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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뒷 이야기

<조선왕조 뒷 이야기> 36 노인을 우대하라!

by 까망잉크 2018. 6. 19.
 
 <조선왕조 뒷 이야기> 36  노인을 우대하라!

하동신문

조선 태조 이성계는 즉위 4년차 되던 해인 1395년, 한양 천도와 함께 자신의 나이 60세에 이르니, 이는 보통 기쁜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학문과 덕행이 높은 늙은 신하들을 모아 잔치를 베풀어 기쁨을 나누니, 이른바 태조의 회갑 잔치였고 이름 하여 기로연(耆老宴)이었다. 

고려때는 나이가 많아 퇴임한 늙은 선비들의 모임인 기로회가 있었고, 조선조에서는 태조 이후 기로소(耆老所)를 제도화하고, 정2품 현직 문관직 관원들이 나이 70세에 이르면 자동 기로소에 들게하여, 조정에서 매년 음력으로 3월 3일과 9월 9일 두차례에 걸쳐 잔치를 베풀었으니, 이는 정책적으로 관직을 지닌 노인을 대접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관료를 역임한 노인들 이외에 늙은 백성들을 챙긴 군왕은 세종이었다. 
세종17년(1435) 왕은 어명을 내렸다. 
『노인을 공경하는 예는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 옛날의 제왕이 친히 잔치에 임석하여 같이 즐거워하고, 혹은 자손들에게 세금을 면해 준 것은 모두 노인을 존경하는 의미를 보인 것이다. 
이제 내가 임금의 자리에 있으면서 무릇 연치(年齒) 높은 이를 숭상하는 옛날의 예의와 제도를 모두 준수하였으나, 오직 벼슬을 주는 법도만은 거행하지 않아서 내 마음에 불만이다. 그러므로 나이 90세 이상이 되는 이에게는 작위를 주어서 노인을 공경하는 어질음을 보이고자한다. 
100이상의 노인에게는 새해 첫날 잔치를 하사하고 달마다 술과 고기를 하사하며, 80세 이상의 노인에게는 작위를 하사하고 해마다 중추절에 잔치를 하사하며, 지방에 있는 자는 그곳 수령이 음식을 갖추어 보내는 것으로 법을 정하라!』
나이 많아 관직을 감당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게 일종의 벼슬인 명예직을 주되 급료까지 내려 대우하라는 획기적인 노인 우대 명령이었다. 

이보다 앞서 세종은 즉위 14년째 되던 해 8월, 근정전(勤政殿)에서 양노연(養老宴)을 베풀어 현직 나이 많은 관료들을 위로하였다. 
이때 2품 이상 판서 정승급은 근정전 안 실내에 앉고, 4품 이상은 월대(月臺) 즉 마루에서, 5품이하와 서인(庶人)들은 근정전 뜰에 자리하여 잔치상을 받았다. 
이때 세종은 나이 많은 노인이 잔치 자리에 들어 설 때 마다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되풀이하며, 노인들을 정중하게 맞이했다. 이튿날은 왕비가 또한 늙은 부녀들을 사정전(思政殿)에 별도로 모아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였다.

강화부사로 있을때 목장에 뛰어든 호랑이를 아무런 인명 피해 없이 생포했던 이정간(李貞幹)이라는 출중한 인물이 있었다. 그는 여러 벼슬을 거쳐 세종때 강원도관찰사에 이르렀다가, 노모 봉양을 위해 관직을 사임하고 오로지 늙은 어머니를 보살피는데 정성을 쏟았다. 
성품이 온화하고 가정을 잘 다스려 화목하기가 소문이 났던 이정간이 나이 70세에 이르니, 세종은 특별히 궤장(机杖)을 내리고, 중추원사(中樞院使)라는 직위와 함께 표창하는 교서를 보냈다. 그의 어머니 김씨가 나이 98세를 넘기자 특별히 술과 악공들을 보내 김씨 노모를 위로하였고, 이정간이 80세로 세상을 뜨자 효정공(孝靖公)으로 시호까지 챙겨 내렸다.

또 가선대부(嘉善大夫) 정간(鄭간)이 어머니를 모시느라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 라는 높은 자리를 떠나, 어머니를 받들어 모시는데 효도를 다했다. 
어느날 어머니를 위해 수연(壽宴)을 베풀고 조정 관원들을 널리 초대하였다. 세종이 그런 소문을 듣고 가상히 여겨 정간을 자헌대부(資憲大夫)로 승차시키고 중추원사 벼슬을 내렸다. 
아울러 교서를 내려 궤장과 술, 악(樂)을 함께 하사하니, 정간은 2품직인 찬성(贊成) 이상의 직위가 아니면 받을 수 없는 명예를 오직 효성으로 특별히 얻은 셈이었다. 뒤에 정간의 어머니 김씨에게는 정대부인(貞大夫人)이라는 칭호를 주었는데, 김씨 부인은 102세로 숨졌다. 

어떤 사람이 오래 사는 비결을 물었더니, 노파는 대답하기를 “나는 평생에 해와 달을 향하여 소변을 본 일이 없다”고했다. 

세종이후 역대 제왕들의 노인 우대 정책은 면면히 내려 전해졌다. 후세의 대신들은 세종때 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해 임금으로부터 특은(特恩)을 입은 ‘정간의 일’이 자주 들먹여졌다. 

숙종32년(1706) 9월, 왕은 경복궁에서 노인 150명을 모아 노인연(老人宴)을 베풀어 신분에 따라 명예직 벼슬을 주고, 부녀들에게는 쌀과 고기를 하사하였다. 
또한 서울에 거주하는 80세 이상의 노인 수백명을 넓고 시원한 곳에 모아 놓고 성악(聲樂)까지 갖춰 술과 고기로 푸짐한 잔치가 되게 임금이 마음을 쓰기도 했다.  조선시대 제왕들은 경륜을 지닌 노인세대를 나라의 근간으로 삼아 우대하였다.

정연가(한국수필문학가협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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