09 03:00

 

 

 

엄마 목소리 ―신현림(1961∼) 

물안개처럼 애틋한 기억이 소용돌이치네 
한강다리에서 흐르는 물살을 볼 때처럼 
막막한 실업자로 살 때 
살기 어렵던 자매들도 나를 위한 기도글과 함께 
일이만 원이라도 손에 쥐여주던 때 
일이십만 원까지 생활비를 보태준 엄마의 기억이 
놋그릇처럼 우네 
내주신 전셋돈을 갚겠다 한 날 
엄마 목소리는 뜨거운 메아리로 되돌아오네 
“살기 힘들어도 그 돈을 내가 받을 수는 없는 거다”

엄마의 말들은 나를 쓰러지지 않게 받쳐준 지지대였네
인생은 잃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랑받았다는 추억이 몸이 어두운 때 불을 밝히고
물기 젖은 따스한 바람을 부르네
 

........................생략
우리는 ‘마음이 된 말’을 이 시에서도 본다. 시인 신현림은 처음에 ‘애틋한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실업자가 돼 막막했던 시절, 가난한 엄마는 가난한 나에게 돈을 보태줬다. 생활비의 일부를 보내줬고, 집 전세비를 보내줬다. 돈이 펑펑 남아서 보내준 것이 아니었다. 엄마 몫을 덜고 덜어서 겨우 마련해 준 돈이었다. 엄마의 빤한 사정을 아는 딸은 매번 미안하고 죄송했을 터. 그런데 돈을 갚으려고 하자 어머니는 한사코 거절했다. 귀하고 아까운 딸이 어떻게 번 돈인데, 어머니는 마음이 아파 받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지극한 사랑이 말에 담겨 딸에게로 갔다. 정작 어머니는 다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입에서 떠난 그 말이 여태껏 딸을 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마음이 스산할 때 어머니의 말은 살아남아 군불이 됐다. 마음이 조각조각 찢겨나갈 때 어머니의 말은 되돌아와 지지대가 됐다. 시를 읽으면서 마음을 뒤적뒤적 해본다. 우리에게도 이런 말이 있을까. 인생의 불이 되어 주는 환하고 위대한 말 말이다.
  
나민애 문학평론가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Column/3/all/20180309/89019635/1#csidx4b0a71a038c139682fc9275b6f09e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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