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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마누라 길들이기

by 까망잉크 2018. 12. 14.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253)마누라 길들이기




천석꾼 부자 곽 참봉, 남들은 메줏덩어리 같다지만 금

이야 옥이야 키운 딸 ‘후남’의 혼처 구하기에 골머리 앓던 중

‘옳다구나!’ 늘 곁에 있는 충직한 집사 ‘만복’을 떠올리는데…
 


천석꾼 부자 곽 참봉에게는 슬하에 무남독녀 외동딸 하나뿐이다. 금이야 옥이야 키우는데 어릴 때부터 포대기에 싸안고 마실을 가도 예쁘다고 안아보는 이가 없었다. 눈은 찢어져 치켜 올라갔고 코는 들창코에 인중은 길고 광대뼈는 튀어나왔다. 다음에는 아들을 낳으라고 ‘후남’이라 이름 지었지만 아들은커녕 아예 단산이 되고 말았다. 곽 참봉이 부자가 된 건 처가 덕택이라 마누라한테 꼼짝도 못했다. 더욱이 첩을 얻을 생각은 꿈도 못 꿨다. 씨받이를 집에 들여와 아이 앉기를 시도해봤지만 허사. 후남이가 유일한 핏줄이 되고 말았다.

후남이가 커갈수록 사람들은 지붕에서 메줏덩어리를 던진 것 같다고 수군댔다. 생긴 대로 논다더니 성질 또한 개떡이다. 여자애들 노는 곳은 외면하고 남자애들 틈에 끼어 돼지 오줌통 차기, 말싸움, 벽치기를 하며 남자애 코피 터뜨리기 일쑤였다.

후남이가 열여섯이 됐다. 얼굴은 고와질 기미가 없는 데다 허리통은 굵어지고 안짱다리에 발은 도둑놈 발처럼 컸다. 안방마님이 매파들을 불러서 잘 대접하고 혼처를 알아보라 윽박질렀지만 매파들은 알아보겠다는 말만 남기고 나가면 함흥차사다. 노름꾼·왈패·사기꾼들이 제 발로 찾아왔지만 모두 곽 참봉 재산을 보고 온 놈들이다.

열여덟, 스물이 돼도 신랑감이 나타나지 않자 곽 참봉과 안방마님의 시름도 깊어져 밤잠을 못 잤다. 궁리 끝에 곽 참봉이 무릎을 쳤다. 곽 참봉이 죽으라면 죽는시늉도 하는 충직한 젊은 집사 만복이를 곁에 두고도 결혼시킬 생각을 못했다.

스물다섯 만복이는 곽 참봉네 집사로 5년째 일하며 곽 참봉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다. 치부책은 물론이거니와 곳간 열쇠도 그가 차고 있었다. 그 많은 논밭을 공평무사하게 마름해 소작농들의 불평불만 한마디 듣지 않았다. 성실하고 믿을 만한 만복이, 그만한 신랑감을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그런데 만복이가 일평생 데리고 살 마누라를 정하는 것도 곽 참봉의 말을 들을까?

시월상달에 신랑 만복이와 신부 후남이 혼례를 올리고 가시버시가 됐다. 만복이는 후남이를 떠안고 100마지기 논과 20마지기 밭을 받아 세간을 났다. 곽 참봉은 머리를 굴렸다. 논문서·밭문서는 만복이에게 줬지만 그걸 담보로 만복이가 곽 참봉에게 돈을 빌린 것으로 서류를 꾸며 놨다. 후남이를 소박 맞히면 논밭을 빼앗아버리겠다는 것이다.

집에서 새는 쪽박, 분가했다고 안 샐까! 후남이는 만복이를 종 부리듯 했다. “만복아, 나 발 좀 씻겨줘.” 만복이는 부엌에서 물을 데워서 대야에 받아 방으로 들고 가 후남이의 발을 씻겼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밤중에 묵이 먹고 싶다 하면 북풍한설 몰아치는 십리길을 걸어 묵집에 가서 묵을 사 왔다. 모든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누워! 벗어! 세워!”라고 말하고 여성 상위 자세를 취하는 데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장날 저녁, 만복이는 술에 떡이 돼 친구인지 친척인지 모를 사람 등에 업혀 와 사랑방에서 여덟 팔(八)자로 뻗었다. “형수님, 물 한그릇 주시오.” 만복이를 업어다준 남자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욕봤습니다. 식혜 좀 드세요.” 식혜 한사발을 단숨에 마신 그 남자는 빈 그릇을 건네곤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다가 후남이를 끌어안았다. 후남이는 후끈 달아올랐다. ‘세상에 나한테 끌리는 남자도 있구나.’ 수작을 거는 그 남자를 안방으로 유인했다.

벌거벗고 엉겨 붙는데 문이 쾅 박살 나며 시퍼런 낫을 든 만복이가 들이닥쳤다. 벌거벗은 두 연놈을 노끈으로 묶어놓고 만복이는 장인·장모를 데려왔다. “날이 새면 동헌에 넘길 작정입니다. 마지막으로 딸 얼굴이나 보세요.” 장인·장모가 만복이한테 매달리며 애걸복걸했다. 결국 논과 밭문서를 담보로 돈을 빌렸다는 차용증을 모두 불태우고 간통 미수 사건은 없던 일로 치부했다. 그 이후로 후남이는 고양이 앞의 쥐가 돼 신랑 만복이를 하늘처럼 받들었다.

보름이 지난 장날, 만복이는 장에 가서 그날 후남이와 간통하려던 남자와 주막에 마주 앉아 너비아니 안주를 시켜놓고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킬킬거리며 술잔을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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