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아기의 아버지는?
새로 부임한 신관 사또,
갓난아기 안고 찾아온 유 진사댁 몸종의 하소연을 듣게 되는데…
유 진사는 양반 가문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많은 재산에다 글도 명필이라 고을 사또도 어려워하는 지방 토호다. 어느날 이방이 유 진사를 찾았다. “장마철만 되면 유실되는 나무다리 대신 돌다리를 놓으려 하니 진사 어른께서 찬조를 좀….” 유 진사의 답은 싸늘했다. “알았네. 생각해보겠네.”
열흘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라 신관 사또가 이방에게 물었다. “유 진사는 어떤 사람인가?” “숙부가 숭정대부요, 처가 쪽 큰처남은 승지라 신관 사또마다 예물을 들고 유 진사를 찾았는데 사또께서는 ….” 이방의 말끝이 흐려졌다. 새로 부임해온 젊은 신관 사또가 한숨을 토하자 이방이 “사또 나으리,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제가 예물을 준비하겠으니 한번….”
“시끄럽소! 고을 수장이 사사로이 그런 데를 찾아가는 것은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오!” 혈기방장한 젊은 사또는 이방의 요사스러운 입을 틀어막아버렸다.
십시일반 돌다리 놓는 거사에 부자들을 비롯한 모두가 헌금했다. 천변에 석공들이 묵을 막사를 짓고 이웃 고을에서도 석공을 불러모았다. 입춘을 며칠 앞두고 돌다리 공사 준비로 분주했다. 그런데 공사치부책을 꼼꼼히 정리하던 공방이 헌금목록에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만냥이라는 거금이 들어왔는데 기부자 이름이 없었다.
이 고을이 생기고 나서부터 돌다리는 숙원사업이었지만 부임하는 사또마다 자기 뱃속 챙길 생각만 해 엄두도 못 냈던 일이었다. 그 일을 젊은 신관 사또가 저질러놓고 본 것이다. 공사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부자들이 또 헌금을 하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노력 봉사를 하는데도 유 진사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익명의 기부자가 또 나타나 만냥을 보냈다. 누굴까? 워낙 큰 공사라 만냥은 난로 위의 눈덩이처럼 없어졌다. 그러던 차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얼굴이 푸석푸석 부은 아가씨가 갓난아기를 안고 사또를 찾아왔다. 그 앳된 아가씨는 연신 눈물을 훔치며 누가 아기 아버지인지 가려달라고 하소연했다. 유 진사댁 몸종이라는 말에 사또와 이방이 바짝 다가앉았다.
곱게 생긴 이 아가씨는 유 진사댁 몸종으로 가시버시가 되기로 굳게 약속한 총각 집사와 가끔 몸을 섞은 사이였다. 작년 춘삼월 안방마님이 친정아버지 생신 때 집사에게 고리짝을 메게 해 친정으로 간 사이 유 진사가 덮쳤다는 것이다. 열달이 흐른 한달 전 이모집에 가서 해산하고 사또를 찾아온 것이다.
이방이 유 진사를 찾아가 사또가 보잔다고 말하자 눈살을 찌푸리며 멋모르고 따라왔다. 육방관속을 모아놓고 사또가 손짓을 하니 한달 전 말없이 집을 나갔던 몸종이 포대기에 싼 아기를 안고 나타났고 집사도 나왔다. “유 진사 어른과 집사는 한구멍 동서지간이요. 이 아기 아버지가 누군지 여러분들이 밝혀보시오.”
사또의 설명에 육방관속들의 의견이 갈렸다. 유 진사를 닮았다느니 총각 집사를 닮았다느니 분분하자 사또는 “태어난 지 한달밖에 안돼 판단이 안 서는 모양들이네. 한달 후에 온 고을 백성들을 불러놓고 다시 의견을 물을 것이요. 오늘 재판 끝.”
유 진사는 개망신을 당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음물에 세수를 하고 곰곰이 생각하니 울화통이 치밀어 급히 하인을 한양으로 보냈다. 며칠 후 한양에서 유 진사의 숙부를 만나고 온 하인이 말했다. “나으리, 우리 고을 신관 사또는 과거에 장원급제한 도승지의 외손자입니다. 한양 자기 집에서 다리를 놓는 데 쓰려고 만냥씩 두번이나 가져갔답니다.”
며칠 후 유 진사는 이방을 통해 십만냥을 보냈다. 사또는 유 진사댁 몸종과 집사를 불렀다. 유 진사에게서 받은 십만냥 중 삼만냥을 몸종에게 주며 “자네 덕택에 큰돈이 들어왔네”라고 말했다. 그러자 몸종이 만냥을 성큼 떼서 “다리 놓는 데 보태 쓰십시오, 사또 나으리. 우리 세식구는 남은 돈으로도 어디 가서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사또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저 아이가 유 진사의 아이라면 어쩔 건가?” 집사가 대답했다. “제 아들이 맞습니다. 그날 밤, 유 진사가 발버둥치는 제 색시를 완력으로 치마 벗기고 고쟁이까지 벗겼지만 막상….” 사또와 이방, 공방이 “푸하하하, 유 진사 육봉이 서지 않았다! 창피해서 말할 수도 없고, 우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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