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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뒷 이야기

<조선왕조 뒷 이야기> 34 불행한 전철(前轍)

by 까망잉크 2018. 6. 17.


<조선왕조 뒷  이야기> 34 불행한 전철(前轍)

태종18년(1418) 8월 10일, 세종이 조선의 네 번째 왕으로 즉위하고, 그해 11월 10일 세종비 심씨(沈氏)가 공비(恭妃)에 책봉되니, 이가 곧 소헌왕후(昭憲王后) 였다.

그녀는 조선 개국공신 심덕부(沈德符)의 손녀였고, 영의정 심온(沈溫)의 딸이었다. 본관이 청송, 그녀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대를 이어 초기의 조선시대를 주름잡은 권부의 핵심들이었다.



역사에 기록된 좌의정 심덕부의 인물됨은 대개 이랬다.

『성품이 어질고 담박하며 간결하고 맑아, 기뻐하고 분노함을 나타내질 않았다. 첩을 두지 않았고, 산업에 힘쓰질 않아 장수와 정승을 20년이나 지냈지만 곳간은 언제나 비어있었다. 집에 있을 때는 책만 읽으며 한적하게 지내는 모습이 마치 깨끗한 선비와 같았다.』



심덕부의 아들 심온도, 45세 한창 나이로 태종의 손빨에 꺾이지만 않았어도 버금가는 인물이 됨직하지 않았을 까 싶어, 그의 억울한 죽음이 참으로 아쉽다. 그의 죽음은 대개 이렇게 새겨졌다.

『공은 천성이 어질고 너그러웠으며 자애롭고 온순하였다. 겸손하고 공손하여 남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왕가(王家)의 인척이 되어서는 더욱 근검하고 신중했다. 의롭게 물러나 살려하였으나 헐뜯는 자들이 ‘임금의 환심을 사려한다’했으니 어찌하겠는가? 순순히 그 모함을 극복하려 했을 따름이다. 아! 자고로 군자가 헐뜯겨 죽는 것은, 매우 어려운 시대를 만나거나 권세를 두고 암투하는 틈바구니에서다. 그러나 공과 같은 이는 크고 번창한 시대에서 명철한 지혜를 갖추고도, 죽음을 면치 못하였으니 이것이 공의 지극한 원통함이다.』



태종이 심온을 역모 수괴로 몰아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들은 왕비 심씨는, 놀라 까무러질듯한 몸을 겨우 일으켜, 대비전(大妃殿)으로 태종비 민씨에게 달려가 아버지를 살려 달라 매달렸다.

민씨는 화들짝 놀라

“그 짐승이! 그 인간 백정이 또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는구나! 아이구 이일을 어쩌나! 중전이 불쌍해서 어쩌나!…”하고 시어미와 며느리가 서로 부등켜 안고 울부짖어도, 심온을 죽이려는 무리들의 농간에 빠져 버린 태종의 마음은 바꿀 수가 없었다.



태조4년(1395) 9월 경기도 양주에서 심온의 맏딸로 태어난 심씨는, 열네살 때인 1408년 두 살 연하의 열두살 충녕대군과 혼인하여, 이듬해 충녕이 세자로 책봉되자 경빈(敬嬪)에 봉해졌었고, 그해 8월 세종 즉위와 함께 왕비에 책봉되었었다.심씨는 친정집이 도륙 당한 뒤 하마터면 왕비자리에서 까지 쫓겨날 처지에 빠지기도 했었으나, 세종의 강력한 반대와 또 다른 외척의 등장을 우려한 태종의 생각으로 자리는 지킬 수있었지만, 이미 심신이 망가질대로 망가져, 사는 맛을 잃어 버렸다.

그는 중전의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천비의 신분으로 추락, 제주도 관아 노비가 된 어머니와, 귀양살이를 하는 형제들, 종이 되어 남의 집 재산으로 배분된 혈족들을 보고 가슴을 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참고 견뎌야만했다.

다행이랄까 친정 어머니 안씨는 1426년, 세종이

“왕의 장모를 천비로 그냥 둘 수없다”며 면천시키니, 비로소 노비문서에서 그 이름이 지워졌다. 그러나 그녀의 친정 아버지 심온은 세종이 “아버지의 판단을 함부로 번복할 수없다”며 역모의 죄를 벗겨 주질 않았으니, 심씨는 아버지의 신분 회복을 보질 못한 피맺힌 한을 품은 채, 시어머니 민씨와 꼭 같은 전철을 밟고 세상을 떠나야했다.

평생을 가슴앓이로 살던 소헌왕후 심씨는, 세종28년(1446) 3월 24일 둘째 아들 수양대군 유의 사저에서 52세 일기로 눈을 감았다. 시어머니 태종비 원경왕후 민씨는, 친정이 도륙당한 꼴을 보고 견디다가 그래도 56세까지 살았는데, 심씨의 생애는 그보다 더 짧았던 셈이다.

소헌왕후는 조선조 역대 왕비가운데 가장 대군(大君)을 많이 낳은 왕비였다. 맏아들 문종을 비롯, 수양(首陽-세조)·안평(安平)·임영(臨瀛)·광평(廣平)·금성(錦城)·평원(平原)·영응(永膺) 대군 등, 여덟왕자와, 정소·정의 두 공주를 낳았었다. 다만 정소공주는 일찍 죽었다.

소헌왕후의 주검은 처음 경기도 광주 서강(西岡)에 장사지냈다가, 문종 즉위년(1450) 세종이 승하하자 오늘날의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 왕대리에 세종의 무덤을 지으면서 옮겨 합장하니, 곧 사적195호로 지정된 영능(英陵)에 함께 안장된 것이었다.                                
                                   정연가(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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