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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46)도둑놈과 오입쟁이

by 까망잉크 2018. 10. 29.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46)도둑놈과 오입쟁이

윤 진사네 사동 호칠이, 새경도 제대로 못 받은 채 해고 통첩을 받게 되는데…
 


어느 날 저녁 윤 진사네 사동 호칠이에게 윤 진사가 말했다. “너는 사동이지? ‘동’자는 아이 동(童)이야. 그런데 열네살이니 이제 너는 아이가 아니다.” 해고 통첩을 받은 호칠이는 새경을 받아 함께 쓰는 머슴방으로 갔다. 3년 전 열한살 때 이 집에 사동으로 들어오며 약조한 새경이 짜디짰는데 받은 것은 그것의 반밖에 안돼 다시 사랑방으로 갔다. “나리, 새경이 반밖에 안됩니다요.” 모깃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윤 진사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네놈이 지난해에 깨뜨려 먹은 호리병을 값으로 치면 네놈 새경을 한푼도 줄 수 없지만, 어흠.”

이튿날 아침 단봇짐 하나 달랑 메고 호칠이는 윤 진사댁을 나왔다. 마땅히 부르는 곳도 없어 친구가 있는 다리 밑 거지 움막으로 갔다. 상강이 다가오자 움막은 찬바람이 멋대로 왔다갔다 해 바깥보다 더 추웠다. 거지 일곱에 움막은 두개. 작은 움막 하나는 대장이 혼자 쓰고 있었다. 호칠이가 친구 춘삼이의 손에 이끌려 대장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래, 편하게 앉아라. 이름이 호칠이라 했던가.” 비록 거지대장이지만 윤 진사보다는 후덕했다. 밤에 추운 것만 빼면 마음은 윤 진사댁 사동으로 있을 때보다 훨씬 편했다. 대장은 큰삼촌처럼 너그러웠고 친구 춘삼이와 마음을 터놓을 수 있었으며, 손위의 다른 거지들은 호칠이가 한식구가 된 걸 반겼다.

아침저녁으로 이집저집 각설이 다니는 게 좀 창피했지만 벙거지를 푹 눌러쓰고 며칠 춘삼이를 따라다니다보니 그것도 이력이 났다. 잔칫집에 가는 날은 생일이다. 고깃국에 쌀밥을 배 터지게 얻어먹고 움막에 드러누우면 진사 팔자도 부럽지 않았다.

어느 날 밤 오줌을 누러 일어났는데 춘삼이가 없어졌다. 장날 춘삼이 손에 이끌려 국밥집에 가서 배를 채우고 막걸리도 한사발씩 마신 뒤 춘삼이가 조끼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주는 걸 보고 의아했던 기억이 났다. 두가지 수수께끼가 한묶음에 풀렸다. 춘삼이가 밤중에 남의 집 담을 넘고 들어가 좀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호칠이도 도둑질에 나서기로 했다. 막상 그 짓을 하려니 덜컥 겁이 났다. 윤 진사네 뒷집은 주인이 보부상이라 항상 집을 비웠고 안주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밤은 깊어 삼경일제, 춘삼이가 일어나 밖으로 나간 후 호칠이도 나갔다. 윤 진사네 뒷집은 집 구조까지 잘 아는 터라 쉽게 들어가 부엌으로 잠입했다. 황동수저 두벌을 훔쳐 품에 넣고 조심스럽게 부엌문을 닫아걸고서 뒤돌아서려던 호칠이가 자신도 모르게 ‘으악’ 기절할 뻔했다. 안방 문을 열고 나와 부엌을 끼고 도는 남자와 맞닥뜨린 것이다. 그 남자도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바람처럼 장독을 밟고 담을 넘어 사라졌다.

움막으로 돌아온 호칠이는 훔친 황동수저를 멀찌감치 땅에 묻어놓고 제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분명히 그야. 틀림없어.’

이튿날 호칠이는 식은 밥에 짠지로 아침을 때우고 양지에 앉아 꼬박꼬박 졸고 있었다. “호칠아, 누가 찾아왔다.” 고함에 눈을 뜨니 윤 진사였다. 냅다 도망을 치려는데 윤 진사가 한번도 보지 못한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솜털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칠아, 이거 받아라.” 윤 진사는 호칠이에게 무거운 주머니를 안겨준 뒤 두손을 잡고는 말없이 돌아갔다. 주머니를 열어보니 그때 받지 못한 새경과 그것보다 더 많은 엽전이 들어 있었다.

호칠이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거지대장 움막으로 들어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대장의 지시대로 윤 진사네 집으로 찾아간 호칠이가 말했다. “나리, 못 받은 새경 잘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나머지 돈주머니를 던지고 돌아왔다. 오후에 파랗게 질린 윤 진사가 보자기에 전대를 싸왔다. 호칠이는 침착하게 보따리를 풀었다가 다시 묶어 윤 진사에게 돌려줬다. 윤 진사는 울상이 돼 돌아갔다. 호칠이는 빙긋이 웃었다. 호칠이의 입이 뻥긋하면 황소 덩치에 성질 급한 보부상 두령 손에 윤 진사는 패대기쳐질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튿날 윤 진사가 싸들고 온 돈은 자그마치 2000냥. 1000냥은 거지대장에게 건넸다. “대장님, 이걸로 우선 집을 한채 사세요.” 집을 사고 논밭도 열댓마지기 살 돈이었다. 그러고 호칠이는 친구 춘삼이와 어디론가 사라져 두번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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